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친일독재반민족,수구기득권

심리학으로 분석한 이명박 리더쉽

장백산-1 2012. 3. 18. 16:03

 

 

心理學으로 分析한 이명박 리더십
2012-01-06 71
 

<열등감 지닌 독불장군, 통합형 지도자와는 거리 멀어>

● 통합형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행정일꾼에게 적합한 MB식 리더십
● 한국이 아니라 美國, 다수의 보통사람들이 아니라 極少數 上流層만 對辯


● ‘강부자’‘ 고소영’에다  ‘정치꾼 표절교수’만 불러들인 용인술


● 국민의 편에 서서 제대로 된 인재 등용할 때 지도력도 회복 가능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은 전임 대통령들과는 달리 열렬한 지지자들의 성원에 의해 당선되지는 않았다. 이명박에게 한 표를 던진 국민들 중 다수는 극심한 경제난과 야권의 인물난으로 인해 마땅히 찍을 후보가 없는 조건에서 투표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경제만은 살리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는 이명박 씨에게 속는 셈치고 한번 기대를 걸어보았던 것이다.

비록 道德性 문제로 구설수에 휩싸여 있던 이명박 후보였지만 그래도 그가 經濟만큼은 살릴지도 모른다고 국민들이 한 가닥 기대를 걸 수 있었던 데에는 아마 ‘추진력’과‘불도저’로 상징되는 이명박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즉 강단지고 추진력이 있는 지도자가 등장해야만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우리경제를 살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취임 후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의 상황은 예상과는 달리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조차 그다지 신통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市長 때만 하더라도 나름대로 좋은 평판을 받았던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왜 대통령이 된 후에는 통하지 않게 되었을까?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서울市長이라는 자리는 기본적으로 行政職에 가깝지만 대통령은 단순한 행정일꾼, 즉 심부름꾼이 아니라 政治人이자 전 국민의 指導者라는 사실이다. 서울이라는 한 도시의 행정과 살림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리더십과 전체 국민을 指導하고 이끌어나가는 데 필요한 리더십은 質的으로 다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지도자가 아니라 行政일꾼에 적합한 리더십이었던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시장은 굳이 리더십이 없더라도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자리인 반면 대통령이라는 地位는 반드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리더십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問題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道德的 權位 무너진 指道者의 限界

일반적으로 바람직한 리더십이 가능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條件들이 充足되어야 한다.

첫째, 指導者가 相當한 權位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영향력도 권위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가족 구성원들은 단지 아버지가 돈을 벌어와 식구를 먹여 살리기 때문에 그를 믿고 따르는 게 아니다. 만일 아버지가 날마다 뭉칫돈을 들고 오더라도 가족들을 사랑하지 않고 어른답게 굴지 않으며, 道德性이 없다면 결코 권위를 가질 수 없고 가족들로부터 존경받지도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도자도 권위가 있어야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권위가 있는 지도자의 한 마디 말이나 한 가지 행동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다. 그런데 이때의 權位란 强壓的인 權位가 아니라 道德的인 權位여야 한다. 총칼로 위협해 조작해낸 권위는 겉으로는 국민들의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마음속으로는 반항심을 유발하므로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반면에 道德的인 權位는 마음을 감동시킴으로써 국민들의 자발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그 효과가 장기간에 걸쳐 지속될 수 있다. 게다가 도덕적인 권위는 시간이 흐르면서 쌓이면 쌓일수록 그 위력이 점점 더 커진다. 사심을 버리고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은 채 분단의 장벽을 헤쳐 나갔던 백범 김구 선생이나 인도의 간디 같은 지도자들이 가진 권위는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권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권위는 어느 쪽에 속할까? 민망하게도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아닌 것 같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은 1980년 광주민중항쟁과 1987년 6월 민주항쟁 그리고 두 번에 걸친 정권교체와 2000년대의 촛불항쟁을 일궈 낸 국민에 의해 선출되었다. 한마디로 반독재투쟁으로 잔뼈가 굵은 국민들에 의해 추대된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과거의 군사독재 시절처럼 총칼로 권위를 조작해내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강압적인 권위를 강요할 수 없는 脫權位主義 時代인 요즘에도 通하는 有一한 權位란 道德的인 權位뿐이라고 해도 過言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도덕적인 권위를 가질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증거를 대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미 대통령 후보 시절에 밝혀진 이명박 대통령의 不淨非利와 不道德性만 자세히 나열하려 해도 이 지면이 온통 그것으로만 채워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압적인 권위도 도덕적인 권위도 가질 수 없다면 결국 그에게는 그 어떤 권위도 없다는 말이 된다. 혹자는 국민들이 이 점을 확실히 認知하고 있으면서도 그를 選擇했으므로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리더십의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은 치명적인 결함임이 분명하다.

 

 

‘疎通’보다 누구를 ‘代辯’하느냐가 本質

둘째, 지도자는 집단의 과제를 올바르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올바른 과제 제시능력은 무엇보다도 리더십의 범위와 강도를 규정한다.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심한 사회에서 정치지도자는 필연적으로 특정한 사회집단의 요구를 대변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少數 獨占資本家 集團과 나머지 국민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회에서 정치지도자는 독점자본가 집단을 대변하든가 아니면 多數 國民들을 대변할 수 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서유럽에서는 우파정당들이 독점자본가 집단을 대변한다면 좌파정당이나 진보정당들은 노동자계급 혹은 민중의 이익을 형식적으로나마 대변한다(공화당과 민주당이 모두 자본가 집단을 대변하는 미국은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어쨌든 정치지도자는 자신이 대변하는 사회집단의 이익과 요구를 정책으로 제시해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는데, 그가 어느 사회집단을 대변하느냐에 따라 리더십의 범위와 강도는 달라진다. 극소수의 상류층, 특권층을 대변하는 정치지도자의 리더십 범위는 아주 협소하고 그 강도 또한 약할 것이다. 반면에 다수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지도자의 리더십 범위는 매우 넓으면서 그 강도도 셀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소수 사회집단을 대변하는 정치지도자는 자신이 전체 국민을 대변하며, 자신의 정책이 전체 국민에게 이익이 된다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국민을 기만하려고 한다. 그래야만 원칙적으로 범위가 좁고 강도가 약할 수밖에 없는 리더십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민들도 너무나 잘 알게 되었지만 李明博 대통령은 韓國人이 아니라 美國, 多數의 普通사람들이 아니라 極少數의 上流層을 代辯하는 政治人이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이란 본질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며 극소수 상류층이라는 좁은 범위를 가진 기득권층을 동력으로 삼는 리더십일 수밖에 없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후보 시절에 이명박 대통령은 자나깨나 ‘경제를 살리겠다 ’고 호언장담하면서 허름한 식당에서 국밥을 먹어댔던 것이다.

그러나 다수를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는 법이어서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한 말과 행동이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했으며 그는 미국과 소수 특권층만을 위해 일한다는 점이 폭로되고 있다. 민중은 기본적으로 매우 현명하기 때문에 동일한 사기범에게 반복적으로 사기를 당할 만큼 어수룩하지는 않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사회집단을 위해 복무하고 있는지를, 즉 그의 正體(identity)를 대통령 취임 후 채 100일이 안 되어서 이미 간파한 것이다.

그 결과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즉 그가 제시하는 구호나 정책이 소수 특권층을 넘어서 전 국민에게 다가갈 가능성은 희박하며 그에 따라 그의 리더십도 더 이상 확장될 여지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국민이 갈등하게 된 것이 ‘소통의 부재’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과거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민중들과 조선총독부가 대립했던 것이나, 5·16군사쿠데타 이후 국민들과 군사독재정권이 한 하늘아래 공존할 수 없었던 것은 소통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양자가 서로 다른 사회집단의 이익과 요구를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통을 잘 해서 민중의 정당한 요구가 수용될 수만 있다면 참으로 좋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을 잘 설득했다면 독립을 얻을 수 있었을까. 민주화운동을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군사독재정권과 대화를 많이 했다면 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었을까.

만일 李明博 대통령이 自身이 代辯해온 美國과 極少數의 上流層 集團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놀라운 결심을 한다면 국민과 열심히 소통을 할수록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소통을 해도 현 정부와 국민들 간의 갈등양상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고 그의 리더십은 다수 국민들에게까지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

 

 

하이에나 떼로 둘러싸인 分裂의 리더십

셋째, 指導者와 集團成員들, 그리고 집단성원들 상호간에 사이가 좋아야 한다. 리더십이 원만하게 발휘되려면 사회통합이 이루어져야 하며 동시에 올바른 리더십은 사회통합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사분오열되어 이전투구를 하는 사회분위기에서는 리더십이 제대로 작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리더십은 統合의 리더십과 分裂의 리더십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집단을 하나로 통합하려면 무엇보다 소수를 대변하는 정치가 아니라 다수를 대변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리고 지도자 주변에 사심이 없고 능력이 있는 훌륭한 인재들을 배치해야 한다. 지도자와 그를 뒷받침해주는 핵심간부들부터 하나로 똘똘 뭉쳐야 그들을 중심으로 집권당이 뭉치고 전체 국민이 단결해 경제발전이나 국가목표를 성과적으로 추진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지도자가 훌륭하더라도 그 주위에 썩은 고기를 노리는 하이에나 떼만 득시글거린다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민들이 걸었던 기대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과 관련된다. 국민들은 어차피 이명박 대통령이 能力은 있을지 몰라도 道德性은 없다고 判斷했기에 그가 훌륭한 인재들을 등용함으로써 자신의 부족점을 만회하길 간절히 바랬다. 그래야 그가 호언했던 대로 經濟成長이라도 可能해질 것이니까.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주위에 훌륭한 인재는커녕 ‘강부자’ ‘고소영’에다 ‘정치꾼 표절교수’라는 하이에나들만 골라서 불러들였다. 이를 본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걸었던 한 가닥 기대조차 포기하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아주 착하고 예쁜 자식이 아니라 품행이 나쁘지만 앞으로는 잘해보겠다고 철썩 같이 약속하는 자식한테 기회를 주었더니 부모 앞으로 불량배들만 잔뜩 데리고 온 셈이니까.

私利私慾과 부패에 물든 간부들은 서로 단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를 존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남자와 그 돈을 보고 덤벼든 여자의 결혼은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남자는 여자를 ‘내 돈만 사랑하는 인간’이라고 보고, 여자는 남자를 ‘돈밖에 가진 게 없는 인간’이라고 보면서 서로를 경멸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결격사유를 가진 수준 이하의 핵심간부들은 ‘나만 나쁘냐? 너도 나만큼 나쁜 놈 아니냐?’라는 속마음을 품은 채 서로를 불신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본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없는 간부들은 서로 사이가 나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쳐야 할 간부들이 단결이 안 되고 사리사욕을 추구한다면 국민적 통합이란 아주 요원해진다. 윗물이 썩으면 아랫물도 반드시 썩기 마련이니까. 이런 맥락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통합의 리더십이 아니라 분열의 리더십, 엄밀히 말해 이미 스스로가 자신의 리더십을 파괴하는 길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劣等感, 罪意識에 固執不通形

넷째, 指導者가 人格的으로 心理的으로 健康해야 한다. 알콜중독 아버지는 본인만이 아니라 모든 가족들까지 심리적으로 병들게 만든다. 한 가정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한 국가의 대통령이 인격적으로, 심리적으로 병들어 있다면 그 나쁜 영향이 오죽하겠는가. 이런 이유로 인해 국민은 고위직에 있는 인물일수록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킬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指導者가 精神的으로 健康하면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병이 어느 정도 치유될 수 있다. 즉 지도자는 자신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집단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마음은 과연 얼마나 건강할까. 광우병 사태에서 뚜렷이 드러났듯이 이명박 대통령은 상당히 獨線的이고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걸로 유명하다. 그런데 남의 말을 안 듣는 고집불통은 自我가 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劣等感이 심한 自我, 罪意識이 많은 自我, 愛情缺乏이 심한 自我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유년기를 분석할 만큼 자료가 충분하지는 않으므로 애정결핍 문제에 대해서는 뭐라고 단정하기 어렵겠으나 그가 열등감과 죄의식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추론은 가능할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자신의 과거를 상당히 부끄러워했기에 그로 인해 劣等感을 가졌을 가능성이 많다. 劣等感은 一般的으로 權力慾과 出世慾으로 表現되는데 그의 인생역정이 그 노정을 뚜렷하게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그는 罪意識에서도 결코 自由롭지 못할 것 같다. 數많은 不淨非利 의혹들의 대부분을 낭설로 치부하더라도 세간에 드러나서 국민들에게 사과를 한 것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사고능력이 마비된 중증 정신분열증 환자이거나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이명박 대통령은 罪意識을 쉽사리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정황증거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불장군 스타일이 예상보다 훨씬 더 깊은 心理的 病에서 起因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追進力 强하나 直說的인 性格이 限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性格과 관련된다. 필자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그의 성격은 ENTJ(장군형)인데,

이 성격이 가지는 特性 중 두 가지만 살펴보기로 하자.

ENTJ의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가 바로 강한 추진력이다. ‘불도저’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별명이 아마 이와 관련될 것이다. 그런데 이 ‘추진력’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서 심리적으로 건강한 경우에는 부하들을 아끼는 용감무쌍한 지휘관이 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사람이 죽든 말든 상관없이 밀어붙이는 탱크가 된다. 즉 불도저는 땅을 화끈하게 밀어붙이기도 하지만 만약 땅속에 두더지나 개구리 등이 살고 있다면 그 가여운 생명들은 불도저에 비참하게 깔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ENTJ는 또한 거침이 없고 직설적이며 솔직하게 말을 한다. 사고형(T)은 타인의 감정을 잘 배려하지 않고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감각사고형(ST)보다 직관사고형(NT)에게서 더 두드러진다. 게다가 내향형(I)에 비해 외향형(E)은 언어표현이 많고 상대적으로 신중하지 못한 편이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ENTJ들은 말로 인해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다. 즉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그것 참, 시원하다. 말 한번 잘하네’라고 반응하면서 즐거워한다.

5공 청문회에서 ENTJ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약 스타로 부상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대통령이 된 후에는 그 능력으로 사람들을 화나게 하기도 했지만). 반면에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ENTJ는 사람들을 무척이나 화나게 하고 때로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겨주기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겠다. 다만, 만일 후자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앞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내내 불도저에 깔려 피 흘리고 언어폭탄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각오를 단단히 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사태추이를 보건대 이명박 대통령의 인격적, 심리적 불건강성은 그의 리더십에 상당한 손상을 주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아직 임기를 많이 남겨놓은 출발단계에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하루라도 빨리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과 극소수 상류층이 아니라 다수 국민의 편에 서고, 자기 주변에 하이에나 떼가 아니라 진돗개들을 불러들임으로써 궁극적으로 도덕적 권위를 가진 지도자가 되었으면 한다. 나아가 바쁜 일정 속에서라도 시간을 쪼개 심리치료도 받았으면 한다. 대통령의 정신적 건강은 본인만이 아니라 전 국민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태형 심리학자 minjog21@minjog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