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영지(空寂靈知)
불교에서 말하는 참 나, 본래면목, 주인공, 불성을 의미하는 말로 공적영지(空寂靈知)라는 말을 씁니다. 공적(空寂)이란, 내 몸, 내 생각, 내 느낌, 내 의지, 내 의식이 진정한 내가 아니라, 몸도 왔다가 사라지고, 생각도 왔다가 사라지고, 세상 모든 일들이 왔다가 사라지는 배경이 되는, 마치 영화관의 스크린 같이 텅 비어 공적한 바탕입니다. 영지(靈知란 그러면서도 소소영령하게 그 모든 것이 오고 감을 아는 '알아차림'입니다.
공적영지(空寂靈知)가 진정한 나의 본성이지, 몸, 느낌, 생각, 의도, 의식(마음)이라는 오온(五蘊)이 나의 본성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병이 내게 찾아올 때 '내가 병에 걸렸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공적영지(空寂靈知)인 진정한 나는 병에 걸리고 싶어도 병에 걸릴 수가 없습니다.
영화관에 걸려있는 스크린은 공포영화도 무서워하지 않고, 불타는 화염 속에서도 불타지 않는 것 처럼, 공적한 마음(공적영지)는 불에도 타지 않고, 공포도 무서워하지 않고, 어느 것에도 오염되지 않습니다.
병에 걸린 것은 내가 아니라, 병이라고 이름 붙인 어떤 현상이 이 마음 배경 위로 인연 따라 왔다가 갈사라질 뿐입니다. 아무리 많은 병, 고통, 절망, 슬픔이 왔다가 사라더라도 스크린과 같은 배경의 공적한 마음은 전혀 물들지 않습니다. 그저 공적한 바탕 위에서 영지라는 영각성(靈覺性)이 그 왔다 사라지는 현상들을 알아차릴 뿐이지요.
나는 당신은 절망할 수 없고, 상처 받을 수 없고, 좌절할 수 없고, 실패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절망, 병, 좌절, 실패, 상처라는 경험이 진정한 나 위에서 알아차려질 뿐입니다. 진정한 나는 그 모든 현상들이 왔다가 사라지는 텅 빈 스크린이기 때문입니다. 교리, 원리, 가르침은 이렇고요, 이것이 내가 직접 체험해서 확인한 것이 아니면, 그저 그냥 교리일 뿐입니다.
곧장 내 병, 내 상처, 내 아픔이라고 이름 붙이지 말고, 정말 이것들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있는 그대로 살펴보세요. 병, 상처, 아픔 그것이 올 때 오도록 허용하고, 머물 때 머물도록 허용하며, 사라질 때 사라지도록 허용해 주세요. 사실 스크린은 늘 그렇게 허용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인연이 막힘 없이 오고 갈 수 있도록 허용한 채 오고 가는 인연들을 지켜보세요. 사실, 오고 가는 걸 허용하고 지켜보는 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일어납니다. 저절로,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일어나는 이 모든 작용에 생각을 개입시키지 말고, 그저 모든 작용과 하나되어 바라보세요. 진정한 나는 무엇입니까?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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