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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이 주는 가르침을 무정설법(無情說法)이라고 하지요. 자연현상이 깨달음을 줄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가 사람이 하는 유정설법(有情說法)이겠군요. 여기서 말하는 '정(情)'은 '느낌(感)'과 '욕망(慾)' 또는 '뜻(意志)'과 같은 사람이 갖는 '마음의 작용'이겠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무정'이나 '유정'이나 모두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의식현상'의 범주에 드는 것이니 구분이 무의미하겠네요.
희망과 의지가 빠져나가서 무기력한 상태에 떨어져 있거나 신나는 일이 거의
없어 세상 살 맛이 도통 안 나거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서 무슨 짓을 할 지 모를 때는 자연이 늘어놓는 무정설법에 귀를 기울여 봄직합니다.
무정설법은 부담을 주지 않아요. 졸더라도 죽비로 내리치거나 귀를 잡아당기지 않습니다. 긴장할 필요가 전혀 없지요. 어려운 문구를 사용하지 않아서 듣기에 아주 편하답니다. 얼마나 대기설법(對機說法)에 능하면 듣는 이의 깜냥에 맞게 들릴까요.
무정들이 하는 설법은 제각기 알아들으면 되는 내용이어서 따로 설명과 해석을 보태는 전문가가 필요치 않아요. 그래서 거슬리지 않는답니다.
무정설법에는 무엇보다 수강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아요. 저는 세상에 공짜가 없는 줄 알면서도 곧잘 공짜를 찾는답니다. 거지 근성에 젖어있다며 욕을 해도 어쩔 수가 없어요.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공덕을 쌓게 하는 것'을 보답으로 여기고 있으니 이를 받아주면 좋고 안 받아 줄 땐 그게 인연이려니 한답니다. 상당히 편리한 발상이지요? 사실은 부담 능력이 없어서 그렇답니다. ㅋㅋ
자, 그러면 자연의 설법에 귀를 기울여봅시다.
(동영상 ; 동해바다)
바다가 보이고 파도소리가 들립니까? 이제 그곳으로 관심이 이동한 것입니다.
실망의 대상에서, 따분함의 대상에서, 그리고 분노의 대상에서 나왔습니다.
화의 심지이자 연료인 '대상과 정보(기억)'를 꼭 붙들고 있던 뇌중추신경에서
바다를 보면서 파도소리를 듣고 있는 뇌중추신경으로 에너지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 순간 바다와 파도소리가 나의 意識을 가득 채우고 있지요. 이 때가 중요합니다.
자연의 에너지를 받아서 내공을 다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기도할 때의 마음이 현실경계에서 허물어지는 이유입니다.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피곤이 더할 뿐입니다.
마치 괴로움을 달래려고 술을 마시지만 깨어날 때 고통이 더 심해지는 것과 같지요.
때 묻지 않은 자연으로 튼실한 집을 지어야 합니다. 내면의 정보를 다시 배열하고
논리를 재구성하자는 것이지요. 認識의 轉換입니다.
인식의 전환은 당면한 숙제와 처한 현실의 의미를 재해석한 다음 인생 경로를 수정하는 일입니다.
눈을 바로 뜨고, 귀를 바로 열면
무정설법 속에서 그런 가르침을 만날 수 있답니다.
[출처] '무정설법'에의 초대 |작성자 21세기선재
천지만물이 모두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無情說法)
溪聲便是長廣舌(계성변시장광설) 시냇물 소리가 그대로 부처님의 장광설이요.
山色豈非淸淨身(산색기비청정신) 산 모습이 어찌 그대로 청정한 法身이 아니겠느냐.
夜來八萬四千偈(야래팔만사천게) 밤새 들려온 팔만사천 법문의 그 소식들을
他日如何擧似人(타일여하거사인) 뒷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들려 줄 수 있을까.
-소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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