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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수행, 공부가 잘 안되는 이유는?

장백산-1 2016. 8. 3. 15:12

집중, 수행, 공부가 잘 안되는 이유는?


수행을 해나가다 보면 차츰 조금씩 是非하고 分別하고 比較하교 判斷 解釋하고 헤아리는 生覺 雜念 

妄想 번뇌 의식 마음 즉, 알음알이(식) 분별심 분별의식 지견 견해 이해가 점차 줄어들면서 고요한 

집중(三昧)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아 이것이 기도와 수행하는 이유구나' 라는 것들을 언뜻 

느끼게 됩니다.


근데 이렇게 이런 얘길 하면 이제 좀 갑갑한 분들도 계실겁니다. '난 이런 걸 못 느끼는데, 이것 참 

내가 수행을 잘 못 하고 있는 것이구나'  이렇게 生覺하기 십상인 분도 계실거라는 말이니다.


그건 왜 그러냐! 어떤 사람은 參禪을 해도, 어떤 修行을 해도, 集中이 탁 잘 되고, 공부가 잘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잘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왜 그런가? 그것은 基礎가 잡혀

있지 않아서 그런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 基礎(기초)를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 基礎공사가 잘 되어있어야 그 위에 다른 공사를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수행의 기초를 튼튼히 하지 않고서는 그 위에 그 어떤 수행의 집을, 깨달음의 집을 완성할 수가 없다

는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수행의 기초냐?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초가 무엇이냐?

이 修行의 基礎 이것이 이제 重要한 겁니다.


修行이 잘 안 되고, 集中이 잘 안 되고, 공부가 잘 안 되는 理由가 뭐겠습니까? 常識的으로 곰곰하게

生覺해 보면요, 마음이 集中이 안 되고 고요해지지 않는다, 온갖 執着心과 慾心 欲望이 끊임없이 일

어났다가 사라져간다.


그러면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 내 마음에 뭔가 모르게 汚染된 것들이 잔뜩 쌓여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의 內面이 煩惱와 妄想 分別과 業障과 貪慾心과 執着心과 利己心과 나라고 하는 존재가 있다고 生覺하

는 錯覺 즉, 我相으로 그냥 잔뜩 복잡하게 얽히고 쌓여있기 때문에 수행 집중 공부가 잘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內面을 살펴보면 얼마나 복잡하고 얼마나 정말 오염된 것들이 많이 쌓여있겠습니까? 내 속

에 수많은 또다른 내가 있는 것이지요. 지금 당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인간들이 이 번 生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또 過去 前生, 그 前 前生, 수십 겁, 수억 겁을 반복하면서 윤회하면서 수십, 수백 번, 

수천 번 골백억번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나고 죽고 나고 죽고 반복하면서 지금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얼마

나 많은 身口意 三業 즉, 몸으로 짓는 행위(업), 말로 짓는 행위(업), 생각 뜻 의식 마음으로 짓는 행위(업)

을 수도없이 지었겠습니까? 그 業들이 얼마나 많은 罪業입니까?


분명히 우리들 인간은 수십억겁을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많은 罪業을 짓고 살아왔다는 事實입니다. 이런 

事實을 明確하게 認定할 수 있어야 하고 理解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우리들 人間의 內面에 

너무나도 수많은 業이 쌓여있다 보니까, 業障으로 그냥 잔뜩 汚染되어서 더럽고 탁하게 물들어 있다 보니

까, 그 業障 때문에, 그 업장이 우리의 수행을 공부를 방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쉽게 말해서,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 집을 방문 할 때, 그 집안이 너무 지저분하고 냄새도

풀풀 나고 복잡하고 어수선하고 이러면 그냥 산뜻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가지도 못하고 괜히 그런 집에는 

들어가기만 해도 내 마음도 따라서 어지럽게 수선스럽고 흐트러지게 되죠. 人間의 마음도 흐트러집니다.

그런 집에는 별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온갖 身口意 三業으로 汚染되어 있는 우리 人間의 內面이 말끔하고 淸淨하게 텅~비워

져서 깨끗하게 業障의 汚染으로부터 벗어나 있어야지만 우리에게도 비로소 깨달음이라는 것이 찾아올 

수가 있다는 겁니다.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