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삶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는 없다
냉정하게 말하면 완벽하게 삶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은 듣기에 좀 위험합니다. 이 말을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종교에서 이런 말은 더욱 금기시 됩니다. 종교가 완벽하게 내 삶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당신은 무엇이든 당신 뜻대로 할 수 있다' '신은, 부처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 주신다' '간절히 원하면 무엇이든 룰 수 있다' '열심히 기도만 하면 무엇이든 다 된다' '안 되는 것은 없다. 신이 부처가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이 더 종교적인 말처럼 들립니다.
정말 우리가 우리 삶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까요? 정말로 내 뜻대로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린 누구나 모두 똑같이 좋은 대학을 가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건강하고 싶고, 늙어 죽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내 뜻대로 모든 것을 해 낸 사람이 주변에 있던가요? 없습니다. '기도하면 뭐든지 다 된다'는 말이 더 진실한 것이 아니라, '삶은 통제할 수 없다'가 더 진실한 말이 아닐까요? 그러나 이런 말은 누구도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종교는 이 진실을 말하고 싶지 않아서, 새로운 핑계거리들을 지어냅니다. 우리 앞에 큰 괴로움, 고통, 절망, 실패가 올 때 종교에서는 말하죠. '전생에 죄가 많아서' '전생에 진 업이 많아서' '신이 내린 벌이라서' '신의 시험이라서' '네 기도가 덜 간절해서' '수행을 더 열심히 못해서' '깨어있지 못해서' 등등등 ... 이건 하나의 핑계에 불과합니다.
신은, 붓다는 누구를 시험에 들게 하지 않으며, 어떤 그 누구도 사람들을 피해자나 희생자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누구나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완벽하게 신의 사랑, 붓다의 자비로 감쌓여 있습니다. 절망, 슬픔, 아픔, 고통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사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이유, 삶에서 내가 이렇게 상처 받고, 괴로운 이유는 정작 다른 곳에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내 스스로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통제하려고 추구했던 내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요? 삶의 뜻이 아닌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허망한 그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삶을 통제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사실 '내 뜻'이라고 할 그 '나' 또한 실재하지 않습니다.
분별만 하지 않으면, 삶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완전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삶을 내 뜻대로 완벽하게 통제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 뜻이 정말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법화경에서 제법실상이라고 했듯이, 지금 여기 있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진실입니다. 지금 여기의 삶이 그대로 진실입니다.
내 뜻은 그저 하나의 생각이고 분별망상일 뿐입니다. 내 생각, 분별망상을 믿게 되면, 내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야만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삶은 내 뜻에 따라주지 않습니다. '내 뜻'을 고집하고 집착하면 할수록,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더욱 큰 괴로움이 나를 엄습합니다. 그 괴로움은 실제하는 괴로움이 아니라, 내가 고집하던 내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괴로움이라는 환상일 뿐입니다.
삶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신비입니다. 이 신비의 참 뜻을 사람들은 올바르게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삶이 왜 이런 삶을 내게 보내주고 있는지를 나는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삶이 내 뜻대로 안 될 때, 괴로움과 절망에 빠질 때, 삶이 나를 버렸다고 말하곤 합니다.
삶은 당신을 버릴 수 없습니다. 사실은, 내가 바로 삶이기 때문입니다. 몸, 생각, 느낌, 의지, 마음이 내가 아니라, 삶 이 자체가 그대로 나 자신입니다. 내 생각을 믿지 말고, 진정한 나 자신인 삶을 믿고, 삶에 내맡기세요. 그러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 갈 것입니다. 삶 그 자체인 내가 삶을 저절로 완벽하게 통제할 것입니다.
글쓴이 : 법상
'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적영지(空寂靈知) (0) | 2024.05.09 |
---|---|
나에게 찾아온 절망감, 외로움, 질병이 정말 '나'일까요? (0) | 2024.05.08 |
무아와 무분별의 실천 (0) | 2024.05.04 |
도(道)는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닌데 어떻게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0) | 2024.05.04 |
우주에 내맡기며 시절인연을 따를 뿐 (0) | 2024.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