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을 수 있는 공부
죽음에 이르렀을 때에도 생과 사라는 분별에 집착하지 않으면 평생을 쌓아온 업장이라도 소멸할 수 있다.
일생을 수행했을지라도 임종에 이르러 생사에 집착하면 그 수행은 물거품이 되고 오히려 마귀의 포로가 되고 만다.
지금이라도 본래 마음을 깨달으면 다시 번뇌에 물들지 않는다.
[달마대사 혈맥론(血脈論)]
하루 중에도 잠자리에 들기 직전이 중요하다. 시끄러운 TV 소음에 시달리다 잠에 들면 잠들어 있는 내내 소음이 꿈속까지 뒤따라 와 정신을 뒤흔들어 놓지만, 잠들기 직전 고요한 와선 속에서 잠에 들면 밤새 고요함이 지켜진다. 가만히 잠들기 직전 무슨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는지, 그리고 그 생각들과 꿈에는 어떤 연관이 있었는지를 떠올려보라. 잠들기 직전의 생각이 온통 꿈속까지 휘젓고 다니며 단잠을 방해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데는 그리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하루 중에 이처럼 잠드는 순간이 중요하듯, 일평생 가운데는 죽는 순간이 중요하다.
아무리 일평생 수행을 잘 했다 하더라도 죽는 순간 생에 집착하여 미련을 못 버린다면 그간의 모든 수행은 물거품이 되고 오히려 마귀의 포로가 되어 헤매고 말지만, 죽음에 이르러 생에 집착하지 않고 냉철한 깨어있음으로 죽음의 순간을 지켜본다면 일평생의 수행을 뛰어넘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죽는 순간 생사의 집착에서 자유롭기 위해 사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생사의 집착을 놓아버리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하루 하루의 삶이 깨어있으며, 집착을 버리고 욕망을 거스르며, 온갖 번뇌를 놓아가는 쪽으로 비움과 수행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죽음은 삶의 연장이다. 삶의 순간 순간을 어떤 방식으로 살았느냐에 따라 죽는 순간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결정되어지기 때문이다.
올바른 웰빙이란 웰다잉과 다르지 않다. 웰다잉을 위해, 죽는 순간의 공부를 위해, 사는 순간 생사의 집착 없이 올바로 죽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생사를 비롯한 양극단의 모든 분별을 죽이는 것이야말로 참말로 잘 죽는 웰다잉이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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