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6-26 21:32:23ㅣ수정 : 2011-06-26 21:32:24
민선 5기 자치단체장이 취임한 지 꼭 1년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와 겹쳐 실시됐던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노무현의 사람들’은 제도권 복귀를 화려하게 알렸다. ‘리틀 노무현’으로 불렸던 김두관은 야권 단일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경남도지사 선거에 당선, 한나라당의 바다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김 지사는 지난 1년간 경남 도정을 이끌며 노무현 정신을 현실정치에 접목하느라 영일 없는 나날을 보냈다.
열아홉 번째 대화에서 이상돈 중앙대 교수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김두관 경남도지사를 만났다. 김 지사는 “불리하더라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것이 노무현의 가치”라며 “원칙과 상식을 지켜 땀을 흘리면 내 것이 보장되는 사회, 이것이 바로 김두관이 꿈꾸는 나라”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김 지사에게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말라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진정성과 포용성을 갖춘 정치인을 시대가 요구한다고 말했다. 대화는 지난 23일 경향신문사 인터뷰실에서 진행됐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 경남도정을 책임진 지 1년이 됐다. 행자부 장관을 지낸 바 있어 소회가 남다를 것
김두관 경남도지사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 이상돈 중앙대 교수(왼쪽부터)가 지난 23일 서울 경희궁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김정근 기자
김두관 경남도지사(이하 김두관)= 그동안 경남도정은 시민사회·야당과의 소통창구가 없었다. 나와 후보경선에서 경쟁했던 민노당 강병기 후보를 정무부지사에 임명하고 민주도정협의회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소외됐던 야3당과 시민사회를 도정의 주요 주체로 등장시켰다. 또 어르신 틀니 보급사업을 펼치고 보호자 없는 병원을 열었다. 지역신문발전조례를 만들어 경남에 있는 일간지와 인터넷지역신문을 지원하는 일도 했다. ‘모자이크 프로젝트’로 18개 시·군에 200억원씩 지원해 지역발전사업을 도왔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매우 잘했다는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열심히 하려고 한다는, 소외계층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평가는 조심스럽게 해준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이하 이상돈)= 지난선거 때 4대강 사업 반대를 내걸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 혹시 정경유착 같은 의심은 하고 있지 않은가. 4대강 사업은 국가사업이기 때문에 도지사 권한으로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김두관= 민주주의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4대강 사업은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적인 부분을 많이 생략했다. 함안 일부 지역에선 준설 때문에 모내기가 늦는 일도 있었다. 많은 국민들이 섭섭해한 것은 많은 재원을 토목사업에 투자했다는 점이다. 서민들 살기가 정말 힘든데 더 많은 자원을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IT(정보기술) 같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투자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청계천 때문에 잘못된 생각을 한 것 같다. 4대강 사업은 주로 대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가서 여러 가지 말이 있는 것 같다.
▲ 이상돈 - 최근 검찰·경찰 대립 자치경찰제 도입 등 이제 실시할 때 됐다
이상돈= 얼마 전 구미 단수사고로 구미시민들이 큰 고생을 했다. 비슷한 일이 경남 관내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나.
김두관= 경남 서부·중동부는 남강에서 상수원을 공급하고 동부 경남과 부산·울산은 낙동강에서 취수한다. 낙동강 하류 지역이 한꺼번에 쓰레기가 몰리고 대규모 준설로 탁도가 높아지는 등 걱정돼 감시는 계속하고 있다.
김호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2년이 지났다. ‘리틀 노무현’으로 불릴 정도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노무현적 가치’의 요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두관= 대통령께서는 ‘사람 사는 세상’ 곧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했다. 다른 말로 하면 원칙과 상식이다. 불리하더라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원칙과 상식을 지키려고 한 것이 노무현 정치의 가치다.
김호기= 노 전 대통령과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김두관= 한번은 남해군수 시절 해양수산부 장관 자리에 있던 대통령께 100억원 규모의 사업을 요청하러 갔다. 당시 내가 군수를 하면서 기자실을 폐쇄하고 브리핑룸을 만들어 언론과 강하게 부딪쳤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노 전 대통령이 ‘군수는 어떻게 싸웠습니까’라고 묻기에 ‘제가 좀 무식하게 싸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대통령이 ‘저는 욕심이 있어서, 꿈이 있어서 김 군수와 같이 그렇게는 못 싸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셨던 분이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청와대 브리핑룸을 만들었다. 또 한번은 행자부 장관 때 노 대통령이 국정원과 거리를 두고 보고를 안 받으시는 걸 보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상당한 정보비를 쓰고 잘 훈련된 고급인력이니까 국정원 보고를 받고 국정운영에 참고하시라고 했더니 화를 내셨다. ‘국정원 보고에 재미를 붙이는 순간 역사가 우리 참여정부를 다르게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일침을 가하셨다.
이상돈= 최근 경찰과 검찰이 크게 대립했는데 김 지사는 아무래도 경찰 쪽 주장에 공감하지 않나. 우리도 이제는 자치경찰제를 실시하고 지방경찰청장은 직선이나 도지사 러닝메이트로 뽑을 때가 되었다고 보는데.
김두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과도한 권한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법성을 결여하기 때문이다. 자치경찰제를 실시하고 지방경찰청장을 직선 같은 민주절차로 선출하는 게 옳다고 본다. 경찰이 사실상 수사를 많이 하고 있으니, 경찰의 수사권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지금 검찰이 중앙정보부나 보안사령부보다 힘이 더 있으면 있지 없다고 보기 힘들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도 검찰한테 과도한 권력이 가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상돈= 경남도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기업편의 위주의 산업단지를 확충하고 주식상장 지원센터까지 운영한다. 경남도 ‘녹색성장 지향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란 말이 나올 법하다.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녹색성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두관= 일조량이 많은 경남은 태양에너지 개발에 조건이 좋다. 풍력에너지 사업은 조선사업과 연동돼 있어 풍력부품 회사만 해도 10개 정도 된다. 태양광과 풍력을 신재생에너지 사업으로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같은 녹색성장이지만 4대강 사업에 대한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대통령과는 다른 부분도 적지 않다. 경남도는 기업친화보다는 시장친화를 지향한다.
▲ 김호기 - 진정성 ·포용성 없는 정치가들 때문에 국민들이 정치 혐오
김호기= 최근 우리 정치지형이 내년 총선·대선과 맞물려 크게 요동치고 있다. 지난번 총선·대선에서는 진보개혁세력의 ‘호남 고립현상’이 나타났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보수세력의 ‘TK(대구·경북) 고립현상’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있다. TK 고립현상에는 PK(부산·경남)지역의 민심향방이 캐스팅보드를 쥔다. 최근 영남권의 정치적 흐름이 어떤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은데.
김두관= 내년 선거에서 부산·경남·울산의 41석 가운데 15석을 비한나라당이 획득하면 전국적으로 야권이 다수당이 될 수 있다. 4월 재·보궐선거에서도 김해에서 김태호 전 지사가 이기긴 했지만 울산 중구에서 임동호 민주당 후보가 40%가 넘는 지지를 받았다. 지금 영남은 한나라당 지지층이 많이 금이 가 있는 상태다. 문재인 이사장이 워낙 진중한 삶을 살아온 분이라 부산·경남에서 특히 신망이 두텁다. 문 이사장이 민주진영의 승리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준다면 더더욱 기대해 볼만 하지 않겠나.
김호기= 지사직 중도 사퇴는 없다고 이미 밝혔지만 유력한 차차기 대선후보로 꼽히고 있다. 최근 우리 정치의 최대 문제는 국민들이 미래의 꿈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김 지사가 꿈꾸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김두관= 편한 말로 하면, 지방 사람이라고 차별받지 않는 나라, 덜 배우고 덜 가졌다고 해서 차별받지 않는 나라다. 옛날 농민운동할 때 많이 했던 말인데, 땀을 흘리면 내 것이 보장되는 사회, 오천만 우리 국민들이 더불어 즐겁게 잘 사는 사회가 나는 좋다. 이런 게 김두관이 꿈꾸는 나라다. 물론 갈등이 많은 사회라서 적을 안 만들고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든다.
이상돈= 적이라는 말을 했는데 노 전 대통령도 그러한 과정에서 만들 필요도 없는 적을 너무 많이 만들지 않았나.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김호기= 우리 정치에 많은 국민들이 염증을 내고 불신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정치가에게 요구되는 기본 덕목인 진정성과 포용성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김 지사는 진정성과 포용성을 갖춘 진보개혁의 정치리더 중 한 사람으로 보이는데.
김두관= 내 입장에선 선거에서 나를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335만 도민들 모두가 섬김의 대상이다. 당연히 이쪽저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야 한다. 경남에 기업가들이 많은데 처음엔 나에 대해 오해를 많이 했다. 상공회의소 회장과 경총 회장이 좌파딱지를 붙이고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 곳에 가서 도정 설명도 자주 하고 협의하다 보니까 요즘에는 합리적인 친구라고 인정해준다.
김호기= 어떤 도정을 펼칠 계획인가.
김두관= 공무원들이 ‘국가의 녹을 먹는다’는 표현을 쓴다. 국가가 국민의 세금을 보관하고 있다가 월급을 주는 것이니 ‘국민의 녹을 먹는다’가 맞는 표현이다. 경남도청이 경남에서야 배타적 지위를 갖고 있지만 경북도청, 전남도청과는 경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공무원들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구석구석 손길이 닿을 수 있는 도정을 펼쳐왔고 또 펼치고 싶다. 덧붙여 중앙정부는 지방에 넘길 건 화끈하게 넘겨주고 이제는 정말 세계와 경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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