“하루 온종일 가운데 배고픈 줄 알고, 목마른 줄 알며, 춥고 더운 줄 알며, 성내고 기뻐함을 안다. 이것은 필경 어떤 物件인가?”
‘수심결’서 묻는 첫 질문 알아차림은 動物도 있지만 分明한 앎은 人間의 特徵 唯識, ‘圓成實性’으로 설명
이것은 보조국사가 ‘수심결’에서 우리에게 묻는 첫 번째 질문이다. 마음은 하루 온종일 끊임없이 因緣을 따라서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마음은 條件을 따라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흐름이다. 마음은 신체와 긴밀하게 連結되어 있어서 춥고 배고픔을 認識할 뿐만 아니라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나고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면 기뻐한다. 이것이 마음이다. 유식불교에서는 마음을 세 종류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집착하는 마음으로 변계소집성(計所執性)이다. 여기서 계(計)란 ‘헤아리다’ ‘계획하다’는 의미로서 끊임없이 대상과 상황을 판단하고, 생각하고, 사유하는 마음현상을 말한다. 편은 ‘’ 혹은 ‘遍’ 모두를 사용하는데, 불교에서는 관습적으로 ‘변’이라고 발음한다. 변계(計)의 의미는 ‘널리’ ‘두루’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인데, 이것은 言語에 議한 思量分別을 말한다. 이를테면 책상이란 낱말은 ‘어떤’ 한 개의 책상이 가지는 개별적인 의미보다는 개별적인 책상의 개념을 널리, 두루 포섭한 ‘모든’ 책상의 보편적인 의미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책상은 밥을 먹을 때나 공부를 할 때 책을 올려놓는 일정한 형태를 가진 나무 조각을 말한다. 존재하는 것은 ‘책상’ 자체가 아니라, 이런 기능을 가진 ‘책상’이라 부르는 나무 조각이다. 책상이라는 나무 조각은 어떤 욕망이나 목적에 봉사한다는 점에서 결국은 인간이 부여한 ‘기능’으로서만 존재한다. 그 증거는 이런 기능이 다하면 겨울에 땔감과 같이 다른 방식으로 사용해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보면 책상은 어떤 특정한 기능들을 수행하는 역할로서 ‘형상’이고, ‘이미지’이고, ‘영상’일 뿐이다. 책상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의해서 구성된 언어적인 개념일 뿐이다. 책상이란 용어는 우리 욕망의 집착된 혹은 투사된 이미지이다. 이런 까닭에 이것은 집착된 마음이다.
그런데 이런 집착들은 그냥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인연을 따라서 순간순간 일어난다. 이런 측면을 설명하는 용어가 두 번째의 마음인 의타기성(依他起性)이다. 의타기(依他起)란 다른 것[他]에 의지하여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마음은 스스로 독립되어 존재하기보다는 다른 것, 곧 조건에 의지하여 발생한다는 것이다. 배고프거나 목마름은 갈망의 마음현상이지만, 이것은 그냥 저절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만한 조건이 형성되어서 일어난다. 화가 나고 기뻐하는 것도 그러한 갈망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난 것이다. 이런 마음은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
여기서 인간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배고프면 배고픈 줄을 알고, 목마르면 목마른 줄을 ‘안다’는 마음이다. 배고프다는 것이 일차적 현상이라면, 배고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이차적 인식이다. 배가 고픈 일차적 현상을 우리는 ‘알아차림[sati, 念]’이라고 말하고, 배가 고픈 사실을 아는 이차적 인식을 ‘분명한 앎[sampajana, 知]’이라고 구분하여 부른다. 먼저 일차적인 알아차림이 있고, 이것을 조건으로 해서 이차적으로 분명한 앎이 생겨난다. 그래서 초기경전에서는 정념(正念)과 정지(正知)를 함께 묶어 쌍으로 하곤 한다. 순서도 거의 항상 알아차림[正念]이 먼저이고, 그런 다음에 바른 앎[正知]이 배치된다.
배가 고프다는 ‘알아차림’은 동물에게서도 잘 나타나지만, 배고픔에 대한 ‘분명한 앎’은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고유한 특징이다. 배가 고프다는 알아차림이 신체적 마음현상이라면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아는 마음은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으로서 지적인 자각능력에 속한다. 이는 인간에게 나타나는 아주 특별한 마음현상이다. 이것을 유식불교에서는 세 번째 마음, 원성실성(圓成實性)이라고 한다.
배가 고픈 줄을 알고, 슬픈 줄을 아는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이 마음은 恒常 내 안에 있으면서도, 因緣을 따라서 對相에 反應하면서도, 기뻐하고 슬퍼하면서도, 그것에 물들지 않는다. 本來 스스로 원만하고[圓], 부족함이 없이 스스로 완성되어 있으며[成], 무엇보다도 참되다[實]. 이것은 어떤 물건인가?
명상싱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281호 / 2015년 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