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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하지 않으면 그 자리가 적멸

장백산-1 2016. 7. 12. 01:50

분별하지 않으면 그 자리가 적멸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남들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기를 바랍니다. 남들이 내게 욕도 안 하고, 나의 

말도 잘 들어주고,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기를 바랍니다. 이런 마음 가짐은 내 마음대로 世上을 統制

하려고 意圖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世上을 統制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統制가 되지 

않습니다. 


왜그러느냐하면 宇宙는, 法界는, 眞理의 世界는 제 스스로 自然스럽게 自然의 法則에 依해서만 움직일 

뿐이지, 인간인 나 한 사람의 마음대로만 움직여주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 마음 하나

조차도 내 마음대로 統制를 못 하는데 어찌 남들이나 세상을 統制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 입도 내 스스

로 統制를 못하죠. 그래서 할 말 안 할 말 다 하지 않습니까. 내 生覺도 스스로 統制가 안 되죠. 是非하

고 分別하는 生覺 망상 번뇌 상념 의식 마음 즉, 分別심 분별의식 없이 고요히 명상하려고 앉아 있어도 

온갖 시비 분별하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生覺 망상 번뇌 상념 의식 마음 즉, 분별심 分別意識 알음알이

(識)들이 끊임없이 올라오잖아요. 그러면서 어떻게 남들이나 이 世上을 統制하겠다고 마음을 먹습니까.


오히려 世上을, 혹은 남들을 統制하려는 마음을 먹지 말고 , 세상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어떻게 해 보

려는 내 마음에 問題가 있음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남들이 하는 일에 일일이 是非를 걸고, 世上

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일일이 是非하고 分別하는 내 分別心 分別意識을 오히려 問題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事實 이 세상, 이 삶에서 벌어지는 남들의 行爲에 是非를 걸고 分別을 하는 내 分別心 分別

意識이 問題인 것이지, 나에게 시비 걸지도 않는 상대방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을 統制할 수도 없고, 그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대로, 業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잘 모르는 젊은이가  내게 욕을 하면 곧바로 화를 내고 反應을 합니다. 저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나를 

무시하는구나 하고 말이지요. 이런 反應 이게 바로 分別心입니다. 나이가 많다 적다, 너다 나다, 욕이다 

칭찬이다 등등으로 계속 分別하는 마음입니다. 事實 누가 나에게 욕했을 때 그 욕에 反應한다는 것은 

逆으로 나에게 욕을 한 상대방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고 나는 그의 욕이라는 소리에너지 波動에 휘둘

리는 노예의 처지로 전락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욕을 얻어 먹은 것도 억울하고 분해서 죽겠는데,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쥐락펴락할 힘을 실어주면서 

내 스스로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는 노예같은 신세가 된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억울하고 나 

자신을 두 번 죽이는 일입니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지요. 사실 욕 자체는 中立的인 에너지일 뿐입니다. 

정신적으로 좀 부족한 사람 그 사람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욕을 하면서 다닌다면 그걸 보고 그렇게 

괴로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욕을 하더라도 그 욕을 듣고 우리가 괴롭지는 않지요. 


이처럼 ‘욕’이라는 하나의 境界가 왔을 때 인간은 욕이라는 그 경계에 반응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내 스스로 반응하면서 화를 내면서 괴로워하는 것이 문제일 뿐인

거지요. 그러니 이제부터 어떤 괴로운 일이 생겨나더라도,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分別心을 지켜본 뒤, 

잠시 멈춰서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그저 許容하고 解釋하지 말아 보세요. 있는 그대로 놔두게 되면 

그 境界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요하고 圓融自在해 지는 겁니다. 


그 누구와도 是非 分別하며 싸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의 주도권을 내 안에 굳건히 두게 되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外部 境界에 일일이 일희일비하면서 살지 않을 수가 있다는 말이지요.

우리들, 우주삼라만상만물, 이 세상 모든 것들의 마음의 本來 性稟, 本性은 본래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

다. 둘로 나누면 괴롭지만 本性 그대로 둘로 나누지 않고 圓融하게 하나로 바라보면 괴로울 것이 없어

집니다. 그저 고요하고 움직임이 없고 寂滅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움직임이 없고 寂滅이 되는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법성게는 ‘諸法不動本來寂’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원래부터 움직인 적

이 없이 본래부터 고요하다는 거지요. 일상생활 속에서 인간의 마음도 이처럼 不動本來寂일 수 있습니

다. 諸法 즉, 宇宙萬物의 본 바탕 法性은 圓融하여 無二相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 세상 우주만물을 

둘로 나누지만 않으면 곧바로 諸法 즉, 이 세상 우주만물은 不動하여 本來의 寂滅로 돌아갑니다.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