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법칙 - 제 5화 : 깨달음 : 자기로부터의 혁명(革命)
선 심 (禪心)
누리 삼킨 참 나를
낙화(落花)로 자각(自覺)
떨어지는 물소리로 웃고 가는 길
돌에서도 꽃에서도 님이 맞는다.(大圓禪師)
인도의 성자 크리쉬나무르티가 쓴 책 중에서
"자기(自己)로부터의 혁명(革命)"이란 제목이 있습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훌륭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상은,인간의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황금이 만능이 되고
개개인은 자신의 참 모습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말법(末法)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러한 모든 고통과 암울한 현세(現世)의 원인은 바로 자기자신의 근본을
망각하고 사는 중생의 어리석음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정화하고 개인의 존엄성을 회복하여 이 땅을
극락정토(極樂淨土)로 만들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기로부터의 혁명'이 이루어질 때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을 어떻게 몰아내겠습니까?
불로 태워서도 안돼고 태풍으로도 어둠은 몰아낼 수 없습니다.
원자폭탄을 터트려도 어둠은 꼼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돈을 산처럼 쌓아서 주면 어둠은 사라질까요?
어떤 방법을 써도 어둠을 단 한발짝도 몰아낼 수 없습니다.
어둠은 오로지 '밝은 빛'으로만 몰아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에 젖어있는 무지의 어둠은 어떻게 없앨 수 있겠습니까?
깨달음의 지혜(智慧)가 아니면 중생의 어둠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바로 깨달음의 지혜를 밝히는 일은 사람으로 태어난 자기자신이
이뤄내야 할 사명(使命)입니다.깨달음으로 이 세상과 자기자신의
삶의 목적을 완성하는 것이 곧 '자기로부터의 혁명'입니다.
성불(成佛)이란,원래 완벽한 자기존재, 자기완성을 말합니다.
불망염지장엄장해탈문(不忘念知莊嚴藏解脫門)은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하는데 이 경지가 바로 가장 완벽한
자기완성의 경지요 곧 성불의 경지인 것입니다.
내가 나를 완성한다는 이 모순된 말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중생이니 부처니 하는 말은 애시당초 없습니다.
그러니 깨달음이니 성불이니 하는 말도 있을 수 없는 잠꼬대가 아니겠습니까?
모든 존재는 청정법신(淸淨法身)비로자나(比盧遮那)부처님일 뿐인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한 띠끌의 업에도 물들지 않은 태양과 같이 밝고,허공과 같이 무한하고, 바람과 같이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태초에 물듦이 없는 이 자성(自性)은 영원한 생명(生命)이고,
최고의 행복(幸福)이며, 끝이 없는 즐거움(極樂)을 누리며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지금 자신과 여러분의 주위를 한 번 둘러보십시요.
생명이 안전합니까?늘 행복합니까?
즐거움은 계속될 수 있을까요?
현실의 삶은 녹녹치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명은 병마(病魔)의 고통에 신음하고,
행복을 담보하기 위한 생명보험을 들어도 여전히 안심할 수 없습니다.
즐겁다는 것 또한 영화 속 얘기같아서 내일은 기약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날 사람들은 어쩌다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한 삶을 사는 것일까요?
오늘의 주제는 '깨달음 : 자기로부터의 혁명' 입니다.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이루는 길을 부처님은 3,000년 전에 제시해 주셨습니다.
황제의 자리가 보장된 왕자의 신분을 포기했습니다.처자의 따뜻한 품도 버렸습니다.
궁중의 향락과 재물도 다 버렸습니다.그리고 홀홀단신 고행의 숲으로 들어 갔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포기하기 어려운 무서운 결단을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철저한 자기성찰(自己省察)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이 본래 있을 수 없는
꿈속의 허깨비와 같은 것임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다 버릴지라도 참나를 깨닫는 이 사명과 맞바꿀 만큼의 가치있는 일이 없다는
절대의확신을 실행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버리고 당장 산속으로 들어가란 얘기는 아닙니다.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지금 서 있는 그곳을 극락으로 누리며 살라는
" 무혈(無血)의 혁명(革命)"을 선언한 것입니다.
꿈속의 허깨비놀음을 하면서 그것이 꿈속일임을 모르고 사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꿈깨라는 연극을 이 사바세계에서 한 번 펼쳐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팔만사천의 법문과 연기법(緣起法)과 팔정도(八正道)를 설하셔서
본래의 신성한 자성을 사람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 주셧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성불은,존재의 존엄성을 선포하고
존엄한 존재의 회복을 외치는 활화산같은 외침입니다.
불교는 이러한 깨달음으로 자기를 완성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깨달음의 길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중국, 한국의 불교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참선화두법 (參禪話頭法)'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청정한 자성의 실다움은 깨달음을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을 보통 '견성(見性)'이라고 부릅니다.
견성은,근본을 여읜 마음이 본래 청정한 그 마음의 실상(實相 : 실다움)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본래 청정한 자신의 성품을 분명하게 깨닫고나서
햇볕에 봄눈 녹이 듯,수억겁의 업장(業障)을 제거하는 것을 '보림(保任)"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보림수행과정을 거치면서 마지막 한 티끌의 업이 다 없어져서
오로지 청정한 존재의 지혜등불이 찬란히 빛나는 경지를'성불(成佛)'이라고 합니다.
성불의 경지에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습니다.
법성게(法性偈)에서 말한,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즉 아홉 세상 열 세상이 하나인 도리는
성불지(成佛地)에서 누리는 경지를 말합니다.
거기에는 안과 밖이란 경계가 서지 못합니다.
이렇게 안과 밖이 없는데서 서로 마주보고, 대화하고 행동하는데
서로가 걸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능력을 뜻과 같이 다 쓸 수 있습니다.
손오공의 여의주(如意珠)는 분명한 부처의 능력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묘유(妙有)의 세계'라 하고,
그래서 불망염지장엄장해탈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발 앞에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 매일 쉼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만 모를 뿐입니다.
대승불교인 한국에서는 주로 참선(參禪)을 통해서 깨닫는 공부를 합니다.
선(禪)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무엇이 선(禪)입니까?
자기존재의 근원을 깨달아서,
즉 견성하여 부처의 삶을 누리며 사는 경지가 선입니다.
그러니 참선(參禪)은, 중생으로 떨어진 자성(自性)을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수행을 말합니다.참선은 자기완성을 위한 깨달음의 과정입니다.
궁극의 목표는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참선을 통한 견성법을 공부할 때는 반드시 스승으로부터
화두(話頭)를 받아서 참구합니다.화두란 깨달음을 얻고자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하는 사람에게 주는 암호와 같은 것입니다.
군대의 암호는 (화랑하면 담배로 대답하듯)같은 편임을 확인하는
신호이자 약속입니다.
서로 그 뜻을 알고 있다면 마음으로 이미 통했다는 것이지요.
화두는 언어나 문자를 통해서 전해지지만 언어나 문자를 초월한 말입니다.
마치 달을 보여줄 때 손가락끝을 떠나야만 달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입니다.
화두란 간절히 의심(疑心)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간절하게 의심하라는 것입니다.
참나를 깨닫는데 스스로 내 마음을 간절히 의심(疑心)하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엇을 의심하라는 것일까요?
나는 누구인가?
생노병사의 고통은 어디서 온 것인가?
나는 어디서 왔으며 결국 어디로 가는가? "
이렇게 알 수 없는 존재의 근원을 의심하는 것이 바로 화두참구입니다.
무턱대고 이걸까 저걸까 분별하는 수수께끼 놀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중국의 조주(趙州)선사에게 한 스님이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조주선사는 " 무(無)!"라고 대답했습니다.
개에게도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한 마디로 개에게는 마음이
"없다"라고 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분명 "유정무정(有情無情)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
무릇 생명있는 것 뿐만 아니라 초목와석(草木瓦石)도 다 마음이 있다 '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조주선사는 부처님의 불법을 아주 잘못 말한 것이 됩니다.
그렇지않습니까?
하지만 조주선사가 잘못을 말했을리가 없지요.
(조주선사는 과거 사라수왕불의 후신입니다)
그 스님에게 "무"라고 말함으로써 묻는 스님에게 커다란 의심덩어리를
안겨준 것입니다. 그리고 물었던 스님은 "무!"라고 한 그 말이
가슴의 못이 되어서 "왜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하는 의심을
자나깨나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조주선사가 "무!"라고 한 의중(意中)은 무엇일까요?묻는 스님 스스로가
깨달을 수 있도록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달을 보거나 말거나 하는 것은 이제 그 스님의 몫입니다.
선사가 툭 던진 말을 듣고 그 말이나 문자에만 떨어져서 헤아리면
헛수고만 하는 것입니다.그렇게 말한 선사의 의중이 무엇인가를 깊게 궁구해서,
알 수 없는 의심으로 꽉 찰 때 밥 먹을 때나 걷고 일할 때나 쉴 때나
하루 24시간 오직 "무?"라는 한 생각만이 전부가 되어버립니다.
그 의심덩어리가 태산만해지고 숨 쉴수 조차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르면,
이제 의심하는 그놈도 사라져버리고 오로지 텅빈 허공처럼 의심했던 마음만
덩그라니 남습니다. 허공은 스스로의 앎이 없지만 의심하는
그 놈이 바로 나임을 알았을 때,비로소 스승이 "무!"라고 한 그 뜻이 확연히 드러나면
화두는 타파됩니다.이러한 화두타파를 바로 '견성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수행자들은 스승에게서 화두를 한 번 받으면 10년,20년씩 참구하면서
그 화두가 타파되어 견성에 이르도록 퇴전하지 않았습니다.
이 방법이 전통적인 화두참선법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대인들에게도 이러한 전통적인 화두참구법이 효과가 있을까요?
화두 하나를 들고 10년, 20년씩 참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 세대는 그렇게 인내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화두를 주면 자살(?)할지도 모릅니다.왜 그럴까요?
여러분의 하루하루는 정신없이 빨리 돌아갑니다.
온갖 지식이 넘쳐나는 첨단의 시대여서 보고 듣는 홍수에 휩쓸려 삽니다.
땡감이 홍시가 될 때를 기다리기 보다는 금방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안에 홍시를 만들어 먹는 습관에 길들어져 있어서 화두 하나만 붙들고
10년을 버틸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인내할 사람들의 근기(根機)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강물에 떠다니는 나뭇잎처럼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는
유랑하는 수행자가 많은 시대입니다.오늘날,훨씬 많은 수행자가
화두참선을 한다고 하지만 견성도인(見性道人)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또 하나의 이유는 바른 가르침을 줄
눈밝은 선지식(善知識)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화두는 어디를 향해서 참구해야 할까요?
화두참구의 원리는 경계에 물든 마음을 역으로 거슬어 올라
경계를 여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음밖의 어떤 대상을 향해서 화두를 참구한다면 그것은 시작부터 틀린 것입니다.
'의심하는 그 마음을 눈밖에 1미터 앞에다 두고 참구하라'(모 선사의 지도법)는 것은
온갖 경계위에서 참나를 찾으라는 것이어서 깨닫기가 요원합니다.
화두는 내면을 돌이켜서 보는 놈을 보고 듣는 놈을 보는 내관수행(內觀修行)이
되어야만 화두일념(話頭一念)의 참구가 됩니다.
화두를 참구하는 데 있어서는 바른 안목을 가진 스승의 지도를
반듯이 받아야 합니다.제자의 상태를 거울 속 들여다 보듯 볼줄 아는 스승이 볼 때,
제자가 지금 하늘 땅이 둘이 아닌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고
바로 그 경지를 짚어주면 화두는 열리는 것입니다.
내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그 절정의 길목에서 스승이
"바로 이것이 너의 본래 상주불멸(常住不滅)한 마음이다."라고 바로 짚어 준다면,
화두는 스승의 지도와 나의 노력으로 해결 되는 것입니다.
이 산승이 정진하고 있는 국제정맥선원(國際正脈禪院)은,
바로 이렇게 스승과 제자가 한마음 한 뜻으로 하는
화두참구법으로 견성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원선사(大圓禪師)의 독창적인 화두지도법으로 200여명이 넘는수행자가 참나의 경지를 체득하고 보림정진(保任精進)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21세기 최첨단의 견성법입니다.(최첨단을 좋아하는 수행자들이 많기에)
자기로부터의 혁명은 가장 위대한 무혈의 혁명입니다.
총칼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이 지구를 낙원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은
깨달음의 길에 모든 사람이 동참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 영원한 행복의 열쇠를 쥐는 지름길입니다.
그 첫걸음을 여러분이 시작하십시요.
혜원합장.
동국대 선학과 교수/혜원스님
출처 : 다이아몬드
글쓴이 : 娘生寶藏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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