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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가 말을 할줄 모를까봐?

장백산-1 2025. 2. 28. 13:59

[백장 어록]  부처가 말을 할줄 모를까봐?

 

 

만약 처음의 알음알이로 헤아려 분별하면, 이를 일컬어 정결(頂結, 상투를 틀다, 머리카락을 정수리에 묶다) 이라고 하고, 정결에 떨어졌다고도 한다. 알음알이로 헤아리고 분별을 하는 것이 번뇌의 근본이다. 스스로 분별심을 일으켜 포승줄도 없이 스스로를 묶는다 (자승자박/無繩自縛). 분별심 때문에 세간이라는 이십오유(二十五有, 윤회하는 존재계를 25가지로 나눈 것)에 결박되고, 다시 일체의 번뇌의 문으로 흩어져 거기에 결박당한다.

 

뜻과 말을 이해하고 아는 것을 쫒아가지 말라. 이해하고 아는 것은 탐냄이니, 도리어 병이 될 뿐이다. 다만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또 벗어났다는 분별에서도 벗어나, 삼구 밖으로 빠져나간다면, 저절로 부처와 차별이 없을 것이다. 이미 본래 부처라면 부처가 말할 줄 모를까봐 염려하지 말라. 다만 부처가 되지 못한 채, 유무(有無)의 일체 분별에 빠져, 참된 자유를 얻지 못할까봐 두려울 뿐이다.

 

✔ 불교와 선에서는 알음알이를 가지고 헤아려 분별하는 것을 정결(頂結)에 떨어졌다고 하여, 일체 모든 번뇌의 근본으로 본다. 식(識)이라고 부르는 분별심, 분별의식이 스스로에게서 일어나 스스로를 얽어맨다.

 

중생의 괴로움은 누가 밖에서 자신을 묶거나, 누가 괴로움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기의 분별심으로 제 스스로를 묶은 것일 뿐이다. 이것을 무승자박(無繩自縛), 혹은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고 하여, 자신을 묶은 포승줄이 없음에도 중생들은 스스로를 분별의식의 포승줄로 묶어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다.

 

이러한 분별심 때문에 일체의 세간, 삼라만상, 온 우주가 생겨났으며, 일체의 괴로움과 번뇌에 사로잡힌다. 만법유식(萬法唯識)이 그것이다. 일체 삼라만상 만법은 오로지 자신의 분별의식이 투영된 그림자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괴로운 것인지, 즐거운 것인지는 전적으로 자기의 의식에 달린 일이다.

 

똑같이 연봉을 몇 천 만원을 받으면서 어떤 이는 스스로를 부자라고 여기고, 어떤 이는 가난하다고 여긴다. 몇 천 만원이라는 연봉 속에 고정적으로 많다거나 작다는, 부자라거나 가난하다는 어떤 절대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자기의 의식에서 만들어지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고 하여, 오직 식이 있을 뿐, 바깥 경계는 없다고 설한다.

분별심으로 분별하여 이해하고, 뜻과 말을 이해해서 아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도리어 병이 될 뿐이다. 아무리 분별을 잘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병이다.

 

중생들의 첫 번째 분별이 바로 ‘있다거나 없다’는 분별이다. 이 우주는 있을까? 없을까? 나는 있을까? 없을까? 내가 겪고 있는 이 괴로움은 실제로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순간순간 인연 따라 올라오는 이 느낌과 감정, 생각들은 실체일까? 아닐까?

 

이 모든 있다거나 없다는 생각은 말 그대로 허망한 하나의 분별일 뿐이다. 그 분별심 때문에, ‘있다’고 생각하고, ‘없다’고 생각하는 그 분별심 때문에 ‘있다’고 느껴지는 것들에 실체감을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한 채, 좋은 것은 더 많이 가지려고 집착하고, 싫은 것은 없애버리려고 애쓰는 취사간택이 벌어진다.

 

바로 그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분별이 원인이 되어 일체의 모든 판단분별과 취사간택이라는 일체의 괴로움이 연기되는 것이다.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또 벗어났다는 분별에서도 벗어나, 삼구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어야 비로소 부처와 차별이 없을 것이다.

 

부처가 말할 줄 모를까봐 염려하지는 말라. 부처가 되고 나면, 일체 모든 것이 공하여,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고, 완전히 무집착과 무분별이 되어 아무런 삶에 대한 의욕도 없고, 생각도 없으며, 나아가 말 한 마디 못 하는 바보가 되는 것일까 하고 걱정할 것은 없다.

 

부처의 무분별은 전혀 분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분별할 것은 다 분별하면서도 그 분별에서 놓여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삼구를 투과하여 자유자재하다.

 

다만 있고 없음이라는 일체의 분별에 빠져 대자유를 얻지 못할까봐 두려울 뿐.

 

 

글쓴이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