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깨어있다는 것의 의미

장백산-1 2012. 12. 3. 14:08

 

 

 

 


卍-깨어 있다는 것의 의미.-卍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할 때 그 일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을 때가 언제인가요. 그 瞬間인가요 아니면 그 일이 끝나고 時間이 어느 정도 지난 後에야 그때 내가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生覺이 드나요? 當事者일 때 잘 처리 하나요 아니면 第 3者일 때 더 잘 처리하나요. 現實에서는 어떤 일이 끝나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그 일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되고 또 제3자가 일을 더 잘 처리합니다. 그런데 이런 現狀은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순이 있음을 알 수 있어요. 事實은 일이 일어나는 그 瞬間에 있을 때 가장 잘 알 수 있어야 되잖아요. 시간이 한참 지난 뒤면 오히려 잊어버려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을 텐데 왜 시간이 좀 經過한 뒤에야 그 瞬間보다 더 잘 알게 됩니까? 또 왜 그 일을 당하는 당사자가 아닌 제 3자가 됐을 때 더 잘 알 수 있습니까 잘 따져 보면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現實에서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現在에 깨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卽 어떤 狀況에 執着하거나 興奮해서
        그 때는 그 狀況이 제대로 안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그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그 당시에는 제대로 안 보이던 것이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自己 生覺에 사로잡히면 客觀的 現實이 안 보입니다 그러니까 自身의 主觀的인 生覺에 사로잡혀서
        주장을 하거나 일 처리를 하면 나중에 不作用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갈등 관계에 있다고 합시다. 이럴 때 시어머니가 며느리 친구를 만나서
        그 갈등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습니까?
        없지요? 주로 자기 친구인 시어머니들끼리 모여서 얘기를 합니다.
        며느리도 마찬가지지요
        며느리는 자신과 같은 經驗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를 듣지요.
        그렇게 되니 自身의 生覺이 옳다는 것이
        다른 사람의 同調까지 있게 되니 더욱 確信을 하게 되지요 이런 狀況은 한 家族에서뿐만 아니라 나라에서도 일어납니다. 오늘날 우리가 高句麗 역사나 獨島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韓國 사람들의 말만 듣고 중국 사람은 中國 사람들의 말만 듣고 일본 사람은 日本 사람들 말만 듣게 됩니다. 그래서 客觀的인 判斷이 나올 수 없습니다. 세미나나 토론을 할 때도
        입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세미나를 하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얘기만 계속 나옵니다.
        그러니까 自身들의 生覺만 자꾸 客觀化하게 되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고집이 세어집니다.
        나만 그렇게 生覺하는 게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이 다 그렇게 生覺한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내 生覺이 옳다는 固執이 더 强해지고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을 들으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現實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自己 生覺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내 生覺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生覺은 하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계속적으로 일어납니다.
        이렇게 일어나지만 이런 生覺들이 옳다고 固執은 하지 마라
        다른 사람의 얘기가 틀렸다고 斷定 짓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대개 내 生覺은 다 옳은 것 같고 相對가 얘기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잖아요. 男便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변명하려면 一理 있게 변명해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生覺이 많이 들지요 그러니까 들을 때 듣긴 듣지만 마음 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죠? 건성으로 듣는단 말 이예요 너는 지껄여라……. 또 始作이구나.……. 장기나 바둑을 둘 때도 그렇습니다. 옆에서 훈수하는 사람이 더 잘 봐요 當事者는 이기겠다는 것에 執着하기 때문에 오히려 안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고 거기에만 集中해서 겨누고 있는데 바로 그 뒤에는 새가 사마귀를 잡으려 겨누고 있고 또 그 새 뒤에는 새를 노리는 포수가 총을 겨누고 있고 또 그 뒤에는 호랑이가 그 포수를 잡으려고 주시하는 形局과 같습니다. 저마다 등 뒤에서 自己를 겨누고 있는 것은 못 봅니다. 自己가 잡으려고 하는 것만 보이지요 이런 狀況이 바로 現實에 깨어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쪽에 쏠려 있습니다.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라는 것을 다른 말로 現在에 깨어 있으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서 現在에 깨어있는 것은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事物을 客觀的으로 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現在 내 마음에 일어나는 그 狀態에 對해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火가 일어나면 火가 일어나는 그 狀態에 對해 慾心이 일어나면 慾心이 일어나는 그 狀態에 對해 깨어있으라는 것입니다 內面에서 일어나는 그 現在에 對해 깨어 있으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現在에 對해 깨어 있으라고 하면
        單純히 現實에 對해 깨어 있으라는 말로만 理解를 합니다. 現在에 對해 깨어 있다는 것은
        境界에 부딪쳐서 일어나는 現在의 自己 마음에 對해
        깨어 있는 것으로 理解하는 게 좋습니다. 自己 現在의 마음 狀態에 對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自己 現在의 마음 狀態에 對해 깨어 있으면 사로잡히지 않게 됩니다. 狀況이 일어나긴 일어나지만 그 狀況에 對해 사로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바깥의 客觀 現實이 더 잘 보이게 되지요. 이것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법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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