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사랑하는 그 마음 / 청담스님

장백산-1 2011. 9. 16. 11:05

사랑하는 그 마음 / 청담스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점령이다.

남의 생명의 자유라는 것은 손끝만큼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곧 도둑이다.

세속의 사랑은 어디까지 자기본위, 자기중심이다.

 

 

남녀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장가가는 것도 자기 욕심 채우려는 것이지, 처녀 욕심  채워주려고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첫날 저녁부터 싸우고 일평생을 싸운다. 서로 제 욕심만 채우려고 하니 

아이들 여러 명 낳고 살아봐도  개성이 안 맞고 욕심에 안 맞아서 싸우게 된다.

속칭 그것이 사랑이다.

 

 

자비를 가진 남자라면 장가를 가더라도 남이 데려가지 않는  아주 못생긴 처녀를 하나 얻어다가

호강시켜 줘야겠다. 하루 백만원을  벌어서라도 다 맡기고, 잘살든지 못 살든지 저 여자 뜻대로

하게 해야겠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언제나 상대를 존중하고 위해 주는 생활을  할 것이다.

 

 

이렇게 상대편 본위로만 하고  자기는 조금도 내세우지 않는  남편 앞에서는 아무리 악녀라도

보살이 된다.  그렇게하면 그 여자 마음엔 그 남자뿐이고, 우리 남편이  제일이라는 생각만이

있을 것이다. 남편이  보살로 보이고 부처로 보인다.  그러면 서로 보살이 된다.

 

 

중생들은 언제난 조건부로 상대편을 사랑해 주려 하니, 상대도 네가 하는 것만큼 사랑해주겠다 

그러는 것이다. 네가 나한데 부족하게 해준  만큼 나도 섭섭하게 해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내외간에 날마다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나쁜 심리로 남을 점령하는  것이고 남을 구속 하려는 것이다.

 

 

반대로 자비는 남을 해방하려는 마음이고,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박애라고 하는  것도 절대의 사랑이 못되고 자기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하고 만나면 내외간이나 부자간에도 서로 38선이 생긴다.

자기를 전혀  잊어버린 사랑, 어떤 한계를  두지 않는 사랑, 그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외간에는 사람은 둘이지만 촌수는 없다.

그러니 두 사람이면서 하나이고 서로  피를 섞어 가지고 아들딸  자꾸만 낳으니

촌수를 댈 수 없이 완전히 하나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이에  어질고 얌전한 부인을 속이고

다른 곳에 여자가 있으면 이것은 이세상을, 아니  이 우주를 배신한 것과 같은 죄가  생긴다.

훌륭하고 착한 남편을 내버려두고 아무도  모르게 다른 남자와 친하고 있다면 이 역시 이세상을

배신한 것과 같은 죄가 생긴다.

 

 

부부간의 배신은 죄 중의 제일  큰 죄다.

재산 많고 지의 높은 것도 관계없이 인덕 없는 사람이  있다.

내가 먹여 살려주고 낸 신세를  가장 많이 진 부하들까지도 나를 욕한다.

이 사람은 전생에 부부간에  배신을 많이 한 때문이다.

 

 

남편이  바람피우고 하니 첫날  저녁부터 생과부가 되어 

자기도 일생 동안을  지내는 사람이라도 남편을  나쁘다고 하지 말라.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남편을 따라주어야  한다.

밤에는 남편이 가는 대로 등불  들고 바래다주고 몇 십만원씩이라도 갖다 주면서 

우리 남편 비위 좀 잘 맞추어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한다. 우리  주인은 내 힘 가지고는

위안이 안되니, 당신이 좀 해주면 내가 그 은혜를 갚겠다고 정성으로 부탁하면서

알지도 못하게 가만히 놓아두고 오라.

 

 

이것은 변태적인 자학생활이거나  히피족들의 경우에서와 같은 막살이  식으로 그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나  진심으로 하는 참회생활이고 진심으로  남편을 행복하게 하려는

사랑으로 하는 생활이다. 남편이  첩을 얻었을 때, 여자는 흔히 저주를  한다.

(두 사람이 꼭 껴안고 누웠을 때 불이나 나서 타 죽었으면......)

만일 여자가 이러한 악담을 하였다면 복을 받겠는가?

 

 

전생에  제가 나빠 가지고 남편이 그렇게 하는 줄은 모르고,

다시 산 사람 둘이나 불에 타  죽게 하는 죄를 지었으니 이런 여자는 죽어서 

틀림없이 지옥에 갈 것이다. 낮이고 밤이고  24시간을 사람이 타 죽는 생각만 할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질투의 불길이고 성내는 마음이고 어리석은 중생의  인과생활이기 때문에

죄악의 연속이 될 뿐이다.

적어도 불자라면  이런 죄악의 불구덩이로 빠져들어가서는 안된다.

 

 

자기를 뉘우쳐야 하고  이런 업의 고랑의 벗어나는 길을  갈 줄 알아야 한다.

호강도 고생도 내가 다  지은 일이며, 부모나 남이 나를 호강도 고생도 시킬 수 없다.

내 마음 가운데 있는 복을 남이 받을 수 없고, 내 마음이 죄 지은 것을 누구에게나

줄 수도 없으므로, 제 복 제가 받고 제가 당한다.

우리의 참다운 행복은 육체나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켰다고 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 속아 사는 생활이다. 마음을 깨치지 못해서 현실을 잘못 보고  미래를 잘못  진단해서

속이 어두운 협잡배들이 자기의 진귀한 보배를 사기당한 생활이다.

 

 

우리가 오직 구해야 될 것이  있다면 마음의 밝은 원리를 깨쳐야  하는 일이며,

육체와 현실은 다 꿈이고,  착각이고, 마음의 그림자임을 깨닫는 일이다.

 

 

인간의 육체는 흘러가는  한강물처럼 날마다 변한다.

평생을  사는 부부라 할지라도 사실은  매일 딴 사람과 같이  사는 격이다.

왜냐하면 어제의  남편은 벌써 오늘은 어딘가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즉 육체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한강물이 고정으로 존재해 있지 않음과 같다.

만일 한강물을 어떤 그릇에 담았다면  그릇에 담긴 물은 한강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한강물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한강물이란 고정적으로 존재해 있지 않는다.

 

그래서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다.

 

요새 젊은 세대이서 흔히 말하는 자아상실이니 자기부재니 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사용되는지도 모른다

 

출처 : 무불스님
글쓴이 : 길상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