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魄), 마음(魂)과 의식(靈)
인간의 구성을 보면
물질적인 부분이 육체(魄)이며,
정신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 의식(靈)이다.
힌두교에서 아트만(Atman)이라 칭하기도 한다 .
그리고 양자의 부분적인 성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魂)이다.
육체(魄)는 인간의 물질적 기능을 담당하며
감각기관을 통하여 외부 물질적 세계와 교류 및 연결을 주도한다.
한편 의식(靈)은 인간의 원천적 생명력이며 본성(本性)이다.
그리고 의식은 우주의식(하느님)과 교류하고(靈交)
다른 영적 세계와도 직관(靈的感覺)을 통해 교류한다.
마음(魂)은 육체와 의식을 연결시키고
사고(思考), 지성(知性), 감정(感情), 의지(意志) 등과 같은
정신활동에 관여한다.
외부세계의 자극이 육체의 감각기관을 통해 신경계에 전해지고
중추신경(뇌)의 전위(電位)의 변화를 통해 발생된 전자파가
마음 에너지 층을 자극하여 기억의 재생, 사고, 판단, 결정 등의
마음의 활동을 유발시킨다. 이 마음의 작용은
그 층에서 끝날 수도 있으나 일반적인 경우 의식에까지 전달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인식하는 내용들은
사실상 대상의 참 모습이 될 수 없다.
육체와 마음이라는 중간 통로를 거치는 동안
정보가 변질되기 때문이다.
섬세하지 못한 육체의 기능은
개체에 따라 그 섬세성에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한 개체에서도 그때그때의 상태에 따라 수시로 변화된다.
또한 마음의 층에서는 경험을 통해 기억된 정보를 기준으로
새로 들어온 정보를 판단한다.
그러나 개인마다 경험이 다르고, 한 개인이라 하더라도
이전 경험 당시의 환경이나 육체 및 마음의 상태가
현재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동일한 사물에 대한 정보일지라도 똑같은 정보가 될 수 없다.
한편 마음의 활동은 외부의 자극 없이도 가능하다.
내적인 어떤 요인에 의해 사고(思考)가 일어나고
그것이 시발이 되어 마음의 모든 작용들이 활성화되기도 한다.
이 내적 요인 중 어떤 것은 의식(靈)의 작용에 의한 것인 수도 있다.
생명의 원천이 되는 의식(靈)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는 과학적인 방법으론 아직까지 알 수 없는 일이나
여러 종교들에서는 그 원천을
하느님, 브라흐마(Brahma), 공(空), 도(道), 신(神) 등으로 부른다.
또는 우주의식(宇宙意識)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앞으로 여기에서는 우주의식이란 표현으로 그 원천을 대신하기로 한다.
우주의식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본질이라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이 그곳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만유(萬有)의 본질은 우주의식 그 자체이므로
우주의식이 그것들을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마치 눈이 그 눈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또한 인체의 면역체계가 이물질이 들어오면 그것을 인식하나
인체와 동질의 물질이 들어오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나는 나를 알 수 없다. 인식을 위해선 차이가 필요하나
나는 나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우주의식도 자기 자신인 만유(萬有)를
인식할 수 없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은 우주의식에서 분리된 의식이다.
더구나 그 의식은 육체와 마음이라는 두꺼운 장애물로
우주의식이나 다른 사물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이 장애물(육체, 마음)이 제거된다면
모든 것이 하나로 인식되거나 자기 자신으로 느껴지고,
더욱더 정화되면 우주의식과 하나가 되어 인식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각성상태, 깨달은 자의 경지, 열반에든 경지가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붓다와 같은 육체를 지닌 각자(覺者)는 각성된 의식의 능력으로
마음을 자유자재로 지배할 수 있는 경지이다.
각자(覺者)가 무심(無心,중생심이 없는 상태)상태에서 죽음을 맡게 되면
의식(靈)만이 육체에서 탈출하게 되므로 순수한 의식이 된다.
이 순수한 의식은 우주의식과 동질이어서
그대로 우주의식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주의식과 합일(合一)된 상태를 열반(nirvana)이라 한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깨달음에도 여러 차원이 있을 것 같다.
그중 열반상태가 최상이며 마지막 차원 일 것이다.
의식이 아직 인식자로 남아 있으면서 사물의 진면목을
있는 그대로 여여(如如)하게 볼 수 있는 정도의 깨달음,
비이중성(非二重性)을 성취하여
만유가 하나이며 나 역시 그들과 하나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 단계,
인식자(認識者)마저 사라져 존재성(存在性)만이 남게 된 단계,
더 나아가 존재성(存在性)마저 사라지고 비존재성(非存在性)을
성취한 단계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의식이 육체나 마음의 경로를 거치지 않고
외부의 자극(사물)을 직접 받아들여 의식자체의 에너지 변화를 통해
인식할 때 사물을 여여(如如)하게 볼 수 있는 것이고,
이 여여(如如)한 사물을 통해 모든 사물의 진면목(眞面目)이
다 같다는 것을 이해하면 비이중성을 성취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의식이 우주의식과 합일(合一)상태가 되면,
만유(萬有)의 본질이 우주의식과 하나이기 때문에
인식의 대상이 없어져 아무 것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즉 공(空)으로 느끼게 된다. 이런 상태가 공(空)이다.
이때는 이론상으론 인식자(우주의식)만 있고
인식의 대상은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존재성만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인식자가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대상이 없을 때는 자신의 존재성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사실상 존재성만 남은 상태는
비존재성의 상태와 같을 것이다.
이 상태가 열반(涅槃, nirvana)이다.
그렇다면 윤회하는 영혼(靈魂)과
열반에 들 수 있는 영(靈)의 차이는 무엇일까?
두 경우 다 이미 육체를 벗어난 상태이므로
육체적 간섭은 생각할 수 없다.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할 때 물질적인 부분은 그대로 남고
비물질적인 부분만이 육체에서 이탈된다.
의식(靈)과 마음(魂)은 비 물질인 에너지일 것이다.
그래서 이 두 부분만 육체에서 이탈하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영혼(靈魂)이라 부르고 있다.
깨달은 자는 무심상태(각성상태)에서 죽기 때문에 의식만 이탈되고,
범인(凡人)은 의식과 마음이 함께 이탈하게 된다.
그래서 엄밀하게 표현하면 각자(覺者)의 사후 영혼은 영(靈)이라 하고,
범인(凡人)의 것만 영혼(靈魂)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각자(覺者)의 영은 순수한 의식(意識)이어서
본래의 우주의식과 동질이므로 그대로 우주의식에 융합되어 버린다.
그러나 범인(凡人)의 영혼은
의식 에너지가 마음 에너지로 오염된 상태이므로
우주의식과 동질일 수 없어 우주의식과의 융합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여건이 갖추어 지면 다시 육체에 깃들게 된다.
우리는 전자(前者)를 열반(涅槃)에 든다고 하고
후자(后者)를 윤회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분리된 의식(意識)인 우리 인간이
왔던 곳인 우주의식(宇宙意識)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열반에 드는 것이다.
윤회의 목적이 영적진화, 즉 순수한 의식(靈)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삶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석헌/허경용 -
출처 : 마음공부와 자기계발을 넘어서
글쓴이 : 석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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