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과보
法句經의 게송을 하나 읽어 드리겠습니다. “악한 짓을 한 사람은 이생과 내생에서 근심한다.
그는 두 생에서 모두 근심 걱정한다. 악행은 늘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善한 일을 한 사람은
이생과 내생에서 기뻐한다. 그는 두 생에서 모두 기뻐한다. 선행은 늘 그를 따라다니며 평안을 준다.”
惡을 행하면 악의 흔적이 남고 악의 업장이 남고 악의 습관이 남는다. 악한 행위는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惡의 氣運을 남기게 된다. 그렇기에 악을 행하게 되면 내 안에 악의 記憶과 악의 習慣이
남아 있으므로 그 다음에도 선보다 악을 행할 確率이 높아진다. 한 번 해 본 것은 그 다음에는 더
쉽기 때문이다. 이처럼 習慣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習性을 가지고 있다. 선의 習慣은 계속해서
선을 만들어내고 악의 습관은 계속해서 악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잘난 척 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치자. 그 때 우리의 反應은 둘 중 하나이기 쉽다.
첫째는 그 자랑을 받아주며 칭찬해 줄 수 있고, 둘째는 잘난 척 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 쏘아붙일 수도
있다. 前者의 반응을 보인 사람은 이제 뒷날 똑같은 상황을 만나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그 자랑을
받아주며 칭찬해주기 쉽다. 몸에 한 번 記憶되었고, 習性으로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後資로 기분 나쁘게 반응한 사람은 다음에 똑같은 상황을 만나더라도 그런 사람이 꼴보기 싫고
밉상으로 느껴지기 쉽다. 그리고 또 다시 그런 상황을 만난다면 그 때부터는 자동적으로 반응이 튀어나온다.
전자의 반응을 한 사람은 끊임없이 칭찬해 줄 일이 생기고, 후자의 반응을 한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꼴보기
싫은 사람이 생겨난다.
돼지잡이를 55년 동안 해 온 백정 춘다는 돼지를 평생동안 살생한 업을 지음은 물론, 성격도 잔인했으며
착한 일은 거의 하지 않고 지냈다고 한다. 그 결과 죽음에 이르러 손이 돼지발처럼 안으로 오그라들면서
죽기 전 7일 동안 지옥의 고통을 겪었다고 하고, 죽은 뒤에도 아비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반면에 담미까라라는 한 재가신자는 평소 계행(戒行)을 잘 지키고 덕이 많으며 늘 보시를 생활화하였고,
무엇보다도 수많은 비구스님들의 탁발을 위해 항상 공양 준비를 해 주었으며, 14명이나 되는 아들과 딸들
또한 부모님의 덕을 보고 배워 계행과 보시를 실천하였으며 늘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지혜로운 삶을 살았다.
이런 결과 대장장이 춘다의 죽음과 상반되게도 담미까라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는 밤낮으로 비구스님들이
찾아 와 독경해 주었고, 죽을 때도 천상의 신들이 내려와 마중해 주었고, 죽음 이후에도 도솔천에 태어났다고
한다.
이처럼 이번 생에 행한 선행과 악행은 고스란히 죽을 때까지 이어지고, 죽음 이후에도 그 결과가 다음
생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의 선행이 중요한 것이고, 한 번의 악행이 위험한 것이다. 그것은
그 한 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습관을 만들어내면서 끊임없이 우리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화낼 상황에서, 악업을 지을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자비롭게 대해보라.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그래서
연습하고 습관화해 보라. 한 번, 두 번 선행과 자비가 이어지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훨씬 쉬워진다.
똑같은 화날 상황에서 두 번째, 세 번째, 또 그 다음으로 갈수록 훨씬 자비롭게 대응하기가 쉬워진다.
벌써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선행으로 이생과 내생에서 계속해서 기쁨을 누릴 것인가, 악행으로 이생과 내생에서 언제까지고
근심과 걱정을 안고 갈 것인가.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