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와 전체
個體之樣 개체의 모양은
球中一點 원구 속의 한 점과 같고
全體之象 전체의 모양은
全球一點 구 전체가 한 점이로다.
존재의 점은 곧 태극이요 생生의 발원처發源處이다.
이 점이 시공간時空間상에 찍히는 순간 생명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생성生成을 하게 된다. 이 존재의 점은 시공간時空間상에서 옮기고 또 옮겨도 늘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고, 늘 현재에만 찍혀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백년을 산다 해도 존재의 점은 늘 현재에 머물게 되며 그 자리는 언제나 <그림 2>에서처럼 우주의 중심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은 항상 현재이며 어느 곳으로 옮겨도 항상 중심에 있다.)
이 실존의 점을 안다면 누구든지 자신이 얼마만큼 소중한 사람인지 인식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실존의 점이 중심에 있다는 것만을 강조한다면 모두가 개인 이기주의로 나갈 경우 막을 방도가 없다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염려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실존의 점은 곧 소아小我로 보면 소아小我이지만 사실은 대아大我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먼저 ‘나’와 ‘우주’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나’라는 존재가 있을 때는 ‘우주’가 있지만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우주’도 없다. ‘우주’를 원구라 할 때 이 원구에 ‘나’라는 실존의 점이 찍히지 않았다면 이 원구는 ‘나’에게 없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원구상에 찍혀 있는 점은 우주의 크기와 같은 크기의 점으로 찍혀 있는 것이다. <그림 3>에서 보듯이 오직 이 점이 우주 가득히 찍혀 있어서 원구 전체가 바로 이 점인 것이다.
(원구상에 찍혀있는 점은 사실은 원구자체에 가득한 점이다.)
그러므로 “나는 한 점이자 우주이다.”는 개념이 성립된다.
나는 곧 작은 점으로 찍혀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우주와 같은 크기로 찍혀 있는 점인 것이다. 그러므로 소아小我는 곧 대아大我이며, ‘나’는 곧 ‘전체’가 됨을 알 수 있다. 소아小我적인 면에서의 ‘나’는 우주의 중심中心에 찍혀 있는 점이지만, 대아大我적인 면에서는 우주가 전부 ‘나’인 것이다. 모두가 ‘나’이기 때문에 싸울 필요가 없고 탐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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