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간지의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군산대교수 정균승]

장백산-1 2009. 8. 5. 23:0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정균승 2009-05-24 04:56:32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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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비통하고 참담한 마음 뿐이다.

왜 우리는 전직 대통령을 이렇게 보내야만 했던가?

 

권력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 한 자연인에게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굶주린 이리떼처럼 한꺼번에 달려들어

물고 할퀴고 난도질을 가했던 사람들,

그들은 이제 직성이 풀렸을까?

간밤에는 오랜만에 발 뻗고 깊은 숙면을 즐겼을까?

 

이역만리 타국이지만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여러 번 뒤척거리며 서글프고 애통한 심정을 혼자 달랜 밤이었다.

참 많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잠못 이룬 밤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득권층과 최대의 깡패집단 같은 보수언론 그리고 권력기관의 총공세 앞에

이번에는 전직 국가 원수가 죽음으로 항거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청와대에 들어가자마자 국가 기록물 건으로 전임자를 고발하고

그의 재임시 이룬 업적을 송두리째 솎아내는 일에 여념이 없는 대통령,

"노무현은 전두환보다 더 나쁘다"며 나팔수 역할에 충실했던 전 여당 원내대표,

 

"박연차의 돈은 똥인데, 똥을 먹은 노무현"이라고 펜대를 굴려대며 히히덕거리던 언론인,

"노무현은 자살을 하던지 감옥에 가야 한다"고 떠벌거리고 다니던 전직 교수,

"서거가 아닌 자살로 기사를 정정하라"고 개거품을 무는 한 얼빠진 수구세력의 하수인,

그들은 이제 그토록 증오하던 눈엣가시가 스스로 사라져 주었으니

얼마나 시원하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을까?

 

나는 다른 모든 것 떠나서 한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우리 사회의 그 살벌한 황량함과 잔인함에 분노를 느낀다.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은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았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은 임기 내내 기득권층에 맞서 싸우는 길을 걸은 반면,

현직 대통령은 기득권층의 등에 업혀 그들을 대변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그리고 전임자는 결국 기득권층의 집중 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으로 저항했다.

 

무조건 그분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상 그 누구라도 과오가 있다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방법과 절차는 넘어서는 안될 선을 꼭 지켜야 한다.

 

국민의 선택을 받아 명색이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에게

검찰은 아직 수사가 진행 중에 있는 이야기를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흘렸고

일부 언론은 이를 토대로 추리소설을 연재하며 이에 화답했다.

 

자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을 패대기 치고 질겅질겅 밟고 깔아 뭉개면서

희대의 파렴치범인양 가장 수모스럽고 치욕스런 방법으로 그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그 과정에서 그가 이제까지 평생을 살면서 자신의 목숨처럼 지켜왔던 도덕성은

이미 걸레조각처럼 뭉개질대로 뭉개지고 갈기갈기 찢겨졌다.

 

"농촌으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겠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곤 했던 그의 꿈 또한 그것으로 이미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의 가족은 연일 검찰에 불려다니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패한 일가족의 멍에를 뒤집어 썼다.

돌이켜 보면 그의 극단적인 선택은 마지막 남은 목숨과 맞바꾼 최후의 항거였는지 모른다.

 

낯선 타국에서 느닷없이 맞닥뜨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층의 토끼몰이식 사냥과 마녀재판식 횡포는

과연 언제쯤인가 사라지기는 할 것인지 우울하고 서글픈 심정 가눌 수가 없다.

 

항상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불굴의 투지,

빨갱이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통일을 향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곧은 소신,

소박하면서도 인간적인 따뜻함과 친화력으로 서민들에게 다가가려고 했던 다정한 인간미,

 

그가 생전에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준 숭고한 가치들은

비록 이제 몸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영원히 살아있으리라 굳게 믿으며,

고인의 영정 앞에 머리 조아려 명복을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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