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붓다의 심리학

장백산-1 2020. 3. 12. 15:31

붓다의 심리학


서양의 심리학과는 다르게 동양은 매우 의미심장한 심리학을 발전시켜왔다. 나는 동양의 의미심장한 심리학을 ‘붓다의 심리학’이라고 부른다. '붓다의 심리학'의 주된 관심사는 마음(心)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고, 마음(心)이라는 감옥을 초월하기 위해, 마음(心)의 구조를 활용하는 것에 집중한다. 반면에 현대 심리학은 마음(心)의 구조에만 편향되어서 심리학의 목적을 완전히 망각했다.


붓다의 심리학과 현대 심리학 간에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명상에 기반을 둔 ‘붓다의 심리학’은 마음(心)을 내면으로부터 이해한다. 그대가 내면으로부터가 아닌 외부로부터 마음(心)을 연구할 때, 그대는 그대의 마음(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마음(心)을 연구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心)은 그대의 마음(心)이 아니다. 만약 그대가 현대 심리학자들의 연구실에 가면 놀랄 것이다. 현대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마음(心)을 이해하기 위해서 쥐의 마음(心)을 연구하고 있다. 이같은 연구는 치욕적이면서도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쥐의 마음(心)에 기초를 둔 인간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와는 달리 명상가가 자신의 마음(心)을 관찰(觀察)할 때는, 명상가는 고동치고 맥박이 뛰는 살아 숨쉬는 인간의 살아있는 마음(心)을 관찰하는 것이다. 명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心)을 관찰한다. 자신의 마음(心)을 관찰하는 것이 그대가 마음(心)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서 마음(心)을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마음을 보면, 그대는 결코 마음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외부에서 마음을 보면 마음을 추론할 수는 있겠지만, 그같은 추론은 추론으로 머물 것이다. 외부에서 마음을 보는 것은 마음에 대한 진정한 앎이 될 수 없다. 쥐의 마음도 그대의 마음을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쥐들은 인간을 잘 속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쥐들의 내면은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런데 현대심리학자들은 왜 쥐의 마음(心)을 연구하는가? 왜 인간의 마음(心)을 직접적으로 연구하지 않는가? 인간의 마음(心)은 너무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현대심리학자들은 인간 마음의 기본 구조만 연구하는 것이다. 이같은 연구는 마치 아인슈타인을 연구하고 싶은 데, 초등학교 어린아이를 연구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온당한 일도 아니고 방향도 틀렸다. 아인슈타인을 이해하고 싶다면, 유일한 방법은 아인슈타인의 내면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아인슈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밖에서 아인슈타인을 보면 그도 그냥 다른 사람처럼 평범한 사람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징과 독창성은 그의 내면에 있다. 아인슈타인의 혈액을 연구하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혈액과 똑같을 것이다. 사실 아인슈타인의 뇌는 그의 사후에도 연구가 되었지만, 그의 뇌(腦)에 특별한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뇌에서 특별한 것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아인슈타인은 분명히 독창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인슈타인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식견을 가졌지만, 그의 뇌는 여느 사람들 뇌처럼 평범해보였다.


뇌(腦)는 마음(心)이 아니다. 


마음은 안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마음은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실험관 속에 집어넣을 수도 없다. 마음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시자(注視者 : 그대의 일거수 일투족, 그대가 하는 생각, 그대가 하는 말, 그대가 하는 행동을 전부 지켜보는 자)’로부터, 즉 그대의 내면으로부터 마음(心)을 아는 것뿐이다. 그대가 더욱 더 깨어날수록 자신의 마음과 마음의 섬세한 작용을 더 잘 관찰할 수 있다. 마음의 작용은 신비할 정도로 복잡하고 아름답다. 마음(心)은 이 세상, 이 우주에서 가장 복잡다단한 현상(現象)이며, 의식(意識)이 가장 섬세한 방식으로 꽃피어난 산물이다. 


진정으로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그대는 주시자(注視者)로 남아서 자신을 마음을 관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시자(注視者)로 남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게 바로 ‘명상’이다.


- 오쇼의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