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불심으로 인생관이 바뀌기 까지 ~~~

장백산-1 2013. 1. 14. 11:36

 

 

 

 

불심으로 인생관을 바꾸자 

 

불교의 믿음은 人生觀이 바뀌는 것으로 시작 되는가한다.

이제까지는 이 몸을 보기를, 世界 속의 自己라 보고

 

物質 環境과 그 條件 속에서 自己 生命을 보며,

肉體的 感情的 要件을 自我로 삼아 왔다.
거기서 安定도 平和도 기쁨도 얻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을 接함으로부터

우리의 生覺하는 바, 보는 바가 달라지기 始作한다.

이 몸은 堅固한듯해도 끊임없이 變해가는 것이고,

 

나라고 하지만 나라는 實體는 잡을 길이 없는 것을 게 된다.

物質도 自然的 現狀도 끊임없이 變하고 바뀌어 가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 역시 實體가 없는 空虛한 幻象임을 알게 된다.

五蘊은 다 空한 것이라든가 諸行은 無常하다든가

諸法은 無我라든가 하는 가르침에서

더욱 이제까지의 어리석은 生覺과 執着이 허물어져 내린다.


이렇게 되어서 形象있는 것, 얻을 수 있는 것,

覺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虛妄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이런데서 佛子가 智慧의 눈이 열리고 人間이 바로서는 것이다.

허물어진 것은 虛無하고 없는 것이었으니

實로는 虛無에 執着했던 妄見이 허물어지는 것 뿐이다.

그래서 참自己에 눈을 뜨고 참으로 있는 것에 새로운 感動을 얻게 된다.

불자의 人生觀은 이렇게 되어서

참으로 있는 것, 참으로 사는 길을 보아가는 것이다.

經에서는 佛性의 普邊과 佛身의 常住를 역설하신다.

虛無한 것은 虛無하고, 虛無하지 아니한 眞實을

정면으로 우리에게 들이대는 말씀이신 것이다.

우리의 生命은 形象이 아니다. 物質이 아니다.
참된 存在는 形象으로 잡을 수 없다.
實로는 法 그대로인 것이다.

우리의 生命이 그러하고 一切存在가 그러하다.

 

그것은 形象을 보는 눈, 形象을 生覺하는 마음으로는 알길 없지만

原來로 理 그대로 完全하고 圓滿하다.

 

거기에는 어떠한 한- 物件도 없다. 그렇거니 어찌 對立이 있을손가.
完全한 法性生命 그대로의 圓滿性이
永遠할 뿐이다.

거기에는 不幸이 있을 리 萬無하고 惡이 있을리 만무하다.

 

불자의 믿음은 여기에 이르러서 그 人生觀이 바로 서는 것이다.

存在하는 것은 오직 法 뿐이요,

法은 永遠하고 圓滿하고 내 生命으로 完全하다.

불자의 기쁨도 용기도 권능도 환희도 이런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佛子는 이러한 인생관을 확고히 가지고 있는 者다.

그러므로 설사 눈앞에 어떤 苦難이 닥쳐와도
거기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오직 眞理의 圓滿性과 一剃 成就의 功德性을 보고

恒常 希望을 불태우고 苦難을 이겨가는 것이다.

이런 밝은 信念은 그 사람의 온 마음 온 表情,

모든 行動을 바꿔 놓는다.

 

그리고 그의 生覺을 통하여 밝은 光明뻗어 나가고

다시 成就條件등을 불러들이고 새로운 成長을 도모해 간다.

이와 같은 밝은 信念, 밝은 人生 態度가 그의 온生活을
지배하게 되니

밝은 벗은 모여 들고 밝은要件은 갖추어 가며 밝은 所望은 이루어져 간다.


불법을 믿어 기쁘고 행복하자는 것은 한낱 自己慰安 自己陶醉만이 아니다. 참된 眞理에로 人生觀이 바뀌었다는 것이 이와같이

自己를 바꾸고  環境을 바꾸고  事業을 바꾸고

나아가 事會를 바꾸게 되는 것이다.

불자라고 하면서 物質이나 肉體에 執着하는 것은 佛子가 아니다.

모든 것은 虛無하고  人間은 業報 所生이며

그것은 罪惡이라고 生覺하는 者은 佛子가 아니다.

 

모름지기 참된 믿음에 돌아와 眞理의生命, 부처님의 功德世界 그 속에서

無限創造를 펼쳐나갈 끝없는 希望과 光明을 머금는 者가 佛子할 것이다.
이 밝은 믿음, 밝은 인생관으로 우리 모두에
對하

우리 生命을 役使해 가야 할 것이다.

 

            광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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