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2018.07.01 15:09 / http://blog.daum.net/630919/371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사무엘상 17장 45~49절, 마가복음 4장 35~41절
■ 박동산 선생
지난 목요일, 어린 아이들에게 숲의 지혜를 가치르는 숲 해설사인 박동산님을 만났습니다. 일전에 우리 교회에 오셨던 천도교도입니다. 이승원 권사님의 비누 선물을 받고 사용해 봤더니 효력이 괜찮은가봅니다. 지금껏 피부병으로 비누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 비누는 피부 반응이 괜찮다며 비누를 더 얻을 수 없냐고 묻기에 이 권사님께 부탁하여 비누를 전해줄 겸 이야기도 들을 겸하여 만났습니다.
앉자마자 오심(吾心) 즉 여심(汝心) 곧 “내 마음이 네 마음”이라는 수운 최제우 선생께서 처음 들은 하늘의 음성을 꺼내 말씀하십니다. 동학의 기반과도 같은 가르침입니다.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은 천심(天心)이요. 곧 진심(眞心)임을 가르칩니다. 예수가 들은 하나님의 음성은 지극히 작은이들을 향한 마음, 즉 하심(下心)이며 그 하심이 곧 하나님을 향한 마음, 천심(天心)입니다. 수운 선생의 가르침에 예수의 가르침이 있고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가다 보면 수운의 가르침을 만나게 됩니다. 진리란 그렇게 시간을 넘어 깊이 교감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뿌리가 하나입니다.
박동산 선생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저를 만나 성경과 예수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치 수운 선생이나 해월 선생의 가르침을 듣는 것 같다며 신기해했습니다. 시공을 넘어 예수와 해월이 어떻게 동시대 같은 길을 걸었던 분처럼 같은 깨달음을 얻었고 같은 가르침을 설파 했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오심 즉 여심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예수의 황금률(黃金律)입니다. 네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그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가르침, 기독교의 핵심은 이 한 가르침 안에 있습니다. 사랑도 진리도 여기에 있습니다. 복잡한 가르침 다 거두고 이 가르침 하나에 충실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도 이웃을 사랑하는 길에 있고 모든 율법의 중심엔 상대방을 향한 환대에 있습니다.
수운의 중심 가르침인 인내천(人乃天) 사상, 즉 하늘의 마음이 곧 내 마음이란 사상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동학의 가르침은 시천주(侍天主)와 오심(吾心) 즉(卽) 여심(汝心)이란 가르침에 기대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드러내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 마음 안에 있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란 말입니까? 꽃이 피면 향기가 나듯 하나님을 그 마음에 품고 있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실천하게 되며 그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런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드러납니다.
■ 몽당연필과 하나님
가난한 자의 어머니란 호칭을 듣는 마더 테레사 수녀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몽당연필이라고 하셨습니다. 인도의 켈커타에서 버려져 죽어가는 이들을 데려다가 먹이고 치료해주었던 테레사는 자신을 통해 일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자신은 아주 작은 자이지만 위대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붙들고 사용하시면 놀라운 일을 감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위대한 화가의 붓과 같고 소설가의 연필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붓이 위대한 것도 연필이 위대한 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붙들고 있는 화가와 시인에 따라 위대한 작품이 그려지고 쓰여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몽당연필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를 붙들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이 내 삶을 이끌어 가신다면 문제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러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내어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바쳐진 존재에게만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농부는 당장 먹을 것이 없어도 씨앗을 심습니다. 아무리 사고 뭉치여도 어미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예언자는 앞이 안 보여도 손잡고 나아갑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 믿음, 새로운 삶의 방식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마가복음 4장의 말씀입니다.
때는 이미 저녁이 되었고 예수께서는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건너가자며 배에 오르셨습니다. 얼마나 피곤하셨던지 배에 오르자마자 고물에 내려가셔서 주무셨습니다. 얼마 안가서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파도가 배를 덮쳐 왔습니다. 배에 물이 가득하여 위험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제자들은 자신들이 배를 구할 수 없음을 알고 예수를 찾았고 예수가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신 것을 알고 예수를 깨우며 죽게 되었다고 살려달라고 호소합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서는 바람을 꾸짖으시니 바람이 그쳤고 바다는 고요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꾸짖었습니다. 이 광경은 제자들에겐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현실의 풍랑 때문에 내면의 혼돈에 빠지는 것이라면 예수를 믿는 이들의 삶의 방식은 내면의 고요를 통해 현실의 풍랑을 다스리는 삶입니다. 예수를 믿기 이전에 현실의 영향을 받아 온갖 불안과 분노와 두려움과 혼란에 시달렸다면 예수 믿은 이후엔 내면에 임한 하늘의 평화로 인해 삶이 혼돈을 다스리게 됩니다. 바깥에서 안으로 영향력이 미치는 삶의 방식이 안에서 바깥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삶의 방식으로 변하는 것이 믿음의 방식이며 신앙생활입니다.
풍랑 속의 고요! 이 상태 이 경지를 향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나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하늘 평화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마음에 모시면 됩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평화가 그 사람 안에 샘솟듯 할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방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삶입니다.
우린 세상 사람보다 조금 더 잘 살기 위해 믿음의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닙니다. 삶의 어려움이 다가올 때를 대비하여 안전 보험하나 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를 위해 궁극적으로 천당에 들어가기 위해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분의 평화를 맛보고 하나님게서 우리를 통해 사시게 하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우주를 다스리시고 생성하게 하시는 거룩한 영(靈)이 우리를 통해 사시게 하기 위해 믿음의 길을 가신다면 어떤 두려움도 미련도 없습니다. 나의 실력도 능력도 모양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우리를 맡겼느냐 하는 것입니다.
■ 한∙러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를 국빈 방문하여 러시아 하원에서 연설을 하였습니다. 문대통령의 유라시아 구상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연설문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모스크바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광활한 대지가 인간에게 주는 경외심을 생각했습니다. 그로 인해 자연과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 러시아의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크기만큼 긴 호흡으로 러시아는 세계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은 평화와 공동번영의 꿈을 담은 유라시아 시대의 선언입니다. 서구문명이 이룬 장점과 동양문명이 이룬 장점을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담아 인류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려는 웅대한 설계입니다. 한국 국민들 또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넘어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번영의 주춧돌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의 서재에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의 소설과 푸시킨의 시집이 꽂혀있습니다. 나도 젊은 시절, 낯선 러시아의 지명과 등장인물을 더듬으며 인간과 자연, 역사와 삶의 의미를 스스로 묻곤 했습니다. 20세기 초, 한국에 소개된 러시아 근대문학은 한국의 현대문학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러시아 문학은 휴머니즘 교과서였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영성에 대한 탁월한 묘사를 통해 물질문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남겨주었습니다.
첫째, ‘미래 성장 동력 확충’입니다.
둘째, 극동개발협력입니다.
셋째, 국민복지 증진과 교류 기반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단순한 하나의 철도가 아닙니다. ‘러시아 노동자들의 황금손에 의해 건설된 생명의 길’이며 세계 인식의 지평을 넓힌 문명의 길이고 평화의 길입니다. 이 길은 단순히 상품과 자원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유라시아의 한복판에서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길입니다. 그야말로 유라시아 시대를 여는 관문입니다. 횡단열차가 한국의 부산에까지 다다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젠 전쟁의 시대를 넘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향해 러시아와 한국이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문 대통령이 연설을 마치자 하원 의원들은 기립하여 박수로 응답해 주었습니다. 문대통령의 탁월한 연설과 한러 협력방안을 정확히 제시하였습니다. 문대통령은 단순히 경제교류만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서양의 영성과 동양의 영성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한반도에서 시작한 평화는 영성에 기반하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며 이는 하늘이 하고 있는 일임을 증언한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겸허히 하늘의 도구가 되어 한반도의 평화와 동아시아의 평화 나아가 인류의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 6.25전쟁
오늘은 6.25전쟁을 기억하고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주일입니다. 일제 36년간의 지배로 사상과 정신적 침탈을 당한 우리 민족은 해방의 기쁨도 채 가시기전에 만들어진 분단선으로 혼돈의 시대를 살아야 했고 급기야 미국과 소련 제국들의 식민지 침탈 전으로 비화된 6.25전쟁으로 전 삶이 붕괴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결과로 엄청난 정신적 신체적 재산상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350만 명의 민간인과 군인이 죽었고 1천만 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하였습니다. 거기에 모든 경제구조와 산업시설 등 건물이 초토화되었습니다. 이 민족이 생긴 이래 가장 큰 비극이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남한정부는 더욱더 미국에 의존하게 되었고 결국 정치, 군사, 경제, 외교적으로는 내용적 미국 식민지로 전환되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나라 상황은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약소국가의 서러움이기도 하지만 민이 중심이 된 제대로 된 국가를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민이라 함은 하늘이기도 합니다. 이젠 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워가야 합니다. 국민이 성공한 정부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초심을 잃지 말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선택과 결단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끝까지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지금 한반도에는 역사적인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평창 동계 올림픽을 통한 여러 차례의 남북고위급 회담과 문화교류, 이어서 4,27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발표된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두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더 이상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세계 앞에 약속했습니다. 이어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 간 적대관계 종식을 선언했습니다. 합의문은 추상적이고 모호한 점은 있지만 신뢰만 있다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합의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정상이 하는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북한은 핵실험장과 미사일실험장 폐기 등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조치들을 진행하고 있고, 미군 유해 발굴과 송환을 위한 절차를 차분히 밟고 있습니다. 유해 송환은 적대 관계를 청산한다는 신호로 여겨집니다. 한국과 미국은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중단하였고 한국은 자체 훈련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는 대북 군사적 압박을 해소하는 조치로 정상회담의 합의문을 이행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이제 남·북·미는 전쟁과 적대의 어두운 시간을 뒤로 하고 평화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마음을 모아 지지하고 기도해야합니다.
■ 다윗과 골리앗
성서의 이야기 중에 언제 들어도 통쾌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입니다. 약소국가인 이스라엘과 거대 제국인 블레셋과의 싸움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비유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싸움이 되지 않는 상상할 수 없는 싸움이란 의미입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싸움은 예상을 뒤엎고 다윗이 이겼고 블레셋은 망하였습니다. 강자 독식 세상에서 약자가 거대 제국을 이긴 것은 이야기 거리가 되었습니다. 아니 성서는 모두 약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약소국가 이스라엘은 주변 강대국들의 외침에 곤혹을 치루고 있었습니다. 가장 강력한 제국 블레셋은 그 유명한 골리앗을 앞세워 주변 약소국가들을 하나씩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다가 아버지의 명을 받아 전장에 있는 형들에게 먹을 것과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주려고 전쟁터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적의 장수가 나와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모독하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은 많은 피를 흘려 무고한 목숨을 잃을 것이 아니라 대표로 한 사람씩 나아와 싸워 이기는 자가 승리하는 것으로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크고 힘이 장사였으니 골리앗을 대항할 만한 사람이 없었고 그 제안은 불평등한 제안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모독하는데도 골리앗의 제안에 감히 나서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현실이었습니다.
아무도 대항하는 자가 없을 때 한 사람 다윗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왕에게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모독하는 저자를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지면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포로로 잡혀가야 합니다. 정체절명의 위기상황입니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나라를 통째로 내어 주고 포로로 잡혀갈 상황입니다.
다윗의 간청에 사울은 허락하지만 다윗은 홍안의 소년이었습니다. 잘 훈련된 장수도 어림없는 일인데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골리앗이 얕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틈을 타서 다윗은 물맷돌로 골리앗의 미간을 명중시킵니다. 거대한 적장 골리앗은 쿵하고 넘어졌고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둡니다. 이 싸움의 승리는 향후 다윗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세워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 진실의 승리
세속적인 것으로 비교하면 다윗은 골리앗과 비교하여 어느 하나도 우위를 장악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우수한 골리앗을 모든 것에서 열악한 다윗이 넘어뜨리고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을 찾아봅시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강력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는 자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겁에 질려 두려움이 떨고 있는 사울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겁먹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곤 칼과 창이 아닌 물맷돌 다섯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고 골리앗에게 나아갑니다. 골리앗은 더욱 이스라엘을 모독하며 이 아이밖에 없냐고 성토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너는 창과 칼, 네 힘을 의지하여 나오느냐, 나는 만군의 하나님, 우주의 주관자 모든 전쟁의 승패를 주관하시는 분을 의지하여 나아간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하나님이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싸움에 임하였습니다. 골리앗의 무기체제와 다윗의 무기체계가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 하나님이 내주하신다는 믿음,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이 내 안에서 나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믿음이 승리의 원인이었습니다. 이렇듯 믿음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수도 없습니다. 세상의 풍랑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꾸짖는 예수님은 지금도 믿음을 보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 초대하기
한수원은 가동 중단된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대구 수돗물에서 과산화화합물이 발견되어 비상입니다. 우린 과산화화합물에 대한 위험 기준치조차 없는 상황이라 대책이 시급합니다. 방사능 발암물질인 라듐이 검출되어 환수조치에 들어간 대진침대 매트리스가 아직도 수거 중입니다. 음이온이 나온다는 고급 물품에서 방사능 물질이 나오고 있어 당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포항 인근에서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한반도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체제가 가동 중입니다. 이전의 방식이 아닙니다. 당혹스럽지만 기존방식으로 돌아가선 안 됩니다. 새 술은 새 부대 넣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도 진리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그 새로운 방식의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나아가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국가의 생존이 그 작은 물맷돌에 있다고 본 다윗이 어찌 실수할 수 있으며 그 물맷돌이 빗나가겠습니까? 이 정도 되면 다윗이 하는 것이 아니고 다윗을 통해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초대에 기꺼이 나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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