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번호 503호, 독방 앞에서 펑펑 운 첫날밤
이상국 입력 2017.04.01. 11:08 수정 2017.04.01. 11:35
수인번호 503. 서울구치소의 그녀에겐 이름 대신 이 번호가 불린다. 그녀로서는 거짓말 같은 첫날밤을 보냈으리라. 구치소의 박근혜 전직대통령이 맞는 2017년 4월 1일 만우절 아침. 얼마전까지 이 나라 수반이었던 사람은, 503번의 수인(囚人)이 되었다.
그녀가 갇힌 뒤 어제 인터넷에선 '영어(囹圄)의 몸'이라는 낯선 말의 뜻이 뭔지에 대한 관심이 불처럼 일어났다. 영어(囹圄)라는 한자어의 모양이 그렇듯 사방 벽과 창살에 둘러싸인 감옥이 영어이며, 옥살이란 말을 완곡어법으로 표현한 말일 뿐이다. 우회적으로 표현해도, 감옥 안의 낯설고 갑갑한 심사야 바뀔 수 없는 현실이다. 503이란 차가운 숫자는 그것을 함의하는 기표이기도 하다.
298억원 뇌물수수 등 13가지 범죄 혐의로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12.01㎡ 면적의 방을 혼자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녀는 그 독방에 들어가기 전에, 문 앞에 서서 펑펑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교도관들이 진정시켜 방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박 전대통령은 하룻밤을 지낸 뒤 아침 7시에 일어나 식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당히 큰 방을 배정받은 것과 관련해 법무부의 설명이 있었다. 일반 수용자 여섯명이 쓰는 공간을 박 전대통령 홀로 쓰도록 정부에서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그러나 독방의 구조와 집기와 관련해서는 규정상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화장실과 세면장을 빼면 실내면적이 2.3평 정도 된다고 한다.
비선 실세로 먼저 구속된 최순실(61)의 독방 1.9평과 비교하면 상당히 더 넓다. 이들에게 독방을 준 까닭은, 다른 재소자와 함께 방을 쓰는 혼거실이 부적절하다는 교정당국의 판단 때문일 것이다.법무부는 방 크기를 제외하고는 방에 비치되는 집기 종류, 식사 등 다른 조건을일반 수용자와 동일하게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1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에서 6.6평 규모의 방과 접견실, 화장실 등 3곳으로 구성된 독방을 배정받았다. 일반 수감자와는 완전히 분리된 별채 형식으로 특별대우를 했다. 같은 해 12월 구속된 전두환 전 대통령도 비슷했다. 안양교도소는 노 전 대통령과 똑같은 처우를 위해 시설을 일부 개조해 6.47평 크기의 독방, 접견실, 화장실을 마련했다.
일각에서는 법률상 파면된 박 전 대통령이 받을 수 있는 '예우'는 경비와 경호 차원에 그친다는 점에서 일반 수용자보다 큰 독방을 제공받을 뚜렷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이 크다고 '영어'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겠지만, 비록 이름도 가려진 503번에게도, 기득 권력에 대한 일정한 배려는 작동되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뉴스본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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