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시민민주주의

[이해찬] 재단법인 광장 하계수련회 강연

장백산-1 2008. 9. 2. 09:27

2008-8-30 재단법인 광장 수련회 기조 강연 - 이해찬
번호 161092  글쓴이 논가외딴우물 (msmwjp)  조회 357  누리 252 (252/0)  등록일 2008-9-2 00:53 대문 12 추천

2008년 8월 30일, 무주리조트에서 진행된 재단법인 광장의 수련회에서의 기조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말미에 강연의 전 과정이 담긴 동영상을 함께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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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도 있었지만, 한계도 있었던 지난 10년이었습니다.

 

저는 재야 운동 이후, 20년 동안 정치에 임하면서 여러 가지 정책에 대해 책임을 졌던 입장에서, 지난 10년을 통하여 재집권하지 못함으로써 오늘날 국민 대다수가 걱정해야 하고, 민생에 시달려야 하고, 앞으로의 사태에 대하여 우려를 하게 만든 점에서 책임을 통감해야 할 사람입니다.

 

역사란 국민이 모두 함께 해 나가는 것이지만 역사의 선도적인 역할을 정치인들이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그 폐해와 고통은 국민과 후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정치인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인데, 그런 점에서 재집권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국민께 미안하고 송구스럽다는 마음을 안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여러 가지 잘못이 있는데 이런 잘못된 점을 우리 스스로 반기고 있지 않은가 하는 자성도 합니다.

 

이는 우리가 반겨야 할 일이 결코 아니며 그 결과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폐해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런 폐해를 극복해서 앞으로 역사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적 대안, 전망, 비전, 이런 것을 우리가 지속적으로 발굴해 책임 있게 제시하고 이를 위해서 서로 힘을 모으고 노력해 나가는 진지한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집권했던 세력으로서 퇴행하는 역사를 막고, 민생을 안정시키고, 한반도의 분단체계를 극복할 수 있는, 그런 희망을 줄 수 있는 실천 가능한 대안,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과 자세를 보여주고 꾸준히 헌신해 나가는 모습을 보일 때만이 개혁 세력이 다시 한번 국민에게 신뢰와 지지를 받고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노력을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해야만 결국 국민적 신뢰와 믿음이 생기고, 우리가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 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보면 어둠 속에서도 항상 두 가지 결과는 함께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근대화의 실패 과정에서 친일분자도 생겼지만, 동학혁명을 통한 민중의 권리와 민족의 해방 운동에 헌신했던 분들이 계셨고, 친일 자본가, 지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들을 위한 여러 가지 민중 운동도 있었습니다. 군부 독재 과정에서는 민주화 운동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도 생겨나왔고, 경제 개방 과정 속에서는 우리 노동자, 서민, 농민들의 자주적인 생존권 확보에 대한 노력과 투쟁이 우리 현대사의 큰 역량으로 발전해 온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역사적 퇴행이 걱정스러운 것 같지만, 그에 상응하는 역량들이 반사적으로 발전하리라 봅니다.

 

 

제가 데모하고 시위하는 점에서는 한다 하는 기획가였는데 그건 벌써 20년 전 옛날 패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문화와 세대의 가치, 방법, 양식에 맞춰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함부로 나설 때가 아니구나, 이미 한물갔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끝없이 발전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비관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파시즘 적인 정권일지라도 독일이나 이탈리아와는 달리 우리는 타국과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가 아니므로 내부에서의 갈등과, 좀 더 확대해 본다면 대북 관계의 갈등 등이 심화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 또한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역사와 경험이 있고 또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분단사, 냉전사 속에서 성장해 온 수구적인 기득권의 역량은 굉장히 강한 것이기에 쉽게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97, 2002년 대선이 진영 간의 순수한 역량 대결이었다면 집권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시 여러 가지 상황이 작용하는 가운데 연대를 통해 전술적으로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두 번의 집권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좋은 기회를 확대 발전시키지 못하고 재집권으로 이어가지 못한 것에 대해 냉철하고 철저한 자기 분석과 평가 없이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국민에게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은 송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겸허하고 냉정하게 스스로 평가하고 정리해낸 토대 위에서 앞으로의 과제를 세워나가야 함에 불구하고 우리의 귀책과 오류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물을 저는 아직 접하지 못했습니다.

 

 

 

현상적으로 보면 5, 6공으로 퇴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공안적 발상이나 KBS 사장 해임 과정 등을 보면 그렇습니다.

불온서적 리스트를 만들어 베스트셀러가 되게 하는 것을 보면 5공 시절과 같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전 근대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지만 저는 우리 국민이 충분히 극복하리라 봅니다.

다만, 그동안의 우리 오류에 대한 평가 없이 섣부르게 행동하면 극복되지도 않을 것이고, 좋은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도 못하는 새로운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대로 풀어나가지 않으면 모두가 어려움에 부닥치는 상황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북아 평화 체제와 사회 대통합이 중요합니다.

 

동북아 평화 체제를 만들지 않고서 한반도의 안정과 민생을 도모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단기적 이익 추구에 파묻히면 결국 우리의 오류를 다시 범할 수 있기에 중장기적 전망을 함께하면서 사회적 대화를 지속적으로 해 나가는 가운데 복지와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 후세들에 대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들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념적 대결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인간의 삶의 질과, 자유와, 생존 조건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향상시켜 나가느냐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두고 서로 대화하고 협의하고 타협하는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올해, 제주 4.3 사건 60주년이 되는 해에 건국절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당시 단정(남한 단독정부)을 반대하고 저항했던 시민들이 이를 진압했던 세력들로부터 엄청난 피해를 보았는데 공교롭게도 그 60주년이 되는 해에 광복절이 건국절로 바뀌는 역사의 퇴행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파도에 불과합니다. 이보다 훨씬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냈습니다.

높은 의식이 있고 쌓아온 성과가 있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 보지만 낙관만 해서도 안 되고 우리가 지속적인 노력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믿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철학과 신념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 그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자유, 생활 토대, 이것을 향상시켜 나간다는 것이 역사의 발전이라는 우리의 확고한 믿음입니다.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보면서 저는 희망을 더 많이 느꼈습니다.

 

강남에서의 몰표를 보면서 그렇게까지 탐욕스러우리라 생각지 못한 것이 우리의 순진한 자세였던 것 같습니다.

 

군부 독재 시절에는 군부라는 외피가 있었기에 수구 세력이 얼마나 탐욕스러운가가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탐욕스러움 보다는 군부라는 외피와 싸우는 데에 더 치중했습니다.

 

이제 군부라는 외피는 없어지고 수구라고 하는 기득권 세력의 탐욕스러움과 시민 세력이 싸우는 국면에 들어왔습니다. 싸움 하나하나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이겨나가면 충분히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에 들어와 전쟁 없는 유럽으로, EU로 통합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부럽고 유럽 문명사가 새롭게 전개해 나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유럽이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이 없는 세기,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반면에 우리 동북아는 아직도 평화체제에 대한 매듭을 짓지 못해서 군비 경쟁이 강화될지 모르는 이런 상황을 안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역사의, 우리 주변의 한계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 지역의 독특한 역사적 굴레 속에서, 동북아의 평화 체제 완성이라는 것은 우리 민생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삶의 가치와 직결되는 문제이며, 7천만 민족 공동체의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함께 다루면서 앞으로 정책적으로 구체화해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미분해서 볼 수도 있고 적분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좌절하는 사람이 변절합니다.

동지들에 대해 신뢰를 하고, 희망을 품고, 대화를 하면서 역사에 이바지하는 자세로 가면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적인 욕망을 추구하다 좌절하고 변절하게 되는 일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동지들과 함께 할 때 서로 보듬어 나갈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같이 일하다가 먼저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먼저 가신 분들이 있는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서 왜 이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겠느냐 라는 심정에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렇게 여러분을 뵙게 되니 저 자신도 용기가 많이 생기고 마음의 위안이 됩니다.

앞으로도 함께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