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시민민주주의

역사의 물결,<안철수 현상과 '87년체제'의 종언과 새로운 시대의 서막>

장백산-1 2011. 9. 22. 13:15

안철수 신드롬, ‘87체제’의 종언과 새로운 시대의 서막
2011년 09월 21일 (수) 23:22:24 [조회수 : 587] 조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webmaster@socialdesign.kr

철학자 헤겔은 프로이센을 침공한 나폴레옹과 감격적인 조우를 한 순간, "저기 마상(馬上)의 세계정신(Weltgeist)이 지나간다“고 갈파했다. 나폴레옹은 대외 전쟁을 통해 프랑스 혁명의 기본정신인 자유 이념을 전 유럽에 전파하면서 구제도와 봉건질서를 무너뜨리는 촉매 역할을 했다. 물론 나폴레옹은 스스로 자유 이념의 확산과 구제도를 붕괴시키기 위해 전쟁을 수행한 것은 아니었다. 헤겔은 당대 자유 이념이 ‘시대정신’이라면 나폴레옹과 같은 탁월한 개인은 시대정신의 구현자이며 그들의 활동은 보다 높은 필연성의 산물이자 역사적 진보를 위한 하나의 도구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다.

 

구질서의 동요와 변화에 대한 열망

   

 

 

다소 거창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서울시장 보선을 계기로 한국 사회를 패닉 상태에 빠뜨렸던 안철수 신드롬은 현금 한국의 정치질서와 구도를 뿌리 채 뒤흔들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해프닝이라기보다는 어떤 역사적 필연성의 표출로 볼 수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의 후보 단일화 협의 후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며칠 동안 휘몰아친 안철수 돌풍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한국 정치에 대한 언급이나, 압도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후보를 양보한 결단은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정치를 미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안철수 돌풍을 전후로 한국정치는 ‘구질서’와 ‘새로운 시대’로 구분되는 역사적 계기를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시대의 방향성은 뚜렷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변화는 불가피하다. 안철수 신드롬은 우리 사회 리더십에 대한 변화의 열망의 분출이었다. “저(안철수)에게 보여주신 기대 역시 우리 사회 리더십에 대한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했듯이, 변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집단열망’이 안철수를 촉매로 폭발적으로 분출했다. 안철수 신드롬은 그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로, 우리 시대의 집단열망의 깊이와 방향을 말해주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헤겔 역사철학의 은유를 음미해봄직 하다.

 

구질서는 1987년 이래 지금까지 4반세기 동안 지속되어온 이른바 ‘87체제’를 말한다. ‘87체제’에 기반한 정당정치, 여야 대표체계, 정치적 경쟁구도, 그리고 이념과 가치체계 등 모두가 시대적 한계에 봉착했으며 극복되어야 할 질서라고 하겠다. 이미 이러한 구질서체계 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정치체제의 괴리를 메울 수 있는 대안은 나타나지 않았다.

 

국민 대중은 구질서에 터 잡은 현 정치체제로부터의 강요된 선택에 고통을 받았고, 정치 혐오로 맞대응해왔다. 안철수 교수의 비정치의 정치, 탈이념의 정치는 기성정치와 정당에 대한 불신의 수준을 넘어 새로운 정치질서와 가치, 그리고 제3의 인물에 대한 대중적 갈망에 불을 지폈다. 안 교수로 말미암아 구질서인 ‘87체제’는 밑동부터 크게 흔들렸지만, 안철수 신드롬이 새로운 정치질서의 탄생으로 연결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다.

‘87체제’, 적대적 상호의존체제

'87체제‘는 타협체제이다. 이는 민주화 세력과 군부권위주의 집권세력 간의 대타협의 산물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열기 속에서 군부집권세력은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개헌 요구를 수용했다. 제5공화국에 대한 국민들의 끊임없는 불신과 저항으로 궁지에 몰린 집권 여당의 대표가 발표한 이 선언으로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제6공화국 헌법이 탄생하게 되었다. 제9차 개정헌법은 국민의 직접선거로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 개헌에 정치적 의미가 컸으며, 이를 통해 비로소 국민의 정부 선택권이 보장되었다. 이처럼 1987년 헌법개정을 통해 형성된 정치구도가 지금까지의 한국의 정치질서를 규율하고 있으며, 한국정치가 거의 4반세기 동안 이러한 1987년의 정치적 타협 구도 위에서 작동해왔다는 점에서 이를 ’87체제‘로 일컫는다.

 

이후 군부권위주의세력은 산업화 세력에 합류하였고, 민주화운동 세력은 의회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제도권 정치에 투신하였다. 민주화운동 세력이 제도권 정치로 진입함으로써 바리케이드 정치, 즉 가두정치로부터 의회정치인 여의도 정치로 투쟁의 장(場)이 옮겨졌다. 이는 정치투쟁 마당의 공간 이동을 넘어 반체제 운동이 헌정체제 내에서의 정치적 경쟁구도로 전환되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었다. 그리하여 민주화운동의 명망가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제도권 정치의 국회의원으로 신분 전환을 추구했다. 제도권 진입은 이미 제도권 의회정치의 틀 내에서 반독재 투쟁의 구심점이었던 김영삼과 김대중 양 김씨(金氏)의 영향권 아래 포섭되는 과정이었고, 민주화운동의 명망가들은 이념적 친화성과 지역 그리고 개인적 연고에 따라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양 김씨가 주도하는 정당에 편승하여 여의도 행을 꿈꾸는 정치인으로 탈바꿈했다.

 

다른 한편 ‘87체제’는 보수 우파의 산업화세력과 진보 좌파의

   

민주화세력 간의 적대적 상호의존체제로 볼 수 있다. 산업화를 성취한 보수세력과 민주화를 이끈 진보세력은 한국 사회를 끌어가는 주역으로 우리 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한국 현대사 후반기에 진보좌파는 1980년대 이래 역사 해석과 도덕적 가치의 우위를 확보한 가운데, 20년 동안 이데올로기 담론을 장악하면서 문화권력을 향유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정치권력의 장악을 통해 한국사회의 사회문화 구조와 정치적 지형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 속에서 계급관계의 전도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했으며, 그에 따라 보수우파의 강고한 물질적 토대와 경제적 기반을 잠식시키는데 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보수우파의 구기득권 세력은 재벌, 대형언론, 대형교회, 사학재단, 법조계, 제도권 학계․문화예술계 등을 포함하고 있다. 반면 진보좌파의 신기득권 세력은 대기업 노조, 공공부문 노조, 전교조, 대학․언론․문화예술계의 진보적 지식인 그룹, 시민단체 등에 뿌리를 내렸다.

 

 진보좌파는 이데올로기 담론 장악과 대중적 지지기반 확장을 통한 조직화 과정을 거쳐 정치적으로 성장해왔다. 이처럼 구기득권 세력과 신기득권 세력의 대립구도가 ‘87체제’의 특징으로, 서로 원수처럼 싸우지만 새로운 정치세력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면서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주고받기 식 정권교체 구도를 형성하였다. 여기에다 상대방의 국정 실패와 무능력 등 국민의 지지철회에 따른 반사적 이익을 향유하는 제로섬 게임구도 하에서 정치적 경쟁은 상생적 윈윈 구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인터넷 민주주의와 여론의 ‘봉기’

한국의 정당정치는 형해화(形骸化)되었다. 정치적 어젠다는 정당 구도의 밖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데다 양극화, 복지, 노동, 교육 등 정치사회적 이슈와 여론을 수렴하고 해결하는 정당의 고유 기능은 이미 상실된 상태다. 또한 정치시장의 저열한 메커니즘은 정당정치에 기반한 국민적 대표체계의 불합리성과 함께 위기 상황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역과 이념의 근친구조 속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정치시장 진출은 원천 봉쇄된 실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념과 지역 구도를 해소할 수 있는 보다 ‘좋은 기회’를 가졌으나 지역구도의 강고한 벽을 넘지 못했다.

 

안철수 돌풍은 한국 정치사회의 여론의 ‘봉기’를 가져왔다. 인터넷 민주주의의 산물이다. 한국 민주주의 변화는 ‘제도권 정당중심 민주주의 ⇨ 가두 민주주의 ⇨ 인터넷․SNS 민주주의’로 변화되어왔다. 인터넷 공간에서 주요한 정치사회적 의제와 현안이 다루어지면서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선동적이고 무책임한 언술과 주장들이 제도권 정치사회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정당체제는 시민사회의 다양하고 변화 템포가 매우 빠른 요구들을 수렴하고 거르는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틀로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촛불 시위에서 확인했듯이 공론 형성의 장은 변화했지만, 건강하고 합리적인 공론 창출은 여전히 쉽지 않다.

 

브라질 대통령을 역임한 카르도소(F. H. Cardoso)가 ‘미래의 정치 현실에서는 더 이상 정당의 존재 이유가 없으며 곧 사라질 수밖에 없는 정치제도’(Foreign Policy, Sep/Oct 2005)로 보았듯이, 이제 정당이 파격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는 무척 힘든 판국이다. 희망 없는 정당, 재벌과 가진 자와 힘센 자, 부패, 도덕적 불감 정당의 대명사가 한나라당이라면, 비전 없는 정당, 대안 없는 정당, 지역정당이 민주당이라는 사실에서 국민은 한없는 좌절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혀 새로운 정치 문법을 구사하는 제3의 인물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기대가 분출하게 된 것이다.

누가 ‘역사의 물결’을 탈 것인가?

 

안 교수는 서울시장 출마 여부에 대한 소회를 털어 놓았던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사의 물결이다. 저도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라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이라고 하면서, “현 집권세력이 한국 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와 함께 “거기도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오는데 많은 역사와 자산, 경험이 있다. 그런 정당인데 잘 됐으면 좋겠다. 잘 변신했으면 좋겠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고 하여, 어느 쪽에도 기대하기 어려운 입장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런데 기존의 정당과 그 주변의 인물들이 과연 환골탈태하여 새로운 역사의 주체로 나설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사회의 보수 기득권층은 탐욕스럽고 전혀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진보좌파는 경직된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한 채 점차 기득권화되면서 이미 초기의 청신함을 잃었다. 자파의 이해관계 속에서 서로 자기 입장만 주장하고 상대방을 비난한다. 신구 기득권 세력이 서로 타협과 양보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판국에 비정규직, 청년실업 문제, 산재한 정치사회적 문제들이 풀릴 까닭이 있겠는가. 안 교수는 삼성 동물원, LG 동물원으로 비유하면서 재벌에 의해 피폐화된 기업 생태계의 정상적인 복원을 역설했다. 그렇다면 이 당면한 과제를 하나라도 누가 맡아서 해결할 것인가?

 

대안논리, 대안세력이 나와야 한다. 현재의 정당체제로는

   

더 이상 바랄 수 있는 것이 없다. 지금은 정당이 국가전략, 노동, 생태환경, 복지, 통일 문제 등의 다양한 이슈를 선단식으로 다룰 수는 없는 한계에 봉착했다. 그야말로 매우 절박한 양극화와 비정규직․청년실업 문제 등 정치사회적 현안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런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하는데 정당에 기대할 것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대안세력은 이념적으로 경직될 필요는 없고 국민들이 바라는 핵심 사안을 잘 포착하고 새로운 공론 형성의 장을 통해 이런 문제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면, 대부분의 국민 입장에서 마땅한 지지정당이 없는 현실에, 아주 짧은 시간에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시장경제, 우리 모두 함께 하는 공정사회, 공생발전의 길을 말해 보자. 사회운영의 원리와 방식에 대해 새로운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보수우파, 진보좌파를 넘어서는 대안논리를 찾고 대안그룹이 형성될 경우 제3의 길이 열리지 않겠는가?

 

비록 작지만 역량을 갖춘 헌신적인 소명 그룹이 새로운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그러한 소명 그룹이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우리 국민들이 “바로 그거야, 우리가 그런 걸 꿈꾸어 왔어” 하고 맞장구 칠 때, 대중의 열망에 부응하면서 광범한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이 길로 함께 가자” 라고 설득하고 그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나설 때, 역사의 물결을 타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 신드롬은 ‘87체제’에 조종을 울리면서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