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MB정부 문화계블랙리스트, 이렇게 시작됐다
정용인 기자 입력 2017.09.16. 17:16
82명. 국정원 적폐청산TF가 9월 11일 국정원 개혁위에 보고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이다. 문화계 6명, 배우 8명, 영화감독 52명, 방송인 8명, 가수 8명이다. 국정원의 이번 발표는 2009년 2월 원세훈 국정원장 취임 이후의 활동이다. 청와대로부터의 ‘하달’도 원 원장 취임 이후인 2009년 9월 기획관리비서관이 파악해 지시한 ‘좌파성향 감독들의 이념편향적 영화제작 실태 종합 및 좌편향 방송PD 주요 제작활동 실태’가 처음인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주간경향> 취재를 통해 드러난 것은 그 이전부터다. MB정권 출범 1년차, 구체적으로는 2008년 촛불시위 직후부터 시작됐다.
“평상시 친분이 있었던 영화계 후배로부터 ‘MB정권이 문화계 좌파를 숙청할 계획을 갖고 있다. 형도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 솔직히 믿질 않았다.” 영화제작자 ㄱ씨의 말이다. 그런데 계속되는 이 영화계 후배의 말이 심상치 않았다. “특히 이제 정권이 바뀌었으니 봉준호·박찬욱 같은 빨갱이는 영화를 못 찍게 하겠다는 것이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고 물어보니, 그 후배와 제가 공통으로 아는 또 다른 영화 관계자 ㄴ씨의 이름이 나왔다.”
■실세 비서관의 보좌관 ‘강씨’의 역할은
ㄱ씨는 ‘속는 셈 치고’ ㄴ씨를 만나 전후 사정을 들어봤다. ㄴ씨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MB정부 실세 비서관의 ‘정책보좌관’을 하는 인사가 있는데, 이 인사가 MB정권 문화정책 핵심주체라는 것이다. ㄱ씨도 결국 시치미를 떼고 그 정책보좌관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일을 많이 꾸민다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막상 만난 자리에서는 별 말이 없었다.” 그런 자리는 그 후에도 두세 차례 더 이어졌다. 주된 무대는 강남 청담동의 한 와인바였다. 영화인들이 모이는 자리에도 그 정책보좌관은 조용히 참석했다가 사라지곤 했다. ㄱ씨의 말. “조용히 사람들을 주시하다가 그냥 사라졌다. 온갖 일과 관련돼 있다는, 들리는 소문과 달리 유명 제작자를 만나서는 ‘좋은 영화 만들어주십시오’와 같은 공치사 한두 마디 하는 것이 전부였다.”
ㄱ씨가 지목한 인사는 강모씨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강씨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다만 2008년 12월 4일 창립식을 가진 ‘사단법인 한국문화콘텐츠산업협회’라는 단체의 상근부회장이었다는 경력만 기사에 나올 따름이다. 계속되는 ㄱ씨의 말. “워낙 영화판 주위에는 허당들이 많아 아무리 허풍을 치더라도 돈이 나오기까지는 잘 안 믿는다. 우파영화를 지원하겠다는 말도 안 믿었다. 그런데 한국문화콘텐츠산업협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질 것이고, 거기에 돈이 폭풍처럼 쏟아질 거라는 이야기가 정말 이뤄지는 것을 보고 ‘진짜였던 건가’라고 생각하게 됐다.”
MB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건은 과거 국감에서도 공개된 적이 있다. MB정권 1년차인 2008년 8월 27일 작성된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라는 문건이다. 이 문건의 존재가 뒤늦게 알려지게 된 것은 2012년 10월쯤이다. 문건을 보면 강씨가 ‘영화계 좌파’로 예시했다는 봉준호·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좌파 문화권력이 문화를 통해 국민의식 좌경화’를 이끈 대표적 사례로 제시되어 있다.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킨 ‘괴물’, 북한을 동지로 묘사한 ‘JSA’, 국가권력의 몰인정성을 비판한 ‘효자동 이발사’ 등을 지속적으로 제작·배급.”
문건의 작성 주체는 MB 청와대의 기획관리비서관실로 되어 있다. 2012년 10월 국감에서 노웅래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은 “문건은 청와대 정인철 기획관리비서관이 총괄지휘했고, 함영준 문화체육비서관과 교육과학문화수석실 선임행정관이 참여했다”며 “문화부에서는 유인촌 전 장관, 신재민 전 차관을 필두로 민간단체인 문화미래포럼 출신 장미진 문화부 정책보좌관이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특이한 것은 이 당시 강씨도 MB정부의 ‘실세비서관’ 정책보좌관 명의의 명함을 뿌리고 다녔다는 것이다.
강씨 측근 ㄴ씨는 강씨가 발탁된 배경에 대해 강씨가 작성한 리스트가 국정원의 보고보다 우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당시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영화계 인사 리스트의 경우 국정원 것은 앞의 두 감독처럼 알려진 인사들만 거론된 반면, 강씨 작성 명단엔 어떻게 빼냈는지 조명기사나 촬영감독 이름까지 들어가 있어서 MB의 신임을 받았다는 것이다.
■등록 6일 만에 출범한 문화콘텐츠협회
앞서 MB정권 청와대의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문건을 보면 ‘좌파와 대항해 나갈 조직으로 건전문화세력을 형성하고 우파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각종 포럼, 세미나, 공연, 정책대안 개발, 인력양성 등 좌파에 대응할 사업 추진과 인력양성 실행기관이 필요하다’는 언급이 나온다. 당시 이 문건을 분석한 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에서는 문건이 언급한 우파 실행기관으로 바로 강씨가 상근부회장을 맡았던 한국문화콘텐츠산업협회를 거론하고 있다.
진선미 의원은 청와대 문건인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집행 결과 분석 문건을 통해 문건 작성 3개월 뒤인 11월 28일 한국문화콘텐츠산업협회가 문화관광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등록했으며, 법인 등록 후 6일 만인 12월 4일 출범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 사단법인의 손병두 대표는 삼성 비서실과 전경련 부회장을 거쳐 서강대 총장, MB 정책자문위원의 경력을 갖고 있는데, 이후 2009년 8월에는 방송통신위원회(최시중 위원장)와 한나라당 추천으로 KBS 이사장이 된다. 손 이사장이 취임한 후인 그해 11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특보였던 김인규씨를 KBS 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MB정부 방송 장악의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바깥으로 드러난 흐름이다. <주간경향>을 만난 영화계 인사들은 “손병두는 사실상 얼굴마담이었고, 막후 실세는 강씨였다”고 입을 모은다. 다시 ㄴ씨의 말. “강씨가 일하는 방식이 그랬다. MB정권의 유력자 누구를 만나게 해달라는 청탁을 받으면 ‘공적인 행사에서 옆자리까지 앉게는 해주겠다’는 식으로 약속했다. 로비를 하든 민원을 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능력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직접 독대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강씨의 ‘배후’는 누구였을까. 앞서 청와대 문건의 작성 주체로 되어 있는 것은 기획관리비서관이다. 문건이 쓰여질 당시인 2008년 8월, 비서관은 기자 출신인 정인철 비서관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MB정권이 출범하면서 기획조정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총괄하던 인사가 나중에 ‘왕차관’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박영준 비서관이었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그해 6월, 박영준 비서관은 청와대를 나가 약 6개월 동안 ‘야인생활’을 하다가 2009년 1월 국무총리실 차장으로 복귀한다. 이 시기 박영준 차관은 외곽에서 국정원을 아우르는 비선을 운영하면서, 특히 촛불시위로 멀어진 민심을 돌리고자 MB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4대강 사업으로 변경하는 작업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간경향>은 당시 4대강 주변 농민들의 반발, 4대강 관련 홍보자료 구축 등에 정권 비선을 통해 국정원이 개입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주간경향> 826호, ‘국정원, 4대강 정비사업 개입했다’ 기사 참조) 강씨는 아직까지 실체가 규명되지 않은 MB-박영준 비선라인의 멤버였을까.
■갑자기 사라진 ‘강씨’ 배후는 누구?
지금 시점에서 전격적인 사단법인 등록과 등록 6일 만에 출범한 한국문화콘텐츠산업협회의 설립과정을 보다 보면 기시감이 든다. 바로 박근혜 정부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과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사단법인이라는 것도 공통적이다. 앞서 MB 청와대 문건을 보면 구체적인 재원계획도 나와 있다. 문건은 “정부의 직접지원 규모는 최소화하고 SKT, 현대차, 삼성 등 사회환원이 필요한 기업이 국가나 단체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추진한다”고 계획을 밝히고 있다. 한국문화콘텐츠산업협회는 이후 콘텐츠산업협회로 이름을 바꾸는데, 2010년 전병헌 당시 민주당 의원은 “청와대 모 비서관이 모 그룹에 수십억 원을 요구해 해당사가 한국콘텐츠산업협회에 수억원을 냈다는 신빙성 있는 제보를 받고 확인 중”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이 협회가 기획관리비서관 주재로 서울시내 모 호텔에서 정례모임을 갖고, 협회 후원을 요청했다는 당시 보도도 나왔다. 모임 참석자는 이석채 KT 회장(이하 지위는 당시 지위), 정준양 포스코 회장, 윤용로 기업은행장, 이종휘 우리은행장, 민유성 산업은행장, 오연천 서울대 총장 등이다. 모임에 참여하지 않은 SK텔레콤과 국민은행, NHN, 한전 등도 협찬사로 협찬금을 전달했다.
이 단체의 상근부회장을 역임했던 강씨는 그 후 갑자기 사라진다. 때문에 여러 소문이 영화계에 돈다. ㄴ씨는 “리스트 작성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당시 유인촌 문화부 장관과 국정원 양쪽의 견제를 받아 공식 지위에서 물러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영화계에서 강씨의 정확한 근황을 아는 사람은 현재 없다. 그 후 콘텐츠산업협회는 인터넷 홈페이지조차도 접속이 안된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단체가 됐다.
앞서 공개된 MB정부의 문건을 통해 ‘문화계 좌파 척결’ 시나리오가 있었고, 구체적인 살생부가 작성돼 실행된 정황은 확인된다. 또 이번 국정원 발표로 적어도 2009년 2월 이후부터는 청와대 민정수석 또는 기획관리비서관이 ‘요청’하면 원장 지시로 방송사 등에 ‘퇴출 유도’를 한다든가, 심리전단 활동으로 비난 댓글을 다는 등의 활동을 한 것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집행경로나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와 같은 전모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영화계만 놓고 보면 이른바 ‘미디액트’ 사업에서 기존 독립영화계를 배제하고 우파성향 영화인 단체를 지원한 것은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화산업 자체를 좌파 내지는 ‘적’으로 규정하고 벌였던 공작은 아직까지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나나 문성근 같은 경우 앞장서서 사회적 발언을 했으니까 입장을 바꿔놓고 보더라도 표적이 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우 명계남씨의 말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문제는 나처럼 나대지도 않고 숨어서 자기 분야 일을 열심히 하는 예술가들에 대해 어느 성명서 한 구석에 이름을 넣었다고 1만명 이상의 예술인을 블랙리스트에 넣어 관리하고 실행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독립영화의 경우 감사원 결과 등을 앞세워 정권 초기에 휘어잡으려고 했는데, <워낭소리>가 흥행하면서 정권의 탄압이 조금 늦춰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근혜 정권’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주체라는 것은 이쪽의 상식”이라며 “시일이 걸리더라도 지난 9년 동안 어떤 일이 자행되었는지 낱낱이 규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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