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는 집착하는 에너지 보다 더 큰 에너지이다 / 법륜스님
▒ 문
금강경에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제 견해로는 상(相)이라는 것이
이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기준이고, 에너지이고, 추진력이라 볼 수 있는데, 상(相)을
내지 말고 보시를 하라고 한다면, 과연 이 세상에 어떤 변화나 발전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 답
가끔 등산 하십니까? (아주 좋아합니다.) 산을 좋아합니까? (예.) 바다는? (회 먹으러 자주 갑니다.)
바다 보면 좋아요? 안 좋아요? (좋습니다.) 산에 가서.. 야 멋있다. 저 바위 멋있다. 소나무 멋있다..
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요? 산이 기분이 좋아요? (제가 기분이 좋습니다.) 내가 어떤 여자를 아주
좋아해요.. 그럼 내가 좋아요? 그 여자가 좋아요? (내가 좋죠.)
그런데, 내가 그 여자를 아무리 좋아해도 그 여자는 나한테 눈길 한번 안 준다면 어떨까요? (밉죠.)
그럼 산에 가서 아무리 산이 좋다고 해도 산이 나에게 눈길 한번 줬어요? 안 줬어요? (안 줬죠.)
그렇다고 산이 미워진 적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의 발에 걸려 넘어지면 화 나요? 안 나요? (성나죠..)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면?
(화를 낼 수가 없습니다.) 그 때 돌뿌리에 성을 내면서 그 돌을 사정없이 차버리면 누구 발만 아파요?
(내 발만 아프지요).. 배를 타고 가다가 옆에 배랑 부딛혀서 물에 빠졌다면 화 나요? 안 나요? (화 나죠.)
그런데 고개를 돌려보니 그 배가 빈 배라면..? (화를 낼 수가 없겠죠.)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마음의 두가지 성질(性質)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내가 산을 좋아해도 내가 좋다. 내가 사람을 좋아해도 내가 좋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내가 좋다. 마음의 성질이 이렇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라?
좋아해라. 사랑해라. 이 말입니다.
두번째로는, 내가 저 여자를 좋아하는데 그 여자는 날 안 좋아하니까 미워져..미워하면 괴로워요? 안
괴로워요? (괴롭습니다.) 그런데 왜 산에겐 미움이 안 일어나고 사람에겐 미운 감정이 일어날까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요?) 반드시 사람이기 때문에 미운 감정이 일어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갓난애기를 한 번 봅시다. 갓난애기는 지가 알아서 하는 게 아무 것도 없이 부모가 다 해줘야 합니다.
남들 잘 시간에 혼자 똥싸고 오줌싸고 울고, 밥상을 엎어도 애한테 화 냅니까? 안 냅니까? (안 내죠.)
갓난애도 사람은 사람이지만 요런 애한테는 화내지 않잖아요? (예.) 그런데 갓난애가 너댓살쯤 되면
어쨌든 똥오줌도 가리고 혼자 알아서 하는 게 많아집니다.. 그래도 엄마가 세네살 먹은 애하고 싸웁니까?
안 싸웁니까? (맨날 싸웁니다.)
갓난애한텐 기대하는 게 없으니까 100% 다 해줍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댓가가 아무 것도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좀 자란 애는 한 10쯤 하는데, 엄마가 한 20정도 기대하니
자란 애한테 불평 불만이 생기는 겁니다. 내가 산을 보고는 기대하는 마음이 없는데, 사람에 대해선
기대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너도 나를 사랑해라..' 이렇게 바라는 심리가 바로
미움의 원인입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게 아니고,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상대가 미워지는 겁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마음만 없다면 상대가 미워질까요? 아닐까요? (아니죠,)
이렇듯이 상대가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만 없으면 괴로움은 안 생깁니다.
그러니까 내가 행복하려면 조건없이 상대에게 베풀어야 하고, 그 베품이 괴로움으로 안 돌아오게
하려면 상대에게 뭘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베풀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으면 기쁨이 없고, 베풀면서
바라면서 베푸는 마음은 괴로움으로 내게 돌아오게 됩니다.
베푸는 걸 보시(布施)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행복하려면 보시를 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고,
베풀면서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이 괴로움으로 나에게 돌아오니까, 그런 마음 마저도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바라는 마음 없이 조건없이 베풀라' 고 하는 겁니다. 이와같이 바라는 마음 없이
베푸는 걸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합니다.
그런데 질문한 분이 걱정하는 건, 인간의 모든 행위의 원동력이 늘 그 욕망(欲望)인데..만약에 욕망을
다 놓아 버리면 행위를 추동하는 원동력인 욕망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하는 질문인거 같습니다.그런데
행위의 원동력인 욕망을 한번 놓아보세요. 놓아보면 행위의 원동력인 욕망이 더 많이 생기는지, 아니면
욕망이 없어지는지..
어떤 여자가 하도 좋아서 껴안고 뽀뽀를 했는데, 그 여자가 기겁을 하고 성추행이라고 나를 비난한다면
내가 나를 괴롭히려고 그랬습니까? 아니죠, 나는 그 여자를 좋아해서 그랬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난 널
사랑해서 뽀뽀했는데, 너는 왜 그래?' 라고 항변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상대를 사랑한다 해도, 상대를 이해하지 않고 일방통행이 되면 그 사랑은 상대에게 고통입니다.
폭력이 됩니다. 폭행이 된다, 이 말입니다. 이와 똑같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일방적인 사랑은 자식에겐
굉장한 고통이 되고 감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이 집에서 뛰쳐나가려고 하는 겁니다. 집이
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겁니다. 이렇듯이 상대에 대한 이해없는 사랑은 폭력입니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 더 큰 괴로움이 생기는 법입니다. 그래서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한
겁니다. 상대를 이해하면 누가 편안합니까? (내가 편안하죠.) 상대를 이해 못하면 누가 답답해집니까?
(내가 답답하지요..) 사실이 이렇기 때문에 남을 위해서 남을 이해하라는 게 아닙니다.
남을 이해하는 마음을 내는 게 누구한테 좋다? 나한테 좋다 이겁니다. '그 사람한테 바라지 마라고..'
그러는 게 그 사람 좋으라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마음을 버리면 누구한테 좋다?
나에게 좋다, 이말입니다.
세상 이치가 그러니까 그렇게 한번 실천해 보세요. 질문한 분이 만약 집착하는 마음을 모두 내려놓으면
세상 일을 추진하는 원동력인 욕망이 사라지는지 아니면 정말 무기력해지는지, 아니면 오히려 더 생기가
도는지? 욕망을 일으키고 집착을 하면 큰 에너지가 나오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욕망하고 집착하는 그
에너지는 파괴적인 에너지가 될 가능성이 거의 100%입니다.
집착심(執着心)을 내려놓으면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지 않습니다. 그 사람한테 좋으면 관여 안 하고,
그 사람한테 좋지않으면 관여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마음을 먹는 것은 파괴력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부드러우면서도 항상 세상을 이익되게 작용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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