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기 법
1-11. 불교의 보시
『연기법의 사회적 실천』
연기법에 비추어 사회의 잘못된 미망이나 관습을 지적하고
그 오류를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대승의 승가가 실천할 일입니다.
중생 구제와 자기 수행을 분리하지 않는 대승의 관점에서는
인간을 왜곡하는 사회에 대한 연기법적 파사현정이야말로
중생 구제 속에서 자기 수행을 실현하는 합리적 방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당대의 가장 큰 화두는 전 지구적 경제 왜곡을 심화시키고
세상을 경쟁 일변도로 이끄는 자본주의의 병폐,
그 중에서도 특히 농업의 세계시장화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역의 농업시장을 개방하여 세계자본의 투기장이 되게 한다는 것은
지역의 경제계와 사회계를 초토화시키고
인간과 자연이 이루는 공생의 계界를 무너뜨리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닙니다.
농촌이 무너지면 도시는 물론 국가가 무너진다는 것은 연기법의 상식입니다.
국가란 다양한 지역의 자립 경제계에 기초하여야 하고
그러한 자립 경제계는 농업이나 어업과 같은 1차 산업들,
즉, 지역의 자연과 직결된 1차 산업들과 그 산업들이 이루는
지역적이며 자립적인 경제계들에 의존하는 것인데
그러한 자립 경제계를 모두 해체시키고 나면
국가의 근본을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국가를 자본 시장으로 오인하면 안 됩니다.
국가를 자본 시장으로 오인하면
경제적 자생체, 사회적 자생체라는 국가의 개념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 성장 중심의 강박관념들 속에는
국가란 다만 자본 시장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한 전락의 끝에는
약육강식의 이빨을 드러낸 인간과 물질, 쓰레기 더미들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본을 중심으로 한 경쟁 중심의 가치관이 횡행하는 시대에
조화와 공생의 연기법을 실천 공양하는 불교의 역할이란 막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조계종의 종정스님에게 제안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2004년 신년 법어法語로 농업시장 개방철회를 말씀해 달라는 것입니다.
2004년 쌀 시장 전면 개방에 대항하는 농민들에게 힘을 주고
이를 수수방관하는 도시민들을 각성시키는 법어의 말씀을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농업시장 개방철회의 법어는 단순히 농민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농업시장의 문제가 농민의 문제라고 치부하는 사람은
연기법을 모르는 그야말로 무지한 중생입니다.
인간과 자연을 잇는 농업이 황폐해지면 인간의 심성과 사회도덕의 황폐,
그리고 자립경제의 왜곡은 필연적 귀결입니다.
파산한 농촌의 사람들이 도시 빈민으로 몰리고
농촌과 도시를 잇는 지역적 경제계가 붕괴한다면
그러한 사회에서 심성이나 도덕, 조화로운 공생의 경제가 가능할리 만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농업시장 개방철회야말로 자본주의의 삿된 관념들에 대해
올바른 사회를 수호하려는 연기법의 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제자라면 불법을 수호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지역의 농업시장이라는 연기법을 수호하는 것이야말로 불법을 수호하는 것이며,
부처님을 예경하는 것이며,
자본에 침식된 인간을 살리는 것이며,
나아가 빈부격차와 자연 해체의 위협에 직면한 인류를 살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어만이 아니라 한국의 불교를 대표하는 종정스님으로서 정부에게 요구하여야 하며,
나아가 범 불교계에 농업시장 개방철회를 위해 궐기할 것을 요청하여야 합니다.
FTA이든 WTO이든, 농업시장의 개방은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선언하여야만 합니다.
불교계가 단합된 힘으로 요구한다면,
농업시장 개방철회는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무역 분쟁이 우려된다면 다른 부분들에서 양보해야 할 것입니다.
자동차 철강 반도체에서 양보하고,
다른 공산품의 수입시장을 더 많이 개방하는 한이 있더라도 농업은 지켜야만 합니다.
농업시장 개방과 그로 인한 농촌의 고사는 감당키 어려운 비용을 요구할 것입니다.
도시 빈민과 사회 범죄의 증가,
가치관의 상실, 자연 재해,
도시의 인프라 비용이나 환경비용,
복지비용의 증가, 실업자 증가 등등,
그 악영향을 열거하자면 자동차나 반도체 몇 개 더 팔아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공산품 시장은 경제적 손실에 끝나는 일이지만,
그러나 농업시장의 개방은 사회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농업시장 개방철회가 중요한 이유는,
자본 만능의 가치관을 척결하고 현대사회에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생하는 연기법의 세상,
불국토의 세상을 실현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시장에서 거래하지 말아야 할 것과 거래할 수 있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야말로
자본 만능의 병폐를 극복하고
인간과 자연을 자본 논리의 우위에 세우는 지혜라 할 것입니다.
농업시장 개방의 문제는 한국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 농민들의 문제입니다.
농업시장 개방의 문제는 정확히 전 세계의 농민과 초국적 자본 기업들의 대립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불교가 앞장서 농업시장 개방철회를 실현한다면,
이는 한국 불교의 세계적 승리라 할 수 있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 님의미소 / 김승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