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으로 읽는 복음] 09. 거듭남
바리사이파 사람들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밤에 예수를 찾아와서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하
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나
님의 나라(천국)을 볼 수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니고데모는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야 없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물과 성령(聖靈)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
肉에서 나온 것은 肉이며 靈에서 나온 것은 靈이다. 새로 나야 된다는 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바람 소리를 듣고도 그 소리가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
지를 모른다. 聖靈으로 난 사람은 누구든지 이와 같다."
[요한복음, 3:1~8]
禪의 언구(言句) 가운데 대사각활(大死却活), 곧 ‘크게 죽어야 도리어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자신
을 육체와 느낌, 감정, 생각, 의지, 인식 분별심과 同一視해 왔던 뿌리 깊은 고정관념, 착각, 어리석음,
幻想으로부터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벗어나게 되는 체험을 일컬어 크게 죽는 것이라고 말 합니다.
크게 죽으면, 다시 말해 이제까지의 잘못된 자아 동일시, 자아 정체성에서 벗어나게 되면, 이전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로움, 홀가분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거그런 경험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다시 살아나는 경험, 편안하고 홀가분한 것
역시 또 다른 境界에 묶여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자각을 통해 그런 경험에서도 다시 깨어나야만 합니다.
고요하고 편안한 경계에 집착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여전히 망상 번뇌와 구속이 실다운 것이란 망상
에서 완전하게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란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해 세운 또 다른 方便의 門입니다. 몸
소 깨달음을 체험하고 나서는 반드시 그 깨달음이라는 모양, 경계에서 다시 깨어나야 합니다. 깨달음이
란 것이 남아 있다면 깨닫지 못함이란 또 다른 극단 역시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 그 양변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예수를 찾아 온 바리새인 니고데모란 사람은 禪의 입장에서 보자면, 형식적인 수행주의자, 겉으로 드러
난 계율에 구속된 자, 수행과 깨달음을 둘로 나누어 보는 分別에 떨어진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중에 예수를 찾아 온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 나라의
존재에 대해 뭔가를 감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는 새로 태어남, 다시 태어남, 거듭 태어남에 대해 말 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새
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니고데모 또
한 예수의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區別되는 육체와 정신을 가
진 個別的 존재로 알고 있는 한 거듭 날 수는 없습니다.
眞正한 자기 자신은 이 肉身이 아님을, 느낌이나 감정, 생각, 경험의 기억, 인식 분별심의 혼합물이 아님
을 사무치게 깨달아야만 잘못된 自我 同一視에서 벗어납니다. 限界가 있는 自我란 한낱 허구에 불과하다
는 통찰(洞察)이 바로 자아의 소멸, 무아(無我)의 증득입니다. 참된 나 자신이란 이제껏 나라고 여긴 이
몸과 마음이 아니란 깨달음, 그러한 나와 같은 개별적 존재는 없다는 깨어남을 통해 회복됩니다.
없는 것처럼 있는 나, 하나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의 세례가 필요합니다. 기존의 잘못된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을 물을 뿌린 듯 깨끗이 털어낼 말씀, 가르침과 가장 직접적인 성령 체험, 깨달음 체험이
필요합니다. 뜨거운 불꽃이 맨살에 닿듯 어떤 이해, 분별, 판단 없는 즉각적인 체험, 의심할 수 없는 체득
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스스로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육(肉)에서는 肉만이 나옵니다. 分別에서는 分別
만이 나오고, 회의(懷疑) 가운데서는 회의만이 나옵니다. 오직 영(靈)에서만 靈이 나오고, 생각 아닌 것
에서만 생각 아닌 것이 나오고, 허망하지 않은 것에서 허망하지 않은 것이 나오고, 영원한 것에서 영원한
것이 나옵니다.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바로 하나님임을 알라.
(침묵)
바람은 보이지는 않고, 잡히지 않지만 분명 존재합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불고, 가고 싶은 대로 갑
니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그 바람 소리가 어디에서 불어와서,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지
못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者 또한 그렇습니다. 그에게는 탄생도 없지만, 죽음도 없습니다. 그는 분명
존재하지만 없고, 없지만 분명 존재합니다.
스스로 크게 한 번 죽었다 다시 살아나야만 비로소 이 일, 本性을 수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시 묵상)
- 몽지님-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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