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한 개의 향기뿐
마음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고, 부처 또한 둘이 없습니다. 진정한 나 또한 이 세상에 둘이 없고,
깨달음이니, 근본, 근원은 둘이 없습니다. 어떤 길을 가든 모든 깨달음은 오로지 둘 없는 하나의 일에
통하는 일입니다.
때에 따라 사람들의 근기에 맞게 머물지 말라, 말과 생각을 따라가지 마라, 집착을 놓아버려라, 분별심
에 사로잡히지 마라,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라고 말은 하지만 다른 길이 별도로 따로 있기
때문에 이런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의 眞實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分別心에 구속되
어 있는 사람들을 허망한 그 분별심에서 깨어나게 하려는 의도로 하는 말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길을 걷다가 무심히 깨닫고, 어떤 사람은 법문을 듣다가 자기도 모르게 여기에 눈을 뜨며,
어떤 사람은 닭울음 소리에 本性을 자각하고, 어떤 사람은 대나무에 돌 부딪치는 소리, 어떤 사람은 책
상을 두드리는 소리에, 어떤 사람은 기지개를 켜다가, 어떤 사람은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중에, 어떤 사
람은 텔레비전을 보다가 무심히 本性을 깨닫습니다.
이런 인연이 없는 사람은 6박 7일 동안 화두와 씨름하다가 깨닫고, 어떤 사람은 석 달 열흘 동안 의심에
사로잡혔다가 本性에 눈을 뜹니다. 그러나 백날, 천날을 궁리해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위해 '말과 생각을 따라가지 마라, 분별에 떨어지지 마라'는 方便을 써서 말을 하지만 이것은 마
지못해 하는 말입니다.
이 우주, 이 현실세상, 산하대지, 산지사방에 오직 이 하나(本性)의 일만이 있을 뿐입니다. 온갖 소음이
바로 本性의 일이고, 온갖 사물이 바로 本性 그 자체고, 비바람과 낙엽 떨어지는 일이 바로 本城의 일입
니다.
本性에 通할 때는 이것저것 분별하고 따지고 비교하고 계산하고 머리굴리고 헤아리지 않고 단박에 本性
에 通합니다. 그러니 本性에 통하는 일은 결코 시간이 걸리지 않는 일이고 의외로 아무런 마음의 준비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밟듯이, 아니면 그저 法門에 이끌려 들어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슬그머니 이 일, 本性에 눈이 뜨입니다.
本性에 通하는 일은 특별한 사람만 가능한 일도 아니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찬란하거나 특별한 이벤
트를 동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문득 이 일, 本性이 내게 와 닿았다면 여기에서 모든 시비 분별 생각
망상 번뇌 잡념을 내려놓고 푹 쉬면 될 일이지, 왜 시원하지 않느냐, 통밑이 빠지지 않느냐, 왜 여전히 삶
의 문제가 남아있냐느니, 왜 남들처럼 큰 체험이 일어나지 않느냐는 뒷 妄想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시비 분별 비교 생각 번뇌 잡념 망상이 바로 이 일, 本性을 떠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本性은 누가 준 물건도 아니고, 스스로 난행고행해서 얻은 물건도 아니고, 이 세상을 이잡듯이 뒤져서 찾
아낸 물건도 아니지만 영원히 늘 나를 떠나 있지 않았고, 늘 변함없으며, 세상의 모든 것을 머금고 토해내
는 것이자 모든 일 그 자체. 이 소식이 왔다면 희미하나마 本性의 香氣 이 하나에 마음을 둘 뿐 다른 것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치자나무 숲 속에 들어가면 언제나 치자꽃 향기만 맡을 뿐 잡다한 향기에 마음이 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 릴라님-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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