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분 장엄정토분> 淨土를 莊嚴하다 | 법상스님의 금강경과 마음공부
소함 | 2016.04.28. 13:48 http://cafe.daum.net/truenature/S87Y/39
앞의 一相無相분에서는 깨달음이라는 槪念, 相에도 머물러 執着하지 말아야 함을 말하였는데,
이 분 장엄정토분에서는 그러한 가르침을 정토장엄이라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표현을 빌려 다시
한 번 강조하시면서 정토를 장엄한다는 相을 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정토를 장엄한다거나,
불교를 수행한다거나, 중생을 구제한다거나 하는 등의 일체의 相을 깨버릴 것을 강조한다.
깨달음이라는 相에도, 정토라는 相에도, 부처라는 相에도, 그 어떤 相일지라도 相에 집착해서
머무는 마음을 내면 그런 相에 執着하는 마음은 온전한 깨달음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눈 귀 코 혀 몸 뜻의 對相 境計인 色聲香味觸法 그 어떤 對相에도 마음이 머무는 바가
없어야 하며 마땅히 머무는 바 없는 마음을 내도록 이끌어 줌으로써 일상생활 속에서 '함이 없이
하는 道理'를 일깨워주고 있다.
어느 때 선혜라는 젊은 행자가 있었다. 생사의 진흙 수렁 속에서 방황하는 자신과 세상의 모습을
보고 크게 發心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큰 行願을 일으켰다. 연등부처님께서 거리로 걸어오시니,
선혜행자도 시민들과 함께 푸른 연꽃을 들어 바치었다. 마침 그 때, 연등부처님께서 걸어가시다가
진흙탕 앞에 이르셨다. 이 모습을 본 선혜행자는 입었던 사슴 가죽옷을 벗어 진흙탕에 깔고 그것으
로도 부족하자 엎드려 자기 머리털을 풀어 길을 만들었다.
이때에 연등부처님께서 선혜 행자를 향하여 찬탄하셨다. "아 장하다. 선혜여! 그대의 보리심은
참으로 갸륵하구나. 이같이 지극한 공덕으로 그대는 오는 세상에 결정코 부처가 되리니, 그 이름을
석가모니라 부르리라."
이렇듯 연등부처님은 선혜행자에게 석가모니가 되리라는 授記를 주셨다. 그런데 이 금강경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은 왜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어떤 법도 얻은 바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가.
'금강경'은 일체의 모든 방편, 상을 타파하고 根本, 本質, 根源을 드러내는 가르침이다.
'금강경' 앞에는 일체의 그 어떤 방편도 상도 붙거나 설 자리가 없다.
누가 누구에게 깨달음을 傳해줄 수가 있는가? 누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가? 참된 깨달음은
傳해주거나 傳해받는 어떤 物件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주고받
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깨달음은 항상 영원히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現存하고 있다.
깨달음, 진리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그대 앞에서 항상 참된 모습으로 꽃을 피워내고 있다.
아니 당신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깨달음의 증거이며 부처(佛)의 顯身이다.
우주삼라만상만물, 이 세상 모든 것들, 우리들은 本來부터 이미 完全하게 完成되어 있는 부처다.
이미 깨달아 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전해 받을 필요도 없고 얻고자 애쓸 일도 없다.
진리, 깨달음은 항상 영원히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다. 오고 감이 없이 如如不動하게 늘
그 자리에 있다. 진실이 이러할 진데 어찌 두 부처님 사이에 法, 眞理가 오고 갈 수 있다고 말 할
수 있단 말인가. 오고 가고 할 진리, 깨달음이 없는데...
(금강경과 마음공부 p.188~19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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