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것 삼라만상은 하나의 마음이 찍어낸 도장 자국일 뿐이다.
성인(聖人)의 마음에는 본래 지위(地位), 인과(因果), 계급(階級) 따위의 헛된 개념이 없다는 사실을 성문(聲聞)은 알지 못때문에, 수행함을 원인으로 깨달음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망상을 한다.
근기가 뛰어난 중생은 선지식의 가르침을 듣고 바로 깨닫기에, 계급이나 인과 따위의 헛된 지위를 거치지 않고도 곧장 본성(本性)을 깨우친다.
도(道)는 닦을 필요가 없다 단지 더러움에 오염되지만 말라.(道不用修 但莫汚染) 무엇이 더러움에 오염되는 것인가? 생멸심(분별심)을 일으켜 조작하고 추구하는 것이 오염시키는 것이다.
도를 알고자 하는가? 평상심이 바로 도다. 무엇이 평상심인가? 조작하지 않고, 옭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취하고 버리지 않으며, 단견과 상견에 치우치지 않고, 범부와 성인을 나누지 않는 것이 바로 평상심(平常心)이다. 경전에서는 이를 두고 ‘범부처럼 행세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성인이나 현자처럼 행세하지도 않는 것이 바로 보살의 행 평상심이다.’라고 했다.
무릇 법을 추구하는 사람은 추구하는 바가 없어야 한다. 마음 바깥에 따로 부처가 없고, 부처 바깥에 따로 마음이 없다. 선(善)을 취하지도 말고, 악(惡)을 버리지도 말라. 깨끗함과 더러움 어느 쪽도 의지하지 말라.
죄(罪)의 본성은 텅 비어 공(空)하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죄의 본래 없는 것은 죄라는 자성이 본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계유심(三界唯心)이며, 만법유식이며 이 세상 모든 것 삼라만상은 하나의 마음이 찍어낸 도장 자국일 뿐이다.
✔ 성인의 마음에는 지위, 계급, 인과가 없고 수행의 단계나 점차가 없다. 그저 모르고 모르다가 한 순간에 밝아지는 것, 즉 돈오(頓悟)이지, 점오(漸悟)가 아니다. 수행을 원인으로 깨달음이라는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다. 수행이 점점 성숙해지는 그런 것은 없다.
참으로 수행을 잘한다면, 견성하는 그 순간까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모를 뿐이지, 점점 더 알 것 같고, 조금씩 밝아지는 것 같은 그런 것은 없다. 모르고 모르다가 완전히 답답하고 죽을 것처럼 모르게 되어 모름으로 하나가 되고, 모름으로 똘똘 뭉쳐지는 것이 바로 의정(疑情)이고 의단(疑團)이다. 그런 의단이 독로(獨露)해 지다가 한순간 문득 돈오하는 것이 이 공부다.
그러니 뛰어난 중생은 그저 선지식의 가르침을 듣다가 바로 깨달을 뿐, 계급이나 지위 없이 곧장 견성한다.
그래서 마조는 ‘도는 닦을 필요가 없으니, 더러움에 오염되지만 말라’고 했다. 생멸심은 생겨나고 사라지는 마음이다. 생멸심으로 조작하고 추구하는 것이 더러움에 오염되는 것이다.
도는 평상심 (平常心) 이다. 조작하는 것은 힘이 들지만, 조작하지 않는 것은 힘이 들지 않는다. 그냥 평상의 마음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힘들고 노력해야 하며 어느 쪽이 더 옳은지를 구분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새로운 학문과 윤리도덕을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것은 아주 쉽다.
취하고 버리지 않고, 단견과 상견에 물들지 않고, 범부와 성인을 나누지 않는 것이 쉬운 평상심이다.
마음에 구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구할 때까지 마음은 쉴 수가 없다. 때문에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참되게 법을 구하는 자는 구하는 바가 없다. 그저 쉬면 될 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그러니 선(禪)이 어떻게 어려울 수가 있는가? 사람들은 너무 어렵게만 살아오던 버릇이 습관이 되어서, 너무 분별하며 살던 것이 습관이 되어서 분별없고, 쉽게 가는 길을 열어주면 그같은 길을 오히려 힘들어하는 것일 뿐이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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