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총대선에서 2% 진다 | ||||||||||||||||||||||||
-모든 것을 걸고 진보 혁신 운동을 하고 싶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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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시조는 조선 초에 제주도에 귀향을 가서 뿌리를 내렸기에 제주도에 몇 만 명의 김해김씨 좌정승공파가 있다고 한다. 入島祖로부터 21대인 아버지가 청년 시절에 홀로 육지(경남 사천)로 나와서 가족을 이뤘기에 대부분의 친척들은 제주도에 있다. 오래된 집안인 만큼 제주 4.3의 상처가 깊다. 入島祖로부터 11대 할아버지의 자손들을 모신 800평 넘는, 한라산 중턱의 가족 묘지에는 자손들의 계보와 이름을 박아 넣은 큰 돌비석이 있는데, 아버지 대(洙자 돌림)의 1/3 이상은 4.3으로 인해 일본으로 밀항 한 후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그 때문에 연좌제를 우려한 아버지는 내가 중학생 시절부터 무조건 이과를 가라고 종용했다.
제주 4.3 당시 유격대 총사령관이었던 이덕구씨 집이다. 신촌초등학교와 조천중학교를 나온 아버지(1936년생)는 어릴 때 곰보 선생 이덕구를 기억한다. "박박 얽은 그 얼굴 / 덕구 덕구 이덕구 / 장래 대장가심(감)"이라는 노래도 기억한다. 자료를 보니 이덕구는 1920년 조천읍에서 태어나 1943년 일본 입명관대학 경제학과 4학년 재학 중 학병으로 관동군에 입대했고, 1945년 귀향하여 1946년 조천중학원에서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다. 1947년 '3.1절 28주년 기념 제주도대회' 시위와 관련하여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뒤 한라산으로 입산해 4.3 발발 직후 인민유격대의 '3.1지대장'을 맡았다. 48년 7~8월 남로당 제주도당 군사부장이자 인민유격대 사령관 김달삼이 8월 21일 해주에서 열리는 인민대표자회의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모든 직책을 넘겨주고 도피성 탈출을 한 이후 그가 인민유격대 총사령관으로 되어 투쟁을 이끌었다. 그러다가 1949년 6월7일 사살되었다. 그 이튿날 제주 관덕정 광장에 이덕구의 시신은 십자형 틀에 묶여 전시됐다. 때에 절은 군 작업복에 고무신을 신고 윗도리 주머니에는 수저가 꽂혀 있었고, 입가에는 피를 흘리고 머리는 헝클어진 처참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형틀 옆에는 '이덕구의 말로를 보라'는 글귀가 씌어진 종이가 붙어 있었고, 그의 가슴에는 "이자는 공비의 수괴 이덕구로서 대한민국 국시를 범한 반역자이다"라는 포고가 걸려있었다고 한다. 이 처참한 장면은 학생들을 불러 견학을 시켰는지 아버지도 보았다고 한다.
건너간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도 오사카에는 제주 출신 교민들이 주류라고 한다. 우리 가족묘 비석에 이름이 올라가있는 분들 중에도 오사카에 거류민이 몇 분 계시다. 어쨌든 1945년 2차 대전 종전 후 전 세계가 다 그랬지만, 동아시아는 소련, 중국, 일본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혁명주의(인민민주주의)물결이 넘실거렸다. 소련의 승전,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의 승리, 일본 사회당의 정치적 득세(1947~48년 사이 잠깐 집권), 전투적 노동조합 운동의 활성화, 한반도 38선 이북의 적화 등은 그 징표다. 당연히 해방 직후 해외에서 귀국한 사람들은 대체로 무산자이기도 했고, 견문이 넓어서 대부분이 사회주의 성향이었다. 그래서 미군정 보고서에는 주민의 80%가 좌익으로 분류되었다 한다. 정말 제주도 차원에서 보면 좌파의 압도적 우위였다. 민주와 진보의 아성이 될 수가 있었다. 20대의 김달삼은 이런 정치 지형을 믿고, 또 1947년 3.1절 사건 이후 분노한 제주도 민심을 등에 업고, 또 제주도를 무슨 중국 혁명 신화의 시작인 정강산(1927년)으로 만들려고 했는지 무리한 폭동을 일으켰다. 이승만과 장택상도 제주도가 좌파의 아성으로 간주하고 무차별적인 학살 작전을 펼쳤다.
그런데 진보의 유력 정치인들은 무슨 제품 포장지 갈듯이 공약을 갈고 버린 이력이 있기에 획기적인 증세를 전면에 내건다고 해도 대중들의 신뢰는 그리 강하게 형성되지는 않을 것 같다. 지역 균형발전은 세종시 문제에서 보듯 박근혜가 오히려 비교우위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세종시 문제 등으로 인해 노무현만이 가졌던 원칙과 신뢰라는 브랜드를 박근혜는 얻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반면에 진보가 너무 무시하는 기강과 질서는 박근혜가 확실히 비교 우위가 있는 가치들이다. 게다가 박근혜는 시장, 경쟁(소비자 선택권), 개방, 경제 활력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야권 연대를 통해 1:1 구도에 집착하는 민주당은 시장, 경쟁, 개방 등을 신자유주의적 가치로 간주하여 백안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공천 혁명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총선시의 야권 연대도 김해을 선거처럼 감동과 기대는커녕, 실망과 환멸만 증폭 시킬 가능성이 크다. 결국 위기에 몰린 진보는 자신이 탄압을 받았던 연좌제를 박근혜에게 들이밀지도 모르겠다. 물론 박근혜가 아버지의 후광에 크게 힘을 입은 만큼, 박정희에게 묻어 있는 피 냄새, 독재 냄새 등을 지적 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하지만 너무 과도하면 역풍이 불지 않을 리 있겠는가? 아버지는 아버지고, 딸은 딸이라는 말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렇기에 권력의 성격이 정말로 중요해 진다. 바로 이 권력에 진보신당이 비판해 마지않는 민노당 식의 철학, 가치, 정책이 들어오면 엄청난 위협을 느낄 사람들이 있다. 이는 보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swing voter에도 있다.
추구하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기형성 때문이다. 민노당의 북한과 미국에 대한 태도는 접어두자. 최근에 오랫동안 심사숙고해서 내 놓은 대표 신상품인 최저임금 대폭 인상(평균임금의 50%)과 그 외 전통 상품인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엄격한 규제, 노동 유연성에 대한 극심한 거부감(한번 고용된 사람은 다 정년 보장 하라), 개방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태도, 공공부문의 모순부조리에 대한 지나친 관대함 등은 철저히 (노동의 양, 질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누리는) 힘(교섭력) 좋고 운(수입성) 좋은 노동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뿐이다.
결정적으로는 고용률(경제활동참가율)이 북유럽에 비해 대략 10~15%p 낮다. 노동내 격차도 세계 최악이다. 노동내 격차는 대체로 기업, 산업간 수익성의 격차이자, 교섭력의 격차이다.
바로 그렇기에 연대임금 개념 수용 없이 평균임금 50%를 최저 기준으로 삼으려는 민노당 노선은 수많은 한계선상에서 헤매는 중소기업을 대량 학살하는 노선으로, 고용률이나 경제활동 참가율을 현저히 떨어뜨리게 되어 있다.
한국처럼 최저임금이나 중위임금에 비해 평균임금이 현저히 높은 나라는 평균임금 50%를 최저기준으로 삼게 되면 수백만 임금근로자들을 자영업자나 실업자나 비경제활동인구로 내 몰 가능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요컨대 민주당이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이런 경향성을 추종하게 되면, 2MB에 대해 환멸을 느껴 웬만하면 진보에게 표를 주려는 벤처중소기업들로 하여금 울며 겨자 먹기로 한나라당을 지지하게 만들 공산이 크다.
한 진보는 총대선에서 진다. 총대선과 4.27 보선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한나라당은-분당이 되지 않는 한- 지지율에 관한 한 덧셈 할 것만 남았고, 민주당과 야권은 뺄셈 할 것이 너무 많이 남았다.
특히 한나라당과 1:1 구도 형성을 위해 민노당과 정책 공조가 필수고, 따라서 민노당의 노선(한-EU FTA 반대와 노조법 전면개정 등)을 적극 지지 옹호해 줘야 한다면, 이는 4.27 재보선에서 참여당이 야권 단일후보 쟁취를 위해 모든 소중한 것을 날려 버린 것과 다를 바 없다. 민주당의 행보는 swing voter 입장에서는 투표하러 갈 이유도, 지지할 이유도 날려 버리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한나라당을 지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꺾지 않으면 진보는 패배를 향해 달리는 열차를 탄 것이나 다름없다. 야권연대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르지만 존중하고 협력하는 和而不同의 연대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야권 전체의 파이(지지율)를 줄이는 무리한 정책적 공조 혹은 정책적 견인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중도에서 좌, 우로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10% 이길 것을 2%로 지면 2%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20%가 부족한 것이다. 철없는 진보는 잘도 연대하고 힘차게 활동도 하지만, 철든 진보는 초야에 묻혀 소오강호(笑傲江湖)나 하는지 조소(嘲笑)강호나 하는 것 같다. 정말로 답답하고 한심한 놈들이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나름대로 줄기차게 해 온 진보 혁신 운동을 진짜로 해 보고 싶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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