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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대처하는 지혜로운 마음

장백산-1 2024. 5. 9. 17:30

병에 대처하는 지혜로운 마음

 

불교에서 깨닫는다 함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를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도 없는 ‘이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불성, 본래면목이니, 참나, 마음, 진리, 법 등 다양한 방편의 이름으로 부른다. 이것 즉 진리는 감춰져 있지 않다. 지금 여기에 이렇게 온전히 100% 드러나 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현실이 바로 진실이자 진리다. 당신이 아프든, 사업에 망했든, 우울하든, 괴롭든 상관없이,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현실세상이 온전한 삶, 진실, 진리라는 것이다.

 

이를 승조스님은 촉사이진(觸事而眞)이라 하여 부딪치는 것이 모두 다 진리라고 했고, 도오스님은 촉목보리(觸目菩提)라고 하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깨달음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마조스님은 입처즉진(立處卽眞), 임제스님은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고 하여 지금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진리 아님이 없다는 사실을 설했다.

 

그런데 이처럼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가  진리라면 왜 지금의 내 인생은 괴로운 것일까? 왜 나에게는 진리가 안 보이고 아픔만이 보이는 것일까? 그 이유는 분별심(分別心) 때문이다. 분별심이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고 분별하면서 좋다 싫다는 등으로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몸이 좀 아프다는 것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진실은 그저 아프다는 사실이다. 아프다는 사실은 아무 문제가 없다. 중립적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프다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아파서 괴롭다거나, 아프니까 힘들다거나, 남들은 안 아픈데 나만 아프다거나, 옛날에는 안 아팠는데 지금은 아프다거나 하면서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중립적인 현상을 분별하고 해석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다만 ‘아픈’ 현실이 ‘문제 상황’으로 바뀌는 것이다.

 

어쩌면 담배와 술을 매일 먹고 운동도 안 하던 사람이 암 진단을 받았는데 수술해서 나았고 그 결과 앞으로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담배도 술도 끊으면서 건강한 삶을 살게 되었다면 암 진단이라는 현실은 그 사람을 괴롭혔다기 보다는 그를 도운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모든 병은 그 병이 나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알 수 없다. 병 그 자체는 해석되지 않는 그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중립적 진실일 뿐이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병을 해석 분별하지 않은 채 그저 있는 그대로 경험하게 된다면 병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자연치유’라는 제목의 책에서도 똑같은 약을 처방해도 사람마다 치유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람의 마음이 병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에서 결정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쓰고 있다. 병을 원망하고 거부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보다 병이 왔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욱 빠른 치유를 보인다는 것이다.

 

심지어 시한부인생 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처음에는 부정하고 분노하고 우울해 하는 단계를 밟아가지만 결국 스스로 죽음이라는 현상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단계를 겪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수용과 받아들임의 단계에 이른 이들은 순간 지고의 평화와 놀라운 고요함을 얻게 된다고 한다. 분별하지 않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바로 이처럼 생사 조차 뛰어넘을 수 있는 지혜와 평화를 얻게 해 준다.

 

만약 당신이 병에 걸렸을지라도 그 병에 상관없이 지금 여기 있는 당신은 이대로 완전하다. 병은 우리를 깨닫게 하기 위한 꿈같은 삶의 스토리일 뿐 진짜가 아니다. 병을 분멸 해석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병으로 인해 괴로운 마음 그 깊은 배경에 자리하고 있는, 있는 그대로의 참된 진리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병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라. 병이라는 현실은 사실은 삶의 진실이다. 병은 진리로써 나에게 온 것이다. 문제로써 온 것이 아니라 답으로 왔다. 병이라는 현실을 허락해주라. 가슴을 열고 환영해 주라. 그리고 그 병을 사랑하라. 병은 나와 다른 둘이 아니다. 그렇기에 병을 미워하면 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병과 나는 하나임을 깨닫고 병을 사랑해주며 인정, 허용해줄 때 병은 자연스럽게 사라져 갈 것이다. 마음에서 병을 문제시하지 않게 되면, 병도 더 이상 문제를 안겨주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병에 대처하는 단순한 마음 자세의 변화이지만, 그 근원에서는 병을 치유하는 핵심적인 마음공부요 약사여래의 따뜻한 손길이 될 것이다.


법상, 동국의료원보, [동행] '2015년 겨울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