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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MB시대 구보씨의 하루

장백산-1 2008. 12. 1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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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MB 시대 구보 씨의 하루
번호 185404  글쓴이 펌쟁이  조회 2953  누리 606 (606/0)  등록일 2008-12-10 14:02 대문 30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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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도 말하지 않은 경제지표 및 주가지수의 비밀
(블로거뉴스 / MP4/13 / 2008-12-10)



06:00

"새벽 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그래서 구보 씨도 일어났다. 너도 나도 일어나라고 동사무소 확성기에서 틀어대는데 어쩔 수 있나. IMF가 울고 갈 경제 위기를 새마을 정신으로 돌파자하는 차원에서 2009년부터 저런 노래를 틀어대고 있는데, 아침 잠이 많은 구보 씨로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하지만 얼리버드 대통령을 두고 있는 덕택에 구보 씨도 어쩔 수 없이 얼리버드가 되어야 할 판이다. 하지만 '버드'긴 하지만 날지는 못하고 굼뜬 칠면조나 닭 정도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머릿속이 몽롱한 상태로 TV를 켜니 한참 국민체조가 방송되고 있다. 아, 저것까지는 도저히 못 하겠다. 눈 뜨는 것만 해도 국민체조 열 바퀴는 돈 다음처럼 힘든데.

잠시 후 아침 뉴스가 시작되었다. 역시나 시작은 대통령 동정. 또 새벽 바람으로 시장에 갔나보다. 대통령이 시장에 나타나니까 상인들이 너도 나도 한 번 안아 보려고 달려드는 통에 시장은 완전 난장판이 된 모습이었다.

기자는 대통령에 대한 시장 상인들의 애정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침이 마르게 설명하고 있지만 구보 씨는 다 안다. 저렇게 달려들어서 품에 안기는 데 성공하면,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고 눈물 연기 한 번만 해 주면 배추 500포기는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고작 2, 3만 원 버는 사람들에게 한 방에 배추 500 포기가 어딘가.

그래서인지 구보 씨 동네에 사는 독거노인 김 씨 할아버지 집에는 김치가 넘쳐난다. 그렇게 대통령이 산 배추는 김치를 담가서 불우이웃들에게 보내는데, 복지 예산은 대폭 깎여서 먹고 살기는 팍팍해진 김 씨 할아버지지만 김치는 넘쳐난다.

쌀은 없는데 김치는 먹고 죽을만큼 많다면서, 김치 장사나 해야겠다고 허허 하고 웃는 김 씨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구보 씨는 정말로 김치라도 좀 사줄까 싶었지만 요즘 구보 씨도 궁하기는 마찬가지다. 펀드에 들어 있던 천만 원은 5만 원이 된 지 몇 달 됐고, 요즘은 그나마 간간이 있던 사보나 잡지의 꽁트 원고 청탁도 끊겼다. 요즘 같은 때에 소설 출간? 변변한 베스트셀러 한 권 만들어보지 못한 3류 소설가 구보 씨에겐 어림도 없다.


08:00

일찍 일어나긴 했는데 뭘 해야 할 지 몰라서 비몽사몽 헤메던 상황이 두 시간이 흘러갔다. 일어났다가 누웠다가를 몇 번 하고 나서야 구보 씨 머릿 속에서 안개가 걷혔다. 까치집이 된 머리를 북북 긁으면서 구보 씨는 오늘 뭘 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할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할 일이 없다 보니 오늘 무슨 약속이라도 있나,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참 뇌세포 여기저기를 노크하던 구보 씨가 드디어 약속을 생각해 냈다. 후배 여성 작가와 저녁 때 술 한 잔 하기로 한 게 생각난 것이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후배가 요즘 들어서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닌가 보다. 하긴, 결국 계획대로 조중동이 방송을 접수했으니... 조-MBC, 중-KBS2, 동-sbs라는 시나리오가 결국 완성되고 나서 구보 씨는 TV 보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어쩌면 감사해야 할 일일 지도 모르겠다. 바보상자의 족쇄에서 탈출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바보상자 속에서 먹고 살아야 하는 후배는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했다. 조금이라도 정권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표현이 있다면 곧바로 위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2009년 설날을 맞아서 원고에 "올해는 '쥐'의 해입니다"라고 했다가 하마터면 자리를 내 놓을 뻔했다.

"어떻게 해요. 유신 시대 때도 다들 방송 했다잖아요."

후배는 이렇게 말은 했지만 그만둘까 말까 고민이 무척 많은 모양이었다. 계속 하자니 정말 더러워서 못 하겠고, 그만 두자니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고. 어쩌면 경제가 망가진 덕분에 사람들이 말은 잘 듣게 된 것 같아서 대통령은 덕은 좀 보는 것 같기도 하다.


10:00

오전에 별 할 일 없는(그렇다고 오후에도 딱히 대단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 구보 씨는 인터넷이나 어슬렁거려 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쓰려면 이제는 실명 확인을 받아야 한다. 예전에도 실명화인제는 있었지만 이제는 인터넷 뱅킹 때 쓰던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특히나 어디에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려면 필수다.

연예인 악플을 구실로 연예인 이름까지 붙인 법을 기어코 밀어붙여서 사이버모욕죄를 만든 지라 글 하나 쓰는 게 정말로 조심스러워졌다. 사실 구보 씨는 연예인 미니홈피에 글 한 번 올린 일도 없고 연예기사는 그냥 패스, 하는 사람이지만 지난 달에 사이버모욕죄에 걸려서 된통 당했다.

비리가 들통난 여당 국회의원을 비난했다가 사이버모욕죄에 딱 걸리는 바람에 경찰서와 검찰을 몇 번씩이나 들락거리고 나서 벌금 100만 원에 약식기소됐다. 구보 씨 주위에도 여기 한 번 안 걸린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라서, 이제는 포털 사이트를 들어가 봐도 토론방의 글이나 뉴스의 댓글은 확 줄었다.

물론 물 만난 고기처럼 설치는 대통령 쪽 패거리들의 '좌빨' 타령 댓글은 넘쳐나고 있는지라, 구보 씨는 아예 댓글을 보이지 않게 닫아 놓았다. 물론 이런 패거리들은 아무리 막말에 욕을 해도 사이버모욕죄에 걸릴 일이 없다.

이러고 보니까 인터넷을 들어가 봐도 별 할 일이 없다. 뉴스 기사도 대부분은 정권 눈치나 보면서 정부 홍보지 비스무리한 밋밋한 얘기고, 댓글이나 토론방은 그 모양이고... 결국 구보 씨는 30분 만에 컴퓨터를 꺼 버렸다.


12:00

12시 뉴스도 역시 땡 치자마자 "이명박 대통령은..."으로 시작한다. 구보 씨는 TV를 끄면서 내가 왜 켰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직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런가 보다. 쉽게 고쳐지질 않네,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바깥으로 나섰다. 점심을 해결해야 하니까.

동네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이라도 사다 먹을까 하고 편의점 앞에 다다는 순간, 출입문이 잠겨 있었다. 눈이 나쁜 구보 씨는 미처 출입문에 붙어 있던 '임대문의'란 안내문을 못 본 것이다. 이런, 여기도 문 닫은 거야? 건너편 편의점도 며칠 전에 문 닫았는데...

작년에 청와대 관계자가 "현실성은 없지만 최악시엔 야간통금도 불사할 수 있는 비상한 각오와 의식으로 임해야 한다"라고 말했는데 그 '현실성 없는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하긴 지금 나라 꼴은 이미 '최악'도 한참 지나가 버렸고, 더 현실성 없는 한반도대운하도 기어이 착공해서 터널을 뚫고 있는 판이니, 그깟 야간통금쯤이야... 그 바람에 24시간 영업을 내세우던 영업장들이 폭탄을 맞았다.

사실 밤에 무슨 손님이 있나 싶지만 알고 보면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은 밤 손님이 쏠쏠한 법이다. 그리고 ,그런 곳은 그렇게 24시간 돌려야만 수지를 맞출 수 있기도 하다. 아무튼 통금이 부활하고 나니 24시간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들 중에서 문을 닫는 곳이 속출했다. 경제가 망한 판에도 가까스로 그로기 상태로 버텨오던 곳들이라서 작은 잽 한 방에도 무너진 것이다.

결국 구보 씨는 한 블럭을 더 가서 슈퍼에서 라면을 사 가지고 왔다. 밥 해 줄 사람도 없고, 밥 하기도 귀찮은 구보 씨인지라 편의점도 없어진 지금 결국 선택할 건 라면 뿐이었다. 아참, 김치가 없는데... 쌀은 없는데 김치만 넘쳐난다던 김씨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정말 김치 장사라도 하시지. 이럴 때 내가 좀 사다 먹으면 좋은데.


14:00

구보 씨의 머릿속에 갑자기 아차, 하고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오늘 민방위 교육 받아야 되는데. 예전 같으면 아침 아니면 저녁 때 받아야 하지만 요즘은 워낙에 노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사람들을 분산시킨다고 낮에도 교육을 한다. 30분 남았다. 부리나케 옷을 챙겨 입고 구청 강당에 도착했다.

뭐, 누구들 민방위나 예비군 가고 싶을까. 안 가면 벌금이나 과태료를 무니까 어쩔 수 없이 가는 거지. 구보 씨가 구청에 도착하니 교육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정말 노는 사람이 많은 지 강당에 빈 자리가 많지 않았다. 잠시 후 구청장 인사가 간단히 끝난 뒤, 북한민주화를 위한 어쩌고저쩌고... 단체의 대표란 사람이 나왔다. 이거 뭐야?

작년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편향된 역사관을 바로잡는다면서 우익 인사들을 끌어 모아서 특강을 했고, 국방부장관이 "편향된 역사관을 가진 장병들이 많다"는 말을 한 이후로는 군에서도 특강이 자주 열린다는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민방위훈련에서까지 이러나?

그런데 이유인 즉슨 예전의 편향된 교과서로 배운 사람들에게도 역사관을 바로잡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강사로 나선 사람은 한참이나 북한 욕, 친북정권 욕을 해댔다. 이게 도대체 역사특강인지 욕특강인지 모를 정도로 원색적인 육두문자까지 튀어 나오면서 강사는 얼굴이 벌개지도록 분풀이를 잔뜩 하고서야 내려왔다.

그 다음에는 국토해양부의 무슨 과장인가가 나와서 한반도대운하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올해부터 착공에 들어간 한반도대운하가 완공되면 물류시스템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환경친화적이고, 관광수입이 큰 폭으로 늘고... 이런 자랑을 한참이나 했다. 내려가기 전에 요식행위로 "질문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과장 앞에 정말 용감하게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운하란 거 말이죠. 그냥 부산항에서 인천항 가는 것보다 이틀이나 더 걸린다는데요?"

과장의 얼굴이 확 변했다. 그러더니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십니까? 이틀이 늦어진다고요? 그럼 물건을 이틀 일찍 만들면 되잖습니까? '하면 된다' 정신을 좀 가져 보세요!"

하, 면, 된, 다! 그랬다. 하면 되는 거다. 그게 얼마나 바보짓이든, 다른 더 좋은 대안이 있든, 어쨌거나 결과만 만들면 된다는 정신, 그게 바로 이 정권의 정신 아닌가. 그건 왕회장 시절 현대그룹의 정신이기도 했고 박정희 시대의 정신이기도 했다. 셋은 놀라운 삼위일체였던 것이다.

그 다음에는 경제살리기국민운동연합 어쩌고 하는 무척 긴 이름의 단체 사무총장이란 사람이 나왔다. 달러를 기부하면 남은 교육을 안 받아도 출석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다. 외환보유고가 탈탈 털리다 보니 이제는 달러 모으기 운동이 한창이다. 구보 씨도 이럴 줄 알고 10달러 짜리를 암달러상한테서 바꿔가지고 왔다. 요즘 민방위 교육이나 예비군 훈련이 있는 날이면 교육장 근처에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는 아줌마들이 많다. 그게 다 암달러상이다.


17:00

갑자기 '왱~'하고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후배 작가를 만나기 위해서 약속 장소로 가던 구보 씨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근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설치된 확성기가 잠시 치직거리더니 아나운서의 멘트가 시작됐다.

"지금부터, 국기하강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애국가가 연주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거리에 서서 모두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었다. 구보 씨도 얼떨결에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렸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다시 옛날 버전으로 돌아간 '국기에 대한 맹세'가 울려퍼지는 길거리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경찰청이 범죄 예방을 막는다고 길거리 곳곳에 설치해 놓은 CCTV는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사람들이 국기하강식에 잘 참여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모니터가 된다. 국가관과 안보관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꼬리를 잡히면 언제 어디서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으면서 사시미칼이 어쩌네 저쩌네 하고 인간 횟감 취급하는 전화가 올 지 모른다.

1분 남짓한 시간이 흐른 뒤에 국기하강식이 끝났다. 사람들은 다시 제갈 길을 가기 시작했고, 구보 씨도 그 행렬에 묻혀서 걷기 시작했다. 이런,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녀도 국기하강식에 걸려서 나만큼 시간을 지체했을 수도 있으니 비슷비슷하게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는 구보 씨 옆으로 확성기를 잔뜩 단 트럭이 '좌파척결', '친북박멸' 같은 구호를 부르짖으며 달리고 있었다.


18:00

후배 작가를 만나기로 한 곳은 영화관 앞이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그거나 먼저 보고 한잔 하자는 얘기였다. 후배작가도 구보 씨 만큼이나 재주가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몇 년 째 남자친구가 없다. 그럼 둘이 사귀면 안 되냐고? 사실 구보 씨도 아주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능력이 돼야지. 영화표도 후배가 샀는데.

영화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리고, 화면 가득히 태극기가 꽉 찼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서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오른손을 왼손 가슴 위에 올렸다. 아까도 국기하강식 때 했는데, 또 해야 되나? 하지만 국가관과 안보관을 고취시키고 애국심으로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다는 구실로 이런 것도 부활됐다.

이걸로 끝난 건 아니다. 그 다음에는 '대한뉴스'가 시작됐다. 물론 주로 대통령 동정, 대통령의 치적 이런 걸로 10분 쯤이 흘러갔다. 이쯤 되면 뉴스가 아니라 정부의 광고 방송이다. 자, 이제 영화가 시작되나? 했더니 이번에는 또 '청계천의 기적'이란 자막이 크게 떴다. 청계천의 기적이 어떻게 이룩될 수 있었는지, 이를 이끈 영도자는 누구인지에 대한 횡설수설이 한참 이어지고 있었다.

뻔하다, 또 운하 얘기하려고 그러지? 아니나다를까, 결국은 결론은 청계천의 기적은 한반도대운하의 기적으로 이루어져서 국운융성과 선진7개국 도약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렇게 20분이 지나가고 나서야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계에 있는 친구는 요즘은 편집을 예전보다 20분 정도 더 짧게 한다고 말했다.


22:00

술집에는 사람이 꽉 찼다. 워낙에 싼 집이라서 그렇다. 요즘 술집들을 돌아다녀 보면 극과 극이다. 이곳처럼 남는 거나 있을까 싶게 싸게 파는 술집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그렇지 않은 집들은 썰렁하다. 썰렁한 집은 썰렁한 집대로 울상이고, 이곳도 사실 그렇게 함박웃음 지을 상황은 아니다. 사람은 많아도 남는 건 별로 없으니 말이다.

이곳의 주 메뉴는 삼겹살과 소갈비살이다. 그런데 소갈비살이 더 싸다. 미국산이라서 그렇다. 농업은 망해가고 돼지 키우는 사람들도 줄어서 돼지값은 올라가는데 미국산 쇠고기는 쏟아져 들어와서 우리 쇠고기든 돼지고기든 초토화시키는 판이다.

구보 씨나 후배나 돈이 넉넉한 편은 아니니 더 싼 소갈비살을 시켜야 하겠지만 그래도 영 꺼림칙했다. 결국 비싼 삼겹살을 시키고 한잔 두잔이 오갔다. 구보씨는 삼겹살을 무척 촘촘하게 잘랐다. 비싸니까 이렇게 하면 덜 빨리 줄겠지, 하는 게 구보 씨 생각이었지만 무심한 후배는 선배의 깊은 뜻도 모른 채 쌈에다 몇 점씩을 척척 싸서 먹는 것이었다. 이거 내가 내야 되는데, 아무래도 더 시켜야겠는데, 카드 한도가 얼마 남았더라, 다음 결제일 막으려면 현금서비스 한도가 좀 남아 있어야 되는데...

하지만 결국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신 뒤 구보 씨는 용감해졌다. 까짓거, 다음 결제일까지 꽁트 청탁이라도 하나 들어 오겠지, 하는 생각에 인심 좋은 선배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래, 먹고 싶은 만큼 먹으라고. 요즘 방송사도 예산이 확 줄어서 회식도 맘대로 못한다던데, 오죽했겠냐.


00:00

"왱~"하는 소리에 버스 정류장에서 졸고 있던 구보 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통행 금지 시간을 알리는 사이렌이었다. 이미 주위를 보니 아무도 없었고 거리에 차량들도 자취를 감췄다.

"어이, 거기 뭐야?"

뭔가 생각할 틈도 없이 순찰차가 구보 씨의 앞에서 멈춰 섰다. 구보 씨는 순순히 경찰차에 올랐다. 차 안에는 이미 술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고 뒷좌석에는 구보 씨보다 좀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한 사람이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퍼져 있었다.

순찰차는 잠시 뒤에 역시 거리에서 비틀비틀 걷고 있던 취객 한 사람을 더 태우고 나서야 근처 경찰에 도착했다. 유치장에는 이미 여러 명이 새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술냄새에 입냄새가 진동하면서 파출소 안은 마치 술집 옆 쓰레기장 같은 분위기였다.

"아니, 도대체 때가 어느 땐데 통금이야? 박정희 시대야?"

아까 순찰차에서 구보 씨 옆자리에 있던 취객이 약간 정신이 드는지 소리를 꽥 하고 질러댔다.

"박정희 시대? 몰랐어? 박정희 시대 다시 온 거?"

유치장에 있던 경찰 한 명이 바로 맞받아쳤다. 정말이지 박정희 시대가 다시 온 것 같기도 하다. 구보 씨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다. 정말이지 초등학교 시절 어슴푸레한 기억으로 남아 있던 대한뉴스니, 국기하강식이니 하던 것들이 2009년에 컴백한 것이었다. 패션이나 대중문화계에서 언제부터인가 복고풍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사회가 복고풍 유행이 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취객과 경찰은 한참이나 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별 내용도 없는 소리를 횡설수설하던 취객은 갑자기 잠이 들었는지 코를 골기 시작했다. 구보 씨도 슬슬 졸리기 시작한다. 지금 이 시간이 꿈인지 생시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내가 혹시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은 2009년 아닌가? 1979년인가? 눈이 스스르 감긴다. 지금 대통령이 이명박... 정희였던가...

 

※ 출처 - http://blanc.kr/1067

 

ⓒ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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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