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인정(認定)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欲求)와 진정(眞正)한 ‘나’ - 몽지와 릴라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가? 이같은 질문은 사람들 자신의 존재를 어떤 존재로 규정(規定)하느냐에 따라 다른 문제가 된다. 무엇이 진정한 우리들 자신(自身)인가?
사람들마다 너무나 익숙한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은 ‘나’ 라고 하는 '특별한 몸'과 '특별한 마음'이다. 이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은 ‘남’과 차별(差別)되는 특별한 독립적(獨立的)인 개체(個體)로서의 ‘나’이다. 그런데 과연 ‘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고 있듯이, 하나의 몸과 하나의 마음에만 제한(制限)된 한정(限定)된 존재일까?
그런가 아니가 함께 한 번 실험을 해 보자.
우선 자신의 몸(身)을 의식(意識)해 보자. 쉽게 말해 몸(身)을 느껴보자. 몸(身)이 느껴지는가? 만약 몸(身)이 느껴진다면 몸(身)이‘나’는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우리는 몸(身)이 있기 때문에 몸(身)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죽은 송장도 몸(身)은 있으니 몸(身)을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사실은 몸(身)이 있기 때문에 몸(身)을 느끼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리 앞에 있는 컵을 느낀다면 우리는 컵이 아니다. 우리는 컵을 느끼는 자이다. 컵은 우리에 의해 느껴진다. 컵이 컵을 느끼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몸(身)을 느낀다면 몸(身)은 우리 자신이 아니다. 우리 자신은 우리의 몸(身)을 느끼는 그 무엇이다. 몸(身)은 우리 자신에 의해 느껴지는 대상이다. 그래서 몸(身)은 ‘나’의 몸(身)일 뿐이지, ‘나’가 몸(身)은 아닌 것이다.
‘나’는 몸(身)의 변화나 몸(身)의 유무(有無)와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다 경험한다. 7살 때의 몸과 17살 때의 몸, 27살 37살 47살 때의 몸(身)은 다르다. 그러나 그 변화된 몸(身)을 느끼던 ‘나’는 동일(同一)하지 않은가? 의식(意識)이 깨어있을 때 몸(身)을 느끼던 ‘나’와 깊은 잠이나 마취, 졸도의 상태에서 몸(身)의 부재(不在)를 경험한 ‘나’는 있지 않던가? 자신으로 동일시(同一視)했던 몸(身)과 마음(心)이 사라졌음을 경험한 바로 그 존재가 진정한 ‘나’ 아닌가?
우리가 마음이라고 분별하는 느낌, 감정, 생각, 의지, 욕망, 욕구, 의도, 충동, 인식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나’가 아니라, ‘나’의 느낌, '나'의 감정, '나'의 생각, '나'의 의지, '나'의 욕망, '나'의 욕구, '나'의 의도, '나'의 충동, '나'의 인식일 뿐이다. ‘나’에 의해서 의식(意識)이 되고 지각(知覺)이 되는 것이지, 그것들은 그것들을 의식하고 지각하는 주체(主體)가 아니다. ‘나’는 나의 '몸(身)'이 아니듯이 ‘나’는 나의 '마음'이 아니다. ‘나’는 ‘나’의 몸과 마음의 변화와 몸과 마음의 존재 유무(有無)에 영향을 받지 않는 무엇이다.
진정(眞正)한 ‘나’ 는 존재(存在) 그 자체(自體)이다. 진정(眞正)한 ‘나’ 인 이 존재 그 자체를 배경(背景)으로 해서 몸(身)과 마음(心)이 드러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존재 지체를 배경으로 해서 몸과 마음은 변화하고 있으며, 이 존재 자체 속으로 몸과 마음은 사라진다. 그러나 존재 그 자체는 영원히 불생불멸로 불거불래로 존재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영원히 항상 변함없이 그대로. 이 존재 자체를 안다고 할 수도 없고, 모른다고 할 수도 없다. 이 존재는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존재는 존재 그 자체이지 어떤 하나의 대상(對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진정(眞正)한 ‘나’ 인 이 존재 그 자체에 의지(依持)해 드러나고 사라지고 하고 있지만 이 존재 그 자체는 어디에도 어느 것에도 의지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특정한 대상인 몸(身)과 마음(心)으로 동일시(同一視)하면 사람들은 늘 불안(不安)할 수밖에 없다. 대상으로서의 몸(身)과 마음(心)은 드러났다가 사라지고 끝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정한 ‘나’라는 존재 그 자체는 영원불변(永遠不變)하다. ‘나’라는 존재는 ‘없음’마저도 감싸고 있는 ‘있음’ 그 자체이다. ‘나’는 ‘모름’마저 내포(內包)하고 있는 ‘앎’ 그 자체이다. ‘무엇으로 있음’이 아닌 ‘있음’ 그 자체이고, ‘무엇을 앎’이 아닌 ‘앎’ 그 자체이다. 대상이 아닌 주체, 상대가 없는 절대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진정한 ‘나’를 누가 인정해 줄 것이며, 누구에게 증명을 해보일 것인가? ‘나’를 인정받고 증명해 보이기 위해 따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나’야말로 인정과 증명이 필요 없는 자명한 존재 그 자체가 아닌가? 이 ‘나’가 사랑받기 위해서 다른 노력을 할 필요가 있는가? 이 ‘나’가 바로 사랑 그 자체가 아닌가? 모든 대상으로서의 존재자들을 인정해 주고, 스스로를 표현하고 경험하고 증명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 ‘나’ 안에서 모든 것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 ‘나’라는 무한한 존재, 영원한 사랑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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