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한국의 거시경제 안정성을 세계 1위

장백산-1 2019. 10. 15. 21:55

[경제와 세상]

언제까지 허리띠 졸라맬 텐가

조영철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입력 2019.10.15. 20:47




세계경제포럼은 매년 국가경쟁력 지수를 발표한다. 올해 한국 국가경쟁력은 141개국 중 13위로 작년보다 두 단계 올라갔다. 정보통신 보급과 거시경제 안정성은 세계 1위인 반면, 생산물시장 59위, 노동시장 51위였다. 생산물시장과 노동시장 평가는 기업인의 주관적 반응을 점수화한 것이다. 노동시장 51위는 정규직 노동의 경직성에 대한 기업인들의 주관적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생산물시장 59위는 기업인조차 대기업집단의 시장지배력 독과점 폐해를 인정하는 것으로 공정경제 정책의 중요성을 함의한다.

세계경제포럼은 거시경제 안정성을 소비자물가상승률 안정과 국가채무 증가, 국가채무 비율, 국가 신용등급을 종합해 평가하는데, 작년부터 한국의 거시경제 안정성을 세계 1위로 평가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을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등과 함께 세계에서 재정여력이 가장 좋은 나라로 평가한다. 신임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취임 후 첫 연설에서 수요 확대와 성장잠재력 강화를 위해 확장 재정정책을 펼 수 있는 대표적인 나라로 한국, 독일, 네덜란드 세 나라를 콕 집어 말하고 있다. 이처럼 국제기구들은 한국의 거시경제 안정성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하고 풍부한 재정여력을 활용해 불황에 적극 대응하고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재정투자를 하라고 정책 권고를 하지만, 일부 보수 언론은 2년 연속 초슈퍼예산 편성으로 국가채무 비율이 악화된다며 베네수엘라처럼 경제 파탄이 날 수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세계경제포럼이 평가한 베네수엘라의 거시경제 안정성 순위는 141개국 중 141위로 한국 거시경제를 베네수엘라와 비교하는 것은 비상식을 넘어 몰상식에 가깝다.

한국경제가 지금은 재정건전성이 좋지만 급속한 고령화로 일본을 20년 격차로 쫓아가고 있어 20년 뒤엔 지금의 일본처럼 재정건전성이 악화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국회예산정책처 장기재정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2040년 65.6%, 2050년 85.6%로 현재 일본 국가채무 비율 233%의 3분의 1에서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일본은 국가채무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지만, 세계경제포럼은 일본의 재정안정성을 세계 42위로 중상 수준으로 평가한다. IMF도 일본의 재정여력을 중간 정도 국가로 평가한다. 제로 금리인데도 외국인들이 일본 국채의 10%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국제투자자들이 일본 국채를 안전자산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 아일랜드 등 유럽 재정위기 국가들의 국가채무 비율이 일본보다 훨씬 더 낮았는데도 재정위기를 겪은 것은 이들 국가의 유로 표시 국채가 사실상 외화표시 국채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가채무 비율이 높지만 엔화 표시 국채고 국채의 43%를 일본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고 경상수지도 흑자여서 유럽 재정위기 국가들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일본의 국가채무 비율 증가는 고령화로 사회복지 지출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지만, 사회간접자본(SOC) 등 다른 예산이 감소하면서 일본의 재정지출 규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을 제외하면 큰 변화가 없었다. 따라서 일본 재정수지 악화의 주원인은 성장률 하락으로 조세 수입이 정체 내지 감소했기 때문이다. 2014년 이후 일본 국가채무 비율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 것은 아베노믹스로 경제가 다소 회복해 세수가 증가하고 재정수지 적자가 줄었고 국채금리가 0%대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서 반면교사로 배워야 할 것은 부동산 투기와 거품을 막고 늦기 전에 국가경쟁력 강화 투자를 과감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저출산 고령화로 잠재성장률 하락이 고착화되기 전 구조개혁과 사회안전망 확충, 저출산 대책, 에너지·생태 전환,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확립해야 한다.

우리는 거시경제 여력이란 구슬을 충분히 갖고 있다. 지금은 구슬을 쌓아둘 게 아니라 꿰서 활용해야 할 때다. 전 세계적으로 경상성장률보다 국채금리가 낮은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어적 국가전략이나 불황 탈출 경기대응 수준을 넘어 미래를 위해 현명하게 투자하는 적극적 국가전략을 짜야 할 때다. 시장은 불확실성 공포 탓에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이자 부담이 줄고 수도권 부동산만 들썩일 뿐 실물경제 투자 활성화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재정정책의 장점은 예산 투입으로 미래 투자 방향을 선도할 수 있다는 거다. 한국은행도 기존의 통화정책 타성에서 벗어나 적극적 국채 매입과 양적 완화 등 재정정책과 공조하는 새 거시경제정책을 시도해야 한다.

조영철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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