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한없이 자유로운 사람 보살은 고통의 바다 위를 서핑하는 구조대원

장백산-1 2017. 11. 20. 23:34

강병균 수학자가 본 금강경

40. 한없이 자유로운 사람 보살은 고통의 바다 위를 서핑하는 구조대원


여래자즉제법여의(如來者卽諸法如意). 

여래는 특별한 법을 얻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자유로울 뿐이다.


고해 서핑하며 천개 눈으로 행복의 보드 타는 법 가르쳐

세상 어떤 아수라 속에서도 결코 마음의 평정 잃지 않아 


이 세상은 영원불변하게 고정된 실체가 아니므로 시절인연에 따라 이 세상이 어떻게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오래전에 연등불전에 공양을 올리던 청년이,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채로, 오늘 날의 석가모니불로 환생한 게 아니다. 석가모니붓다도 시절인연에 의한 동일한 흐름을 타고 있을 수는 있으나, 그 흐름이 외부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존재하는 흐름이 아니다. 하나의 흐름은 하나의 강처럼 수많은 지류가 합류하고 빠져나가고, 비가 내리고 강물이 증발하고, 토사가 밀려들어오고 유출되며, 끝없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역동계(力動界)이다. 


여래는 중생계 내에서의 여래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여래가 아니다. 아득한 세월 동안 수많은 인연들이 모여 중생을 만들고, 그중 하나를 갈고 닦아서 여래로 만든다. 여래는 분리되고 독립된 존재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覺, 모든 부처님이 얻은 더없이 높은 깨달음)를 얻은 게 아니라, 중생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연기체(緣起體)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터득한 것이다. 


여래는 ‘중생의 고통을 구제함에 있어서’ 무정세간과 유정세간, 즉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법칙에 통달하여 마음대로 구사하는 것이지, 창조주(創造主), 神처럼 창조주의 마음대로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변경’하는 게 아니다. 이게 제법여의(諸法如意), 즉 이 세상 모든 것에 자유로울 뿐이라는 뜻이다. 


또 하나의 뜻은, ‘여래는 일체의 그릇된 견해의 구속을 받지 않으므로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법여의(諸法如意)이다. 보살은 중생이 겪는 고통의 바다를 서핑(surfing)하는 자이다. 파도가 클수록 보살은 신이 난다. 파도를 거스르지 않아야 보드에서 미끄러져 바다에 빠지지 않듯이, 보살은 일체 법에 밝아서 고해를 항해하더라도 행복의 보드에서 이탈해서 고통의 바다로 추락하지 않는다. 보살(보디사트바) 는 중생이 겪는 고통의 바다를 서핑한다. 그리고 보살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 서핑 기술을 전수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캘리포니아 해안에는 수많은 서퍼(surfer)들이 모여든다. 파도를 타다 상어에게 팔다리를 잃어도 의수와 의족을 달고 다시 보드에 올라탄다. 고사리 잎처럼 멋지게 말려들어간 집채만 한 파도를 타는 짜릿한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면 아래서 상어가 날카로운 이빨을 반짝여도, 수면 위에 등지느러미를 드러내 보여도 상어와 같이 서핑을 하며 상어가 호시탐탐 잡아먹을 기회를 노려도, 오히려 서핑에 짜릿한 즐거움을 강화한다.  


세속에도 파도가 친다. 성공과 실패의 파도, 사랑과 증오의 파도, 만남과 이별의 파도, 희망과 절망의 파도가 친다. 욕망은 파도를 증폭시켜 집채만 한 파도로 만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젊음의 힘 앞에서 파도는 한갓 타고 즐겨야할 놀이대상이다. 파도에 휩쓸려 보드에서 추락하여 상어에게 팔다리를 잃으면 어느덧 늙음이 찾아온다. 생로병사의 큰 물결이 찾아온다. 


해안에는 구조대원들이 있다. 불타는 집 속으로 돌진하는 소방대원들처럼 파도가 일렁이는 물속으로 들어가 파도에 얻어맞고 추락하고 상어에게 잡아먹힐 서퍼들을 구조한다. 


세상에는 불이 나서 타고 사람들은 불에 타 죽는다. 해변에는 파도가 일고 사람들은 파도를 타다 상어 이빨에 물려 죽는다. 어떤 사람들은 타 죽는 사람을 구조하다가, 또는 상어 밥이 되는 사람을 구하다가 같은 상어 밥 신세가 된다. 운이 좋아 살아나면 사람들은 다시 불속으로 물속으로 들어가고, 구조대원들은 그 사람들을 따라 물불을 가리지 않고 같이 들어간다. 


세상에는 불과 파도가 일렁거리고 그 위에서 사람들은 불길과 물결에 맞추어 춤을 춘다. 그리고 보살은 그런 사람들을 천 개의 눈으로 지켜보다가 천 개의 손을 내민다. 보살은 탐욕과 증오와 무지의 파도가 거세게 일렁거리는 혼돈의 바다를 서핑하는 사람이다. 보살은 이 모든 아수라장에서 결코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415호 / 2017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