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스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스님 :
나는 본시 산중에 사는 사람이라 장(늘) 대하는 것은 푸른 산, 흰 구름이지.
푸른 산이 永遠토록 變하지 않고 흰구름이 自由로이 오고 가는 것을 보고 살지.
거기에서 모든 것의 實體를 볼 수 있어.
스님의 섭생방법이 독특하다고 듣고 있습니다. 健康을 어떻게 유지하십니까?
스님 :
건강 유지,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지. 살만큼만 먹고 사니까,
먹기를 아주 조금 먹거든 보통 사람들의 3분의 1쯤 될까.
그래서 의사들도 놀라 어떤 신도들은 그렇게 먹고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
밥 적게 먹고 매운 것 안 먹고 순담식(무염식)으로 수십년 살았지.
어떻게 걸어다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지만, 난 괜찮아.
키도 크시고 몸도 크신데, 그렇게 적게 잡수시고 정말 놀랍습니다.
무염식을 하시게 된 동기가 따로 있습니까?
스님 :
뭐, 동기가 따로 있나. 몸에 좋으라고 골라 먹는게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맵고 단 것 먹는 성질이 아냐.
좋은 음식은 잘 안 먹고, 먹기도 싫어. 젊었을 때부터 生食도 많이 했지.
두루마기는 얼마나 입으신 건가요. 아주 많이 헤어졌는데…
스님 :
이 누더기, 오래 됐어. 한 三十年 될까.
많이 떨어져 앞 자락을 좀 고쳐달라고 했더니 새걸 대가지고 옷을 버려버렸어…(웃음)
조금 있으면 또 떨어지겠지.
어떤 종교에서는 오로지 자기네가 믿는 종교의 교조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지, 다른 종교를 가지고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도 그렇습니까?
스님 :
그건 참 곤란한 일이야.
[너는 내 말만 들어야지 남의 말을 들으면 살 수 없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을 우리는 人格者라고 할 수 없지.
내 말을 안 듣는 사람까지도 살길을 열어주는 것이 眞情한 宗敎가 아니겠어.
다른 사람을 無視하거나 排斥하면서 自己만을 내세운다고 해서 自己가 내세워지나,
다른 종교를 믿으면 救援받지 못하고 地獄에 간다고 우긴다면 問題가 큰거야.
하나의 法도 버릴게 없다는 것이 불교라는 거지.
불교는 이렇게 門을 활짝 열어놓고 있지.
自己를 바로 알고 이웃에 손길을 뻗치라고 하지.
불교에서는 부처님 믿고 안 믿고 큰 問題가 아니야.
自己 마음을 바로(바르게) 보고
그러니 석가모니에 依持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解脫(구원)할 수 있어.
요즘 우리나라 종교계 일각에서는 物量主義와 巨大主義에 도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야단스런 法堂을 짓는 일에 熱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現狀을 스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精神的인 養食을 開發하고 供給하는 것이 宗敎야.
사람이란 物質에 탐착(貪著)하면 良心이 흐려져.
그러기 때문에 어느 종교나 物質보다 精神을 높이 여기는 거야.
부처님의 경우를 보더라도 호사스런 왕궁을 버리고 다 헤진 옷에
맨발로 바리때 하나 들고 여기저기 빌어 먹으면서 修道하고 敎化했어.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敎化의 길에서 돌아가셨어.
철저한 無所有에서 때묻지 않은 精神이 살아난 것이야.
또한 그 산 精神을 널리 供給한 것이지.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生活 態度를 그대로 本받아야 할 것 아닌가.
精神이 病든 것은 物質 때문이야.
종교인이 淸淨하고 올바른 生活을 하려면 最低의 生活로 自足할 수 있어야지.
餘有있는 物質은 반드시 社會로 還元해야 罪를 덜 짓게 될거야.
우리 민족의 과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통일입니다.
분단체제로 인해서 민족의 저력은 남이나 북을 물을것 없이 부질없이 소모되고 있습니다.
스님이 생각하시는 국가나 통일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스님 :
산중에 사는 사람이라 잘은 모르지. 우리가 남과 북으로 분단된 것은
우리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고 국제적인 사정으로 그렇게 됐다고 보아야지.
38선이 혹은 휴전선이 몇 개 그어졌다 해도
언젠가는 하나를 이루고 말텐데… 미리부터 서로가 忍耐力을 가지고
我執만을 주장할 게 아니라 한덩어리가 되도록 노력해야지.
스님은 人間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스님 :
生死란 바다의 波濤와 같아.
우리도 그렇게 났다가 죽었다 하지.
生死 自體도 그래.
그러니 結果的으로 生과 死는 하나이지 둘로 볼 수 없는 거야.
요즘 절에는 없는 것이 없더군요.
스님 :
승려는 최저 생활을 하며 남을 위해 기원하는 거야.
출가한 남자를 비구라고 하지.
그 비구라는 말이 乞人이란 말이야. 얻어 먹는 사람이지.
옷도 마음대로 입는게 아니야. 버린 헝겊을 주워 깨끗이 해서 지어 입는 거지.
그것도 두벌 이상 가지면 안돼.
옷은 헌 것을 입고 밥은 얻어 먹고 이게 부처님이 가르친 철칙이지.
부처님의 법을 지켜야하는 승려들이니, 時代가 아무리 變했다고 해도 儉素하게 살아야지.
꼬치꼬치 물어서 죄송합니다. 좌우명 같은 것이 있으면…
스님 :
내게 무슨 좌우명이 있겠나.
「차나 한잔 마셔라」하는 것으로 좌우명을 삼지.
차란 불교 안 믿는 사람도 마시지 않아
고민하는 현대인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價値觀의 혼돈 속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나 할까요.
現代人들에게 삶을 위한 법문(法門) 좀 주시지요.
스님 :
그거 별 것 아니야. [내가 사람이다]하고 生覺하면 모든 苦痛이 없어질거야.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의 本分을 지켜야 하거든.
개, 돼지 같은 짐승처럼 날뛸 수 없다는 말이야.
사람들도 物質만 보면 쫓아가는 이들이 있지.
慾心의 노예가 되면 動物이 되어버리는 거야. 내가 사람이라고 生覺하면 그럴 수 없지.
사람들이 慾心을 없애면 바로 이곳이 極樂이야.
사람이란 「사람」을 發見해야 해.
그런데 도대체 天地間에 「사람」 이 없단 말이야.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나는 사람이다」하고 살아야지.
온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산다면 뭐 걱정할 게 있겠나.
그러려면 自己 自身을 보는 눈이 날카로워야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냐.
불교에서 말하는 因果法則이란 무엇입니까?
스님 :
因果法則이란 宇宙의 根本原理야. 불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지.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나듯이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人惡果)가 되지.
남을 위해 기원하면 나를 위한 것이 되고 남을 害치면 결국 나를 害치는 게 되는 거야.
生態學에서도 그렇다고 할거야. 農事에서도 그렇지 곡식이 밉다고 곡식을 害쳐봐.
누가 먼저 배고프겠어.
어떤 사람이 罪를 많이 지어 地獄에 떨어졌거든.
地獄 門앞에 가서 보니 그 苦痛받는 衆生들의 모습이 도저히 눈뜨고 보지 못할 참상이야.
普通사람 같았으면 [저 속에 들어가면 저렇게 될텐데…]하고 어떻게 避해 볼 方法이 없겠나 했겠지.
[저렇게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의 苦痛을 잠깐만이라도 내가 대신 받아
이 사람이 이런 生覺을 하다가 보니 地獄이 없어졌더래.
그 瞬間에 이 사람은 極樂에 간 거지.
모든 것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이야.
이른 아침부터 오랫동안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좋은 말씀 널리 퍼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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