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이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지 말자

장백산-1 2017. 11. 21. 13:33

숙세(宿世)의 업장(業障)


이기적(利己的)인 욕망(欲望)의 쇠사슬을 끊어버리면 너의 마음은 즐거우리라‘

이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지 말자. 서로를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말자.


숙세(宿世)의 업장(業障) / 석주스님


우리 모든 중생(衆生)은 무시(無始)이래로 내려오면서 한 생각이 미혹하여 본래 청정한 근본성품을 

어기고 허망한 감각기관인 육근(六根 : 眼根/눈 ·耳根/귀· 鼻根/코 ·舌根/혀 ·身根/몸 ·意根/생각 마음)

에 얽매여서 셍각 마음, 말, 행동이라는 身 口 意 삼업(三業)으로 온갖 業을 지어 그 業으로 인해 점점 

업장(業障)이 두터워지고 결국엔 악업(惡業)까지 지어, 마침내 악보(惡報 악업의 과보)인 몸(肉身)으로

나타나 온갖 고통(苦痛)를 받고 있으며 또 새로운 악업을 지어서 새로운 원인과 그에 따르는 과보를 

짓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선 악업에서 벗어나야 자기의 행복을 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각자 노력에 

달려 있지만, 시간적으로는 현실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시이래로 내려

오면서 業을 지어온 인과의 업장때문에 그런 것이다. 인간의 모든 차별은 숙세로부터 지어온 자기 업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원인(업장)을 먼저 알아 자신의 업장을 벗어나는 

길을 알아야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바로 고해에 얽힌 업장(業障)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개척하는 각자의 길을 가르친 

것이다. 불법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가장 가까운 자신에게 있다. 체(體)로는 ‘마음이 곧 부처이고 

(心卽是佛) 부처가 곧 마음(佛卽是心)’으로 마음 가운데 불법이 있고, 용(用)으로는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즉 가고 서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시끄럽고 조용함에 있다. 불교의 신앙은

‘행주좌와 어묵동정’인 자기 행위의 힘을 믿는 것이고  ‘심즉불(心卽佛)’인 자기 마음을 믿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 마음과 자기 행위를 믿고 자신의 부처가 되고자해서 우선 불법승 삼보를 믿는 것이다.

불법승(佛法僧)삼보(三寶)를 믿는 데는 ‘신해행증(信解行證)’으로 불법승 삼보를 믿어 불법을 알고 보면 

불법승 삼보와 자신이 둘이 아닌 하나의 진리(眞理)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불교를 믿는 목적은 

자기 마음(心)과 자기 행위[行爲 ; 생각 마음(意), 말(口), 행동(身)이라는 세 가지 業]을 믿는 것이다. 

불교는 의타성(依他性)을 가진 타율적인 종교가 아니고 자기 자신의 마음과 자기 자신의 행위에서 

신앙의 힘을 기르는 자율적인 종교이다.


새해는 온 인류가 신(神)의 가호에 의지하는 의타성을 떠나 인간 자신의 진리(眞理), 즉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세 가지 행위를 깨닫기를 바란다. 업(業, 까르마)을 벗어버린 인간의 자성(自性), 근본성품은 

무한한 가능성의 위대한 힘을 가진 최고(最高)의 진리(眞理)다. 이러한 절대의 자기 근본성품을 연마

하면 연마할수록 자기 자신에게서 위대한 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중생의 근본성품이 업장(業障)에 얽혀매여 있어서 사람들은 눈먼 장님과 같이 어둡고 깊은 구렁

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업장에서 벗어나와 해탈하고 나면 스스로 광명의 길을 창조하는 것이다.

업장이 되는 것은 바로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있는 자기 행위를 바로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다. 


즉 몸(身)으로 하는 살생, 도둑질, 음행과 말(口)로 짓는 욕설, 거짓말, 이간질 시키는 말 등의 행위와 

마음(意)으로 짓는 탐심(욕심부리는 마음), 진심(화내고 성내는 마음), 치심(어리석은 분별하는 마음)

등으로 일어나는 자신의 행위(行爲)가 자신의 자성(自性), 근본성품 자리를 가려버리는 업장(業障)이 

되는 것이다. 이 업장(業障)에서 벗어나려면 앞에 말한 모든 행위에서 지은 잘못된 허물을 늘 참회하고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바로하여 선업(善業)을 먼저 지어야 하고 나아가 자신의 근본성품을 밝히는 

마음공부를 잠시도 쉬지 말고 늘 갈고 닦는 연마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불교의 목적은 밖으로는 착한 선업을 짓고 안으로는 마음을 연마하여 일체 중생이 다 같이 성불하는 데 

, 즉 함께 깨닫는 데 있는 것이다. 불교는 자기 마음 하나 잘 쓰고 못 쓰는 데 있는 것이다.


원효대사는 의상대사와 함께 중국으로 불법을 배우려고 길을 떠났다가 중도에서 날이 저물어 고총 사이

에서 잠을 자는데 밤에 갈증이나 물을 찾다가 무슨 그릇인지 물이 담겨 있기에 그 물을 달게 마시고 

갈증을 면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물이 담겨 있던 그릇은 사람의 해골임을 알고 돌연 더러운 생각에 

구역질이 났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기를 어젯밤 물을 마실 적에 시원하고 마음이 편하던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까닭이요, 해골을 보고나서야  비로소 더러운 생각에 구토가 나니, 이것이 경에 이른바 대로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하고 심멸즉종종법멸(心滅則種種法滅)’, 마음이 생겨나니 모든 것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말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이 세상, 즉 삼계(三界;욕계, 색계, 무색계)가 오직 마음뿐이요, 만법이 또한 識

뿐이라(三界唯心 萬法唯識)는 말씀이 어찌 사람들을 속였으리, 마음밖에는 법이 없거니 어찌 따로 구할 

법이 있으랴 하시고 옛날 무덤이 있던 그 곳에서 의상과 이별하고 곧장 고향으로 돌아와 화엄종을 세웠다.

사람 마음마다 본래 한 부처를 가지고 있다. 자기 부처를 알면 언제 어디서라도 부처님을 늘 볼 것이다. 

자기 마음을 잃지 아니하고 바로 지켜 더욱 닦아 털끝만큼도 악을 범하지 않고 오직 대자대비한 관세음

보살 처럼 대용(大用)과 대행(大行)을 하면 자신이 곧 부처이며 곧 불법이다.


모든 악업을 짓지 아니하면 선이 스스로 그 속에 있고, 모든 선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늘 선행을 하면 

업장이 스스로 소멸하여 중생의 고를 벗어나 필경 성불이 되는 것이다,


1968.1.14 종회의원, 칠보사 주지 재임시


*  석주 스님

 

1090년~2004년

1928년 남전 스님을 은사로 득도

1961년 선학원 이사장 

제8, 15, 23대 조계종 총무원장

1994년 조계종개혁회의 의장 조계종 전계대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