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간지의 사람 사는 세상

바보 노무현,'부엉이 리더십으로 부활하다' [정균승 군산대 교수]

장백산-1 2009. 8. 7. 11:31

바보 노무현, '부엉이 리더십'으로 부활하다

정균승 2009-05-31 00:37:02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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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부리한 눈을 부릅 뜨고 어두운 밤을 지켜주던 부엉이 한 마리가

홀연히 몸을 날려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밤은 더 깊어가고 이제 새벽이 올 때까지

'부엉 부엉' 애잔하게 울던 부엉이를 사람들은 한없이 그리워 할 것이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 다르듯이,

노무현에 대한 평가 또한 저마다 다를 것이다.

이제 영영 우리 곁을 떠난 그를 추모하면서

그동안 가려져서 빛을 보지 못했던 그의 삶의 진실들을 더듬어보고 싶다.

 

그의 육신은 떠나고 없다.

그러나 그가 남긴 정신은 아직 이땅에 그대로 남아 있다.

아니 이제 그의 육신이 떠난 자리에서 막 새롭게 피어나고 있다.

 

인간 노무현의 삶과 정신에 대해 앞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다.

정치학자, 사회학자, 역사학자, 철학자들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쏟아낼 것이다.

그가 생전에 보여주었던 삶의 행적들은 '노무현 리더십'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 글은 그런 맥락에서 새벽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예고하는 아주 작은 외침이기도 하다.

 

나는 인간 노무현의 발자취를 8가지 리더십으로 간추려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가칭 '부엉이 리더십'이라는 명칭을 붙이기로 했다.

물론 동의하지 않거나 다른 생각들도 많으리라고 본다.

그러한 견해들과 함께 그의 삶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의 삶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함과 동시에 '미완성의 희망'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1. 원칙 중심의 리더십

 

일생을 통틀어 그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누구보다 힘든 환경에서 어렵게 공부하여 변호사로서 쉽고 편안하게 사는 길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정의가 사라지고 불의가 판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그의 성품은

인권 변호사를 맡으면서부터 스스로 가시밭길의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절대 권력의 공포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1980년대

당시 생방송으로 중계되던 5공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전두환을 향해

'전두환 살인마!'를 외치며 명패를 투척하던 순간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정권을 잡기 위해 원칙과 소신을 버리고 여야가 담합하여 3당 합당을 할 때는

'3당 야합'에 동조할 수 없다며 따뜻한 아랫목을 마다 하고 차가운 광야로 나갔다.

그리고는 지역주의 청산과 동서화합을 기치로 내걸고 떨어질 것이 볼보듯 뻔한 부산에 출마하여

연거푸 3차례 낙선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보고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은 오히려 자발적인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는 마력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노사모'는 이후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구심점의 역할을 해냈다.

 

2. 솔선수범의 리더십

 

그는 사람 사는 세상과 열린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항상 앞장 서서 솔선수범하는 실천인이었다.

집단보다는 개인을, 억압보다는 자율을, 통제보다는 개방을, 권위적 닫힘보다는 민주적 열림을 위해

시종일관 맨앞에 서서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의 거센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민주주의를 위해 화염병이 난무하는 길거리에 나서는 것을 마다 하지 않았고,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혈혈단신 불속으로 과감히 뛰어 들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마지막에는 최고권력자의 지위에서 평범한 농부의 삶으로 돌아가는 극적인 선택을 솔선수범하였다.

그런 그를 보고 사람들은 열광했지만, 그의 새로운 도전은 안타깝게도 미완의 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3. 섬김의 리더십

 

노무현 리더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섬김의 리더십이다.

주변 사람들을 섬기고 받들어 모시려는 그의 생각은 인권 변호사 시절부터 시작하여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권좌에 올라서도 변함없이 삶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는 '국민위 대통령'이 되는 것을 단호히 뿌리치고

'국민이 대통령'이고 '국민이 대한민국'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헌신했다.

권위와 허세와 가식을 벗어던지고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만나든

항상 허심탄회하고 친밀하게 다가가려고 했던 그의 정신은

무릎을 꿇고 막걸리 한 잔을 권하는 사진 속에서

이웃의 슬픔에 함께 눈물을 훔치는 한 장의 사진 속에서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는 섬김의 리더십(서번트 리더십)이 무엇인지 설명하기에 최고의 모델이 아닐까 한다.

 

4. 뚝심의 리더십

 

그는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자잘한 계산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향해 기꺼이 정면돌파를 시도하곤 했다.

당연히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수많은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특유의 소신과 뚝심으로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갔다.

 

꼼수나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흘러가기를 거부한 그의 선택이

나중에는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곧바로 진정한 노무현의 도도한 힘이 되었다.

불의에 맞서 정의가 승리함을 치열하게 보여 주었고,

기득권층과 주류 세력에 맞서 소외계층과 비주류가 승리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5. 감성의 리더십

 

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우리는 '노무현의 눈물'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것은 진정성이 듬뿍 배어 있었기에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그 솔직함의 표현은 그대로 노무현의 스토리텔링이 되어 투표장에 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그 진한 감동은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홍보물로 활용했던

욕쟁이 할머니네 감자탕집에서 소탈한 척 웃는 웃음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순수한 아마추어지만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애창곡인 '상록수'를 부르는 모습이나

봉하마을에서 손녀를 뒤에 태우고 자건거를 타는 모습, 아이처럼 풀 미끄럼을 타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수수하지만 진솔한 삶이 지니고 있는 강한 매력과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6. 탈권위의 리더십

 

그는 스스로 서민대통령이 되기를 열망했다.

그리고 실제로 서민의 눈높이에서 국정을 운영하려고 애썼다.

누구처럼 굳이 '이 사람 보통사람 노무현'이라고 애써 강조하고 다니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가 소탈하고 소박하며 솔직하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사람임을 잘 알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에 진학할 등록금이 없자

고구마 줄기를 팔아서 학자금을 마련하려고 하던 아버지의 아픈 가슴을 이해했기에

그는 권위주의와 체통과 체면이라는 무거운 가면을 훌훌 벗어버리고 서민에게 다가가려 했다.

 

노무현 뒤에는 호칭을 붙이는 것이 왠지 더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이름 자체에서 편안함과 사람 냄새가 풍기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탈권위적인 삶은 기득권층에게는 교양머리 없고 품격이 떨어지는 인간으로 내비쳤다.

고급스런 향수 냄새가 아니라 시골스런 풀냄새가 진동하는 그를 보고

스스로 고결하다고 우쭐대던 사람들은 '깜도 안 되는 형편없이 천박한 대통령'이라고 폄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7. 결단의 리더십

 

우리는 <초한지>에 나오는 항우의 이야기를 잘 기억하고 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항우는 치욕을 당하기 전에 자결로서 명예를 지켰다.

노무현 또한 고민은 길지만 결정은 신속하게 내리는 성품이었다.

 

검찰의 저인망식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평생 목숨처럼 여기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고 판단한 그는

'여러분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말로 이미 자신이 정신적으로 사망했음을 선언했다.

그리고는 구차한 삶을 사는 대신 육체적 삶의 끈마저 스스로 풀어버리고 자유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의 죽음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그답게 생을 마감했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8. 살신성인의 리더십

 

30년 넘게 서로 의지하며 공식적인 후원자였던 친구가

뇌종양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감이 되어 감옥에서 신음하는 신세가 되자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았다'며 괴로움을 견디지 못했다.

가족과 친인척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측근들이 줄줄이 감옥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생각하며 견딜 수 없는 모멸감과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그는 마지막 남은 목숨마저 초개처럼 버림으로써 그들을 살리려고 했다.

그 선택은 노무현이기에 가능했지 나같은 범부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살신성인의 정신은 자신을 버림으로써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게 만들었다.

또한 이기적인 삶을 포기하고 마지막까지 이타적인 삶을 살다 간 한 인간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남기고 간 귀중한 삶의 가치이자 교훈이기도 하다.

 

 

 

   

 

이상은 어디까지나 내가 자의적으로 붙여본 노무현 리더십의 한 모형이다. 

한 사람의 삶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매우 주제넘는 행동임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은 자꾸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비록 자연인으로서의 노무현은 이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정신은 한 마리 부엉이가 되어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그리고 캄캄한 밤에도 세상의 어둠을 밝혀주는 빛나는 별이 되었다.

그의 생전의 삶에 경외감과 함께 존경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