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수명이 150세까지 연장될 것이라는 전망이 학계와 바이오업계에서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최근 충남 부여에서 '2010 다산콘퍼런스' 노화과학 부문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국내외 석학들은 세포 내 '노화시계'인 텔로미어(염색체 말단소체)부터 세포 면역에 중요하게 관여하는 '사이토카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논의를 주고받았다. 정인권 연세대 생물학과 교수는 "100년 전에 평균수명이 40세, 현재는 80세인 것을 감안했을 때 인간의 수명이 계속 선형(linear)으로 올라갈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며 "바이오산업의 발전 속도로 볼 때 유의미한 (수명) 증가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노화시계 '텔로미어'가 주변 유전자에도 영향 미쳐
텔로미어는 6개의 뉴클레오티드(AATCCC,TTAGGG 등/A:아데닌 G:구아닌 C:시토신 T:티민)가 수천번 반복 배열된 염색체의 끝단을 말한다. 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계속 짧아져 어느 시점에 가면 더 이상 짧아지지 않는다. 이를 '노화점'이라고 부르며 이때 세포분열이 멈춘다. 노화점에 이른 노화세포가 많이 존재하는 조직이나 기관(간 뇌 위 장 등)은 모양도 변하고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며 이것이 정상적인 노화 과정이다.
반면 암세포는 이 메커니즘과 달리 말단소체복원효소(텔로머라제)가 특이하게 발현되기 때문에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고 무한 분열한다. 즉 세포 노화와 암세포 발생은 정반대 과정인 셈이다. 엘리자베스 블랙번 미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UCSF) 교수 등 3명은 이를 밝힌 공로로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텔로머라제의 억제 방법이나 텔로미어의 연장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제리 샤이 미 텍사스웨스턴 메디컬센터 교수는 이번 콘퍼런스에서 텔로미어가 주변 세포의 활성화를 결정하는 '온-오프(on-off)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새롭게 공개했다.
즉 텔로미어 근처에 존재하는 특정 유전자는 텔로미어가 길 때 잠복기에 있다가 짧아질 때만 발현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샤이 교수의 가정에 입각해 최근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발병과 텔로미어의 길이 변형 간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화와 암의 경계선 '사이토카인'
세포 면역 및 세포 간 신호 전달에 중요하게 관여하는 단백질이자 세포 분비물인 '사이토카인'도 노화와 암 발생에 밀접하게 관여한다.
주디 캄피시 미 버크노화연구소 교수는 세포가 늙어가면서 사이토카인류 분비물이 많아지고,이에 따라 노화가 가속화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암 발생을 촉진한다는 'SASP(senescene associated secretory phenotype)' 이론을 선보였다.
지난해 네이처에 관련 논문을 게재한 그는 이번 콘퍼런스에서 세포 노화에 따른 다양한 사이토카인의 분비와 이에 대한 역할을 더 심화해 발표했다. 어떤 세포가 돌연변이를 할 때 노화된 세포와 인접해 있으면 해당 세포가 노화된 세포의 사이토카인 영향을 받아 암세포로 바뀔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임인경 아주대 의대 교수는 "상처가 났을 때 빨갛게 되고 붓는 병리학적 염증반응이나,세포 돌연변이 이후 많이 분비되는 사이토카인으로 인한 염증반응도 아닌 노화와 암의 경계선상에서 사이토카인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제3의 염증반응'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얀 비지 미 알버트아인슈타인의대 교수는 논문 발표를 준비 중인 '싱글 셀 게놈 시퀀싱(single cell genome sequencing)' 기술을 소개했다. 건강하던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질병에 걸리는 이유는 세포가 노화하면서 각종 염기서열의 돌연변이(mutation)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했을 때와 병에 걸린 후 염기서열을 비교하면 어느 부분이 잘못돼 병이 생긴 것인지 이론적으로 알 수 있지만 현재 의학 수준으로는 아직 역부족이다. '게놈프로젝트'도 인체 염기서열 전반을 규명했을 뿐 특정 세포의 염기서열까지 파헤치지는 못했다.
비지 교수가 개발한 싱글셀 게놈시퀀싱은 노화세포 혹은 암세포 한 개에 대한 게놈 배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술이다. 간 위 대장 췌장 등에 암이 생기거나 당뇨 심혈관계 등에 문제가 생겼다면 세포 하나를 떼어내 어떤 돌연변이가 생겼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상철 서울대의대 교수는 "싱글셀 게놈 시퀀싱은 앞으로 질병 원인 진단에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텔로미어
염색체 끝단에 모자처럼 붙어 있는 조직으로 6개의 뉴클레오티드(AATCCC,TTAGGG 등/A:아데닌 G:구아닌 C:시토신 T:티민)가 수천번 반복 배열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세포가 분열되는 동안 세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게 막는 완충지역이라 볼 수 있다. 세포 분열 시 짧아지지만 '텔로머라제'라는 역전사효소에 의해 적절히 보충되며,노화 시기에 대한 결정적 정보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