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주만물의 창조주
佛敎에서는 唯識無境이니, 一切唯心造라고 우리 人間 바깥에 있는 온갖 現象으로 現示되어 있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고정불변하는 실체로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헤아리기를
좋아하는 생각 망상 번뇌 잡념 의식 마음 卽, 알음알이(識), ,지견, 견해, 이해, 지식, 분별심, 분별의식이
만들어낸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꿈, 신기루, 허깨비, 무러품, 그림자, 이슬 같은 것임을 말 합니다.
예를 들어 보면, 사람들이 많이 북적이는 저 명동 거리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
나니고 있지만, 수 많은 그 사람들이 도대체 누군지에는 우리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거기에
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군중들 가운데 하나일 뿐, 나에게는 별 볼일 없는 존재들이나 다름이 없지요.
그런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과 부딪쳐서 내가 넘어졌고, 일어나보니 너무 예쁘거나 멋있어서
첫 눈에 반해 버렸다고 해 보죠. 그 사람과 사랑에 빠졌고, 차도 한 잔 하게 되고, 전화번호도 교환을 했
어요. 그러면 이제부터 그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이제부터 내 認識의
범주 안으로 들어와서 아주 중요한 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는 저기 어딘가에 있을 수많은 인간들 중에 한 명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또렷하게 내가 큰 관심을 갖
고 사랑하고 애착하게 된 한 사람으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즉 비로소 내 認識의 범주 안에 어떤 한
존재로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 모든 존재는 事實 내 認識의 觀點에서 보았을 때는 없던 存在가 因緣에 따라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이를 일컬어서 因緣生이라고 말하지요. 이처럼 인간이 삶에서 만나
고 마주하게 되는 우주만물, 卽 우리 인생에 나타나는 一切 모든 것들은 고정된 실체가 없는 因緣에 의
해서 생겨나는 꿈, 허깨비, 신기루, 물거품, 그림자일 뿐, 고정불변하는 실체로서 實際로 있는 것이 아
닙니다.
因緣生이란 因(직접원인)과 緣(간접원인)이 和合함으로서 臨時的인 假合으로, 因緣假合으로 卽 가짜로
合쳐져서 만들어진 고정된 실체가 없는 텅~빈 虛妄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내 삶에 등장합니다. 관심이 없을 때는 없었던 것들이 내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인물이나 사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이 무언
가를 보고, 그것에 관심을 갖고 執着하기 시작하면 텅~비어 있던 근원의 바탕에서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十二緣起에서 말하는 觸-受-愛-取-有-生-老死라고 하는 우울함 슬픔 고통이 緣起되는
과정입니다. 觸은 무언가를 보고 接觸하는 거에요. 보고 나서 관심이 가고 좋아하는 것에 좋은 느낌을
느끼며 빠져들게 됩니다. 이게 受지요. 점차 그 느낌에 愛着하고, 執着해서 갇고 싶어하는 마음(愛)가
생깁니다. 이게 愛와 取입니다. 이처럼 愛와 取의 결과 有가 생겨요. 有란, ‘있음’으로 무언가가 내 삶
위에 등장했다는 말입니다. 因緣生으로 생겨났다는거에요. 그렇게 ‘있음(有)’으로 등장하면서 그것이
굳어져 生이 되고, 노사우비고뇌하는 괴로움이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執着하는 對相이 생겨나면 그 執着心과 有의 결과 因緣生으로 이 세상 온갖 것들이 생겨납니다. 이처럼
人生이란 꼭 삶이 시작되는 것만이 人生이 아니라, 우리 人生에서 무언가에 關心을 두기 시작하거나, 執
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무언가가 생겨나면 꼭 그것은
生老病死, 生住離滅, 成住壞空, 生成消滅이라는 變化의 發展을 거쳐 結局 사라지는 過程을 거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싸우기도 하고 사랑이 변해 결국 헤어지기도 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인연따라 생겨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고정되 실체가 아니라 텅~빈 허망한 것들이고, 諸行無常이며 諸法無我로서 잠시잠
깐 왔다가 가는 꿈, 허깨비, 신기루, 물거품, 그림자 같은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事實을 알게 된다면, 무
엇을 과도하게 잡착해서 그것에 얽매임에 따른 허망한 괴로움도 사라져 갈 것입니다.
무언가 좋아하는 어떤 것이 생겼습니까? 어떤 좋은 일이 벌어졌나요? 그것은 사실 내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망상 번뇌 마음 의식 즉, 알음알이(識), 지견, 견해, 이해, 분별심, 분별의식 스스로 만든 것일 뿐이고, 내
스스로 執着을 버릴 때까지 實體的 存在로 認識되어 나를 괴롭힐 것입니다. 결국 내기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우주만물의 主管者이며, 創造者이며 主人公입니다. 우주만물 거기에 휘둘릴 이유가 없는 이유이지요.
내가 만들어낸 것에 내 스스로 얽매여 휘둘릴 필요는 없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법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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