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과 현대물리학

한 생명/우주 생명

장백산-1 2012. 9. 26. 11:21

 

 

한 생명, 우주 생명/ 청화스님

 



청화 스님
    - 이 “안심법문(安心法門)”은 청화(淸華) 스님께서 미국 카멜에 있는 삼보사에서 1995년 1월 동안거 중에 일주일 동안 사부대중을 대상으로 봉행한 [순선안심탁마법회(純禪安心琢磨法會)]에서 설하신법문 - 한 생명, 우주 생명 生命이니까 “부처님”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에 있어서 부처님을 生命으로 받아들이는 그것이 굉장히 重要합니다. 우리 마음이 生命인데 마음의 根本 고향(故鄕)인 同時에 일체(一切) 생명(生命)의 근본(根本)자리가 生命이 아니라고 할 때는 우리 마음이 너무나 건조해져버립니다. 우리 신앙(信仰)의 對相이 生命이 아니라 논리(論理)다, 이치(理致)다, 지혜(智慧)다, 이렇게만 生覺할 때는 자기 신앙이 정말로 감성적(感性的)으로 감격(感激)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필히 부처님을 내 生命의 根本 生命인 同時에 宇宙 모든 存在의 根本 生命으로 느끼셔야 합니다. 다시 바꿔서 말씀드리면 宇宙가 바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하나의 生命 덩어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방여래(十方如來)라는 것은 바로 宇宙 全切를 말하는 것이며 宇宙 全切의 生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十方如來, 宇宙 全切의 生命이 “시법계신(是法界身)”이라. 法界라는 것도 宇宙 全部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라는 것은 바로 어디 다른 데에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극락세계(極樂世界)가 있어 거기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宇宙가 바로, 부처님은 宇宙를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法界身이라, 부처님 몸이 바로 宇宙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生覺할 때는 一般的으로는 다 자기와 따로 있다고 生覺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心理的으로 恒時 不安스럽고,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부처님과 가깝지 않단 말입니다. 宇宙의 生命이 바로 부처님이기 때문에 그때는 우리는 누구나 바로 거기에 다 包含됩니다. 부처님은 바로 宇宙 法界를 몸으로 하시기 때문에 “입일체중생심상중(入一切衆生心想中)”이라. 모든 중생의 마음 가운데 다 들어 계신단 말입니다. 내 마음 가운데나 그대 마음 가운데나 또는 다른 동물, 식물 가운데나 다 들어 계십니다. 우리 불교에서 마음이라고 할 때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사람만의 마음을 마음이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存在가 다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도 마음이 안 보이지만 마음이 바로 주인공(主人公) 아닙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산(山)도 우리는 山으로 보이지만 내내야 山에도 안 보이는 산신(山神)이라, 山에 들어 있는 정기(精氣), 山 氣運, 山 에너지가 참다운 山의 한 生命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물을 물로만 보지만 물의 精氣, 그것은 바로 용왕(龍王)입니다. 물의 精氣가 바로 참다운 물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宇宙도 태양계(太陽系), 은하계(銀河系) 이렇게 區分해서 봅니다. 이런 것은 우리 중생의 분별(分別)로 해서 나누어 놓은 것이지 本來的인 生命 自體로 본다고 生覺할 때는 宇宙가 부처님이라고 하는 '하나의 生命'입니다. 宇宙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모든 衆生가운데 부처님, 하나님이 다 들어있습니다. “시고(是故)” 그러기 때문에 “여등(汝等)” 그대들이, “심상불시(心想佛時)” 이와 같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生覺할 때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을 制限되게 生覺을 하지 마십시오. 광대무변(廣大無邊)한 宇宙 생명(生命)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廣大無邊한 부처님을 生覺할 때는 “시심즉시(是心卽是)” 이 마음이 곧바로 “삼십이상팔십수형호(三十二八十隨好)”라. 이런 것들은 불교 술어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것은 부처님한테 들어 있는 모든 공덕(功德)이 삼십이 팔십수形호입니다. 우리 마음이 부처님같이 淸淨하고 煩惱가 없고 自己라 하는 것을 떠나서 무아(無我)의 眞理를 안다고 生覺할 때는 우리 얼굴도 事實은 석가모니(釋迦牟尼)같이, 예수같이 잘날 것입니다. 事實 성인(聖人)들은 얼굴도 이와 같이 일체공덕(功德)이 다 들어 있어놔서 사람 얼굴로서 조금도 흠이 없는, 눈이나 귀 입이나 코나 몸 어디나 조금도 흠이 없는, 그런 것을 想徵的으로 서른 두 가지 큰 相과 여든 가지 작은 相이라고 區分을 합니다. - 미국 카멜삼보사 법회법문에서 -
해솔님이 올린 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