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가 고정된 실체가 없다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諸行無常, 無有定法)
깨달음이란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시간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지금 여기서
깨닫지 못했으나, 미래에 언젠가는 깨달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자신은 깨달음을 체험
하지 못했으니, 마음공부를 해나가다 보면 미래에 언젠가는 깨달음을 체험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나는 깨닫지 못했으나 저 사람은 깨달았고, 나도 저 사람처럼 깨닫고 싶어합니다.
지금 여기서의 나의 삶은 불만족스러우니 깨달음을 통해 모든 불만족에서 벗어나는 삶을 꿈꿉니다.
이런 생각도 아니라면 지금 여기의 나는 깨달을 역량이 없으니까 이번 생에는 착한 일이나 하면서
깨달을 수 있을만한 그릇을 만들어 놓고 내생에 깨닫겠다고 미룹니다.
그러나 이 같은 이런 저런 생각들은 참된 깨달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일으키는 생각들입니다.
과거 전생에 석가모니가 무구광(無垢光))이라는 어린 童子 시절에 연등부처님을 만나 내세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授記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法華經 方便品에 실려있습니다. 이 연등불이 준 授記를 놓고
불교 집안에서는 여러가지 말이 많습니다. 도대체 연등佛이 無垢光이라는 이름의 어린 동자의 어떤
面을 보고서 佛(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授記)를 했을까? 그 授記의 내용은 무엇일까? 깨달은 자라
면 누군가의 깨달음을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인가?
<금강경>에 이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生覺하는가? 석가모니여래가 연등부처님(燃燈佛)의 처소에서 어떤 固定된
法이 있어서 最上의 깨달음(無上正等正覺)을 얻었는가?” “아닙니다. 석가모니세존이시여, 제가 석가
모니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에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연등부처님의 처소에 계실 때 어떤
固定된 法이 있어서 最上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러하니라, 수보리야. 眞實로 어떤 固定된 法이 있어서 석가모니부처인 나 如來가 最上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固定된 法이 있어서 석가모니여래가 最上의 깨달음
을 얻은 것이라면, 연등부처님께서는 결코 나 석가모니여래에게 ‘그대는 다음 세상에 반드시 부처를
이루고 그 이름을 <석가모니>라고 하리라.’라는 수기(授記)를 주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眞實로 어떤
固定된 法이 있어서 最上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다. "
燃燈佛과 석가모니 전생인 無垢光 童子의 만남에서 연등불이 授記를 해주었는데 이때 授記의 내용은
어떤 固定된 法이 없었기에 授記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固定된 法이 없는 授記를 해주었지만 固
定된 法이 없는 授記이기 때문에 授記를 받은 적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석가모니 전생인 無垢光 童子
가 燃燈佛을 만나는 過程에서 燃燈佛도 없었고 無垢光 童子 自己도 없었으며, 연등불과 대화를 나누
고, 연등불에게 꽃을 받치고, 진흙 위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펼쳐놓아서 연등불이 밟고 지나갔지만 모
든 그런 일들이 없었다는 事實 즉, 이 세상에는 어떤 것도 固定된 法이 없다는 眞實을 알았기 때문기에
연등불이 무구광 동자에게 授記를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授記를 받았지만 授記는 固定된 法이
아니기 때문에 授記를 받은 그런 적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과 나중, 나와 깨달음을 分別하고 나누어서 지금 깨닫지 못했으니 나중에 깨달을 것이
다라는 分別하는 生覺이 일어날 때 이 한 生覺이 固定된 法이 아니기에 텅~비었음을 알차리는 것이
참된 깨달음이자 授記라는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온갖 生覺이 固定된 것이 아니기에 虛空과 같은
것임, 幻想일 뿐이라는 事實을 밝게 알아보는 것이 참된 깨달음이자 授記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現示되어 드러나는 정신적 물리적인 온갖 現象들이 그것 그대로 그것이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事實에 대한 깨우침, 自覺이 참된 깨달음, 즉 授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이라는 시간 속에서 깨닫는 것도 아니고 未來에 깨닫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이 지금 이 순간이라는 固定된 法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는 事實을 깨우치
는 것이 깨달음이고, 미래가 미래라는 고정된 법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
치는 것이 깨달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과거, 현재, 미래의 무수한 세월 속에 깨달음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과거라고 말하는 이때 過去라는 固定된 法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가 과거
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참된 깨달음, 授記이고 현재, 미래라는 말을 할 때에 현재와 미래라는
固定된 法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가 현재와 미래가 아닌 것이라는 事實을 깨우치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 즉, 授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깨달음이라는 固定된 法도 없을 뿐만 아니라, 固定된 法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은 固定된
法이 없는 實體가 없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固定된 法이 없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固定된 法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은 固定
된 法이 없는 시간과 공간이 드러날 때 더 이상 깨달음이 아닌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선사들은
이 事實을 일컬어서 개구즉착 동념즉괴(開口卽錯 動念卽乖) 즉, 입을 벌리는 순간 틀어지고 생각을 일으
키는 순간 어긋난다 라고 했고, 금강경에서는 무유정법(無有定法) 즉, 이 세상에 미리 定해진 法(것, 존재,
현상)은 단 하나 어떤 것도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세상, 이 우주, 이 삶은 固定된 法이 없는 虛空과 같
은 꿈, 신기루,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와 같은 허망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온갖 것들이 사람들
눈 앞에 일어날 때 그것들 전부 실체가 없는 텅~빈 虛空과 같은 것들입니다. 실체가 없는 환상일 뿐인 온
갖 시간과 공간 속에서 드러나는 온갖 현상들이 그게 그게 아닌 텅~빈 虛空과 같은 것들입니다. 허공에
피어있는 한 송이 허공꽃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드러나는 모든 것 가운데 깨달음이 있는 게 아니고, 나타나는 그것들을
떠나 있는 깨달음도 아닙니다. 깨달음이라고 말 할 때, 그 깨달음이라는 말에만 깨달음이 있는 것도 아
니고 깨달음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 말에만 깨달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固定된 法이 없는 깨달음 그대
로이자 固定된 法이 없는 깨달음 그것이 아닌 이것, 눈앞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전이 깨달음
이라는 이름으로 상징하는 것입니다.
가을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옵니다. 가을 바람이 불 때 이것 그대로 아무런 자취도 실체도 없는 일입니다
가을바람이 그냥 그저 서늘하게 불어옵니다.
- 릴라님-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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