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韓·日 경계인 호사카 교수는…
명성황후 시해사건 읽고 충격 10년간 고민하다 한국행 결정
日서 내이름 검색하면 거의 욕 문화일보 노성열기자 입력2011.08.12 14:22 기사 내용
"고등학교 때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재일교포 친구와 친해지면서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었죠.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대학시절 어떤 잡지에서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약 일본 근대기에 외국인이 침입해 천황 황후를 해쳤다고 상상한다면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죠. '내가 모르는 사실이 있구나. 한·일 간에는 대단한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으니까, 한국을 잘 몰랐어요.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10년 정도 계속 고민했어요.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죠. '일본은 왜 끔찍한 침략을 했을까, 내 주변엔 다 좋은 사람들 뿐인데'하는 의문을 풀고 싶었어요. 공학도가 전공을 바꿨기 때문에 고려대 학부에 편입해 학점을 취득한 뒤 1990년부터 정치외교학 석·박사를 차례로 밟아갔죠."
'귀화 한국인' 호사카 교수는 이름은 일본식을 유지하고 있다. 양쪽에 걸친 경계인의 삶은 그의 2세로까지 이어진다.
―1녀 2남을 두고 계시죠. 한·일 간 관계에 대해 평소 어떻게 교육하시나요?
"맏딸은 초·중등 과정을 한국 일본인학교에서 마친 뒤 일본 도쿄로 가서 고교시절을 보냈어요. 그리고 지금은 한국 대학에 다니고 있죠. 아들 둘은 모두 한국 대학과 고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 한국 이름과 일본 이름 둘 다 갖고 있었어요. 지난해까지 3명 모두 한국 국적을 선택했죠. 알다시피 한·일 양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잖아요. 일본도 국적은 부계 혈통주의를 채택하기 때문에 제가 2003년 귀화하기 전에는 아이들이 일본 국적으로 태어났죠. 어느 정도 철이 든 사춘기때 본인들에게 의사를 물어봤습니다. 딸은 국적을 선택하라는 말을 듣고 '왜 한쪽만 택해야 하느냐, 양쪽 모두 갖고 싶다'고 떼를 쓰기도 했어요."
―학문과 양심의 자유가 민족보다 앞선다고 주장하는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일본 인터넷 사이트에 제 이름을 넣고 검색하면 80%가 욕이에요. 하지만 교토(京都)의 한 시민 공부모임에서 저를 초청해 2시간 동안 독도를 주제로 200명 앞에서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거의 40대 아래 젊은 세대였습니다. '일본 학자들도 섭외해 들어봤지만 호사카가 훨씬 객관적'이라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입디다."
노성열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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