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인생의 헛된 삶과 참된 길

장백산-1 2012. 9. 8. 14:25

 

 

 

인생의 헛된 삶과 참된 길 [청담스님]

삶은 구렁이에게 물린 개구리의 운명

 

우리 人間이란 本來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또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지.

그저 생겨났으니 살 때까지는 죽지 못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달픈 삶에 쫓겨 이런 問題들을 生覺할 겨를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각박한 現實生活이 아닐까합니다.

 

事實 우리는 이런 問題들을 生覺하기 以前에 이미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잘 사는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농사짓는 사람이나 장사하는 사람이나 고기 잡는 사람이나 정치인, 학자, 심지어는 부처님 공자, 예수에게 물어보더라도

'잘 살려는 마음, 이 한 生覺'만은 똑같이 갖고 있을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 사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세계의 경제를 한 손에 넣고 주무르는 재벌이 되는 것이나,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이 되거나,

또 사자후의 웅변을 토해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서늘하게 만들고, 천하의 독자를 붓 하나로 놀라게 하는 문호가 된다면 잘 사는 것일까요.

아니면 부귀와 명예를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떠도는 구름처럼 사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일까요. 모두 아닙니다.

겉치레의 잘 사는 사람일지 몰라도, 참된 意味에서 말하는 잘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잘 사는 것'은 곧 不足함이 없는 것이고 求할 것이 없는 삶입니다.

怨望이 없고, 성냄이 없고,미움과 질투가 없는 것 또한 잘 사는 것입니다.

恐怖와 不安이 없고, 강제와 속박도 없고,해탈과 자유가 있는 삶,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보다 위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늘 마음이 흡족하다면 잘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흔히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살아간다는 말은 아무 내용이 없는 말입니다.

인간이 100년간 살 권리를 갖고 와서 '하루 살았다는 말은 하루 죽었다는 말' 外에

또 무슨 다른 뜻이 있겠습니다.

1년을 살았다는 말 또한 1년을 죽었다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살아간다는 말과 죽어간다는 말이 다를 것이 없단 말입니다.

 

우리가 농사짓고, 장사하고, 정치하고,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모두 살기 위함인데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비참하지만 피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世上을 左之右之

할 정도의 權力이 있어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는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일생은 죽음이라고 하는 큰 구렁이한테 뒷다리를 물려 끌려가는

개구리의 운명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구렁이한테 물린 개구리를 놓아줄지 말지는 구렁이가 결정할 것이지 개구리에겐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人間의 죽음도 人間의 自由意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죽음 그 자체에 의해서만 결정됩니다.

천하의 영웅과 만고의 호걸도 죽음 앞에선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그저 순종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現實에 直面해 있으면서 마치 남의 일처럼 새까맣게 모르고

살아갑니다. 貪.嗔.痴 三毒과 五欲樂을 버리고 육바라밀을 행하면 일체 중생은 불안과

포에서 벗어날 수 있고 永遠한 絶對自由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世界 一切 衆生이 누구나 다 業報 衆生임은 틀림없는 事實입니다.

그러므로 보는 見解 역시 업안(業眼)으로 밖에는 보지 못합니다.

일체 중생은 이 業眼을 解脫해 眞理의 심안(心眼)으로 世上을 보고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眞理의 법안(法眼)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심성수양(心性修養), 곧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함이니 見性해야 합니다.

 

見性이란 自己 性品자리, 一切 萬有의 本性자리, 곧 眞理인 本心자리를 맑고 淸淨하게 가져

만사만리(萬事萬理)를 通察할 줄 아는 혜안(慧眼)을 얻는 것입니다.

중생의 肉眼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이상하고 妙하게도 性品은 各者가 모두 지니고 있으면서

못 보고 못 찾는 것이 妙한 理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各者가 지니고 있는 性品을 보고 이 苦海에서 헤어날 수 있는가.

凡夫 衆生은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과 財物에 대한 욕심, 色에 대한 욕심, 飮食에 대한 욕심, 오래 살고자 하는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 등 다섯 가지 즐거움을 누려보고자 하는 病에 걸린 患者들입니다.

 

그러나 탐.진.치 삼독과 오욕병을 고치지 않고는 自己 性品을 볼 수 없으니,

먼저 삼독과 오욕락을 버리고 육바라밀을 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죽음에 직면해 있는 일체 중생은 不安과 恐怖에서 벗어날 수 있고,

永遠한 絶對自由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現實을 사바세계라고 합니다.

사바세계는 모든 生命들이 살기 위해 서로 빼앗고 죽이고, 잡아먹는 하나의 수라장입니다.

現實은 過去 無量劫을 내려오며 서로가 지어 놓은 罪惡의 業力으로 만들어진 因果應報의

決算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로가 지은 業力과 業報로 괴로운 災難이 눈앞에 展開됨은 피할 수 없는

因果應報의 法則입니다.

 

모든 중생들은 이것을 깊이 깨달아 自己 性品을 바로 봐야 할 것입니다.

性品을 보라함은 自身의 실체(實體), 存在性을 알라는 것이요.

나의 實體를 알라는 것은 나의 영원한 삶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것 이외에 또 무슨 일이 있단 말입니까.

<발췌 : 불교신문>

 

-결가부좌 명상도량 자비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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