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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망상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장백산-1 2024. 4. 15. 15:42

번뇌 망상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달마스님의 사행론에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자기 스스로  용과 호랑이를 그려놓고 그 그림을 스스로 보고 도리어 스스로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니, 어리석은 사람의 행위도 또한 이 사람과 같다. 알음알이, 분별심으로 칼 산과 칼 숲을 그려놓고 도리어 분별심, 알음알이로 그 그림을 두려워하나니, 만약 두려워함이 없으면 번뇌 망상이 다 없어진다”

나 스스로 용과 호랑이라는 그림을 그려놓고 혹은 귀신을 그려놓고 그것을 스스로 두려워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마음도 이와 같아, 알음알이라는 분별의식으로 칼산과 칼숲을 그린다. 즉 이 무섭고도 날카로운 언제 찔러올지 모르는 수도 없이 많은 세상을 그려놓고 스스로 그린 그 세상을 분별심, 분별의식, 알음알이로 헤아려 어리석게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마치 공포영화 작가가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귀신과 유령을 만들어 놓고 상상인 귀신과 유령이 실재라고 여기며 두려워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사실은 이 세상 전부가 내 의식, 알음알이, 분별심, 분별의식이 만들어 놓은 허깨비 귀신이며, 칼산과 칼숲이고, 용이며 호랑이고, 나와 너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 온갖 사건들 전부가 내 의식,알음알이, 분별심, 분별의식 스스로 만든 허깨비일 뿐이다.

사행론에서는 허깨비 같은 이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의식의 붓으로 식별하여 색성향미촉 등의 대상 경계를 그림으로 그려 놓고, 도리어 스스로 그린 그림을 보고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알음알이를 일으킨다. 그러면서 그 경계를 보면서 취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면서 도리어 알음알이로 분별하여 여러 가지 업을 일으킨다. 만약 이 알음알이 분별심이 본래부터 공적(空寂)함을 깨달으면 이것이 곧 수행이다.... 이는 모두 마음이 지은 바이니, 다만 색이 색이 아님을 알면 곧 해탈이다.”

의식, 알음알이, 삭(識), 분별심, 분별의식의 단어는 모두 같은 의미다. 보이고, 들리고, 냄새맡아지고, 맛이 감지되고, 감촉되는 그 모든 대상 경계는 사실 모두 의식, 알음알이, 식(識), 분별심, 분별의식이라는 붓으로 그려낸 허깨비일 뿐이다. 그렇게 의식이라는 붓으로 스스로 그린 그림을 보고 좋으면 탐내어 집착하고, 싫으면 성내기도 하면서 어리석은 분별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즉 스스로 만든 경계를 대상으로 좋은 것은 취하고, 싫은 것은 버리기도 하면서 분별하여 여러 업을 짓는 것이다. 좋은 것은 더 가지려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업을 짓고, 싫은 것은 거부하려고 애쓰면서 업을 짓는 것이다.

자신 스스로 자기 앞에 벌어지는 삶이라는 있는 그대로의 중립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싫고, 이것은 나에게 독이 되는 것이고, 저것은 내가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림을 그린다.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반드시 이 사람과 결혼해야 겠다는 알음알이를 내어 그 사람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저 사람은 언젠가 나를 공격할지 모르는 위험한 사람이라는 그림을 그려 놓고 그 사람이 올 때는 두려워하면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이 대학에 가면 성공이지만, 저 대학에 가면 실패고, 이 정도 점수는 받아야 성공이며, 어느 정도의 연봉은 받아야 하고, 사람들은 나를 대접해 줘야 한다는 등의 다양한 것을 마음이라는 알음알이로 분별해서 그려내는 것이다. 이런 삶에 대한 그림이 있게 되면 이제부터 그 그림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볼 때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내가 그린 그림이지만 이제부터 나를 구속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행론의 말씀처럼 이렇게 분별심으로 그린 그림이 모두 본래부터 공적함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색이 색이 아님을 보게 된다면 그것이 곧 해탈이다. 깨달음은 곧 내가 그린 망상의 그림을 본래 없던 공적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일 뿐이다. 생각, 망상이 그려놓고 그 그림에 내 스스로 빠져 있던 구속에서 스스로 벗어나기만 하면 될 뿐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평일 오전 07:50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