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한가한 도인(절학무위한도인)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한가한 도인(절학무위한도인)


증도가에 ‘절학무위한도인 부제망상불구진(絶學無爲閒道人 不除妄想不求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움이 끊어진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도 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참됨을 취하지도 않고 망상을 버리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불이법에 흔들림이 없이 확고하다는 말입니다.

마음공부는 특별히 어떤 공부나 수행을 통해 지금 여기 이 자리가 아닌 다른 특별하거나 더 높은 자리라는 목표지점으로 옮겨가는 공부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 이 자리가 이미 완성된 충만한 자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공부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다만 내 스스로 생각과 망상을 일으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분별할 수 없는 대상세계를 내 잣대를 가지고 해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은 집착하여 취하려고 애쓰고, 싫어하는 것은 거부하며 버리려고 애쓰기 때문에 괴로움이라는 환상이 시작된 것일 뿐입니다.

절학무위한도인, 불교에서는 도인을 배움이 이미 다 끊어져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닦을 것이 없는 사람으로 봅니다. 배우거나 닦아서 얻어야 하는 특별한 경지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런 무학도에 이른 이를 한도인 혹은 무사인이라고 합니다. 한가한 도인이며, 할 일을 다 해 마친 일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불이법에서 세상을 본다면, 사람들이 이 생에서 더 이상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안 하면 절대 안 되는 특별한 무언가는 없습니다. 무언가를 해야지만 행복해지거나, 수행을 해야지만 깨닫거나, 돈을 벌어야만 부자가 되거나, 사랑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지 사랑받거나 하는 그런 존재가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 있는 이 모습 그대로 이미 여여하게 원융하며 원통자재한 무사인 부처입니다.

다만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분별심과 망상으로 인해 스스로 괴롭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보니 스스로 만든 그 환상에서 빠져나오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스스로 만든 환상에서 빠져나온 사람이라면 더 이상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스스로 만든 환상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더 이 상 무언가를 취하려 하지도 않고, 버리려 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지금 이렇게 주어진 삶에 대해 좋다거나 싫다고 해석하지도 않습니다. 남들과 비교하지도 않겠지요. 취하거나 버리려 하지 않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게 되어 물 흐르듯 삶을 타고 흐르게 됩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삶에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취하려 애쓰지만 취해지지 않을 때 마음에 괴로움이 생기고, 버리려 하지만 버려지지 않을 때 마음이 괴로워지는 것인데, 취하거나 버릴 아무런 의도가 없으니 괴로울 것도 없는 것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아무것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것은 아닙니다. 돈도 벌고, 배 고프면 밥도 먹고, 목 마르면 물도 마시고, 필요 없는 것은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흔적이 남지 않는 것이지요. 인연 따라 취하고 버리지만 취하고 버린 바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공부는 세상사를 초월해서 따로 존재하는 특별한 정토세계를 찾거나,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가 아닌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는 공부가 아닙니다. 공부를 완성하더라도 새로운 곳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금 지금 이 자리에서, 지금 이대로의 세상에서 이전과 똑같이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삶으로 돌아오는 공부입니다.

다만 모든 것을 해도 한 바가 없이, 끄달리거나, 흔적을 남기지 않을 뿐입니다. 취해도 취한 바가 없이 취하고, 버려도 버린 바가 없이 버리기 때문에 취하거나 버리지 않는 불이법의 사람 중도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