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텅빈 것이 느낌이 있다 - 혜민스님|
나무아미타불/ 깨어있어요 | 조회 153 |추천 0 | 2013.01.10. 07:22
텅빈 것이 느낌이 있다.
참선 수행을 처음 시작한 분이나 아니면, 오랜기간 정진한 분의 경우에도
가끔식 보면 잘못 誤解를 해서 修行이 完全히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 가장 큰 誤解가 바로 修行을 通한 깨달음을
參禪中에 느끼게 되는 좋은 느낌이나 특별한 體驗과 同一視 하는 것이다.
卽 참선을 하다가 보면 마음이 아주 고요하고 집중된 狀態에서 느끼게 되는 환희심,
온 몸으로 느껴지는 전율, 내면의 다양한 빛깔이나 천상의 소리, 혹은
부처님이나 보살님의 모습을 본 것을 가지고 뭔가 깨달음이 이런 것이 아닐까하고 錯覺하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이는 참선을 하는 理由가 超能力, 혹은 神通力을 얻기 위해서 한다는 사람도 보았다.
더 황당한 것은 아예 神通力의 有無를 가지고 깨달음의 程度를 가름하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깨달음은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깨닫고자 하는 것은
原來부터 있었던 것을 깨닫는 것이지, 새로 생겨난 것을 經驗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아무리 좋고 神秘한 經驗이라고 하더래도
새로 생겨난 것은 無常하기때문에 時間이 지나면 사라지게 된다.
例를 들어 마음이 잠시 고요하고 集中이 된 狀態라는 條件이 맞으니까
온 몸으로 느끼는 전율감이나 환희심 같은 것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 現狀을 일으킨 條件들이 變化하게 되면 神秘한 體驗은 바로 사그러져 버린다.
다시 말하면,깨달음은 緣起 되어서 일어나는 어떤 狀態가 아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들은 緣起된 特別한 經驗에 엄청난 意味를 두고 執着을 해서
자꾸 그것을 다시 經驗하려고 하는데, 이러면 안타깝게도
좋았던 經驗 自體가 바로 苦痛의 原因이 되어 버린다.
우리의 依持處로 삼고자 하는 깨달음, 解脫智는
原來부터 있었던 것을 그냥 바로 아는 것이지 새로 생겨난 神秘한 느낌이나 經驗이 아니다.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自細히 보니까
原來부터 一切 萬物이 다 무자성(無自性)이였구나 하는 것을 그냥 바로 아는 것이다.
좀 더 쉽게 例를 들어 說明하자면 좀 어둑어둑한 저녁 時間에 집에 도착하니까
毒蛇 한마리가 門 앞에서 떡하니 길게 있는 것이 보였다고 假定을 해 보자.
分明 두려움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독사를 보고 놀라서 어쩔줄 모르면서 공포와 온갖 걱정에 휩싸일 것이다.
그런데 한참을 무서워하면서 걱정을 하다가 다시 한번 좀 더 注意를 기울여 自細히 보니까
독사인 줄 알었던 것이 동아줄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 보자.
독사가 아니고 동아줄이였다는 것을 안 瞬間 독사로 錯覺하면서 그동안 느꼈던 온갖 공포, 걱정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게 된다.
前에 느꼈던 공포감이나 걱정을 기쁨, 환희심의 經驗 狀態로 어떻게든 바꾸어서 없애는 것이 아니고
독사(自性)인 줄 알았던 것이 자세히 알고보니 동아줄(無自性)이였다는 있는 그대로를
그냥 알아버리는 것에서 바로 解脫이 된다.
그런데 最近에 들어 예전에 몰랐던 것을 한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 뭐냐면
'나' 를 包含한 萬物이 다 無自性임을 아는 앎,
텅~텅~빈 마음 바탕에서 무지개처럼 모든 萬物이 잠시 일어난다는 것을 아는 앎에는
뭔가 微妙한 느낌이 같이 있다.
꼭 말로 하자면 自由함, 가벼움, 便安함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모든 것이 因緣에 依해서 일어났다가 無常하게 사라진다는 것을 아는 앎,
平所에 내 것이라고 生覺했던 나의 短点(錯覺)들이 事實 그 뒤에 所有者가 따로 없다는 것을 아는 앎,
눈 앞에 보이는 것들 一切가 '마음이라는 거울' 위에 잠시 비쳐진 映像이라는 것을 아는 앎에는
自由함과 가벼움, 便安함이 있다. 마치 독사가 아니고 동아줄이였구나를 알고 나서 느끼는
安心이 되는 그 느낌과도 어쩌면 비슷하다.
對相으로 들어난 것들이 무지개와 같아서 딱히 執着할 일이 없음을 아는 앎과,
主人公인 이 앎은 絶對로 더럽혀질 수가 없음을 아는 것에서 마음이 쉰다.
그 쉼 안에 自由함 가벼움 便安함이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놀라운 發見은 텅~텅~빈 마음에서 世上 事物을 바라보면 그 안에 慈悲의 性質이 있다.
卽 智慧와 慈悲가 따로 따로가 아니고 妄想이 完全히 없는 狀態에서 關心이 어떤 對相으로 向하면
그 안에 모든 것을 包容하는 따뜻함과 온화함, 그저 같이 있음이 있다.
慈悲하려고 人爲的인 努力을 전혀 들이지 않아도
'妄想이 없는 智慧의 마음 原來 性質 그대로가' 慈悲였다.
이 마음은 完全히 열려있고,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와 있으며, 그냥 같이 하려한다.
結局 文守菩薩(智慧)과 觀世音菩薩(慈悲)이 이름만 다른 '하나'의 몸이였다.
혹자는 앞에서 말한 느낌과 뒤에서 말한 느낌이 어떤 差異가 있냐고 물을수 있다.
差異는 簡單하다.
뒤에서 말한 텅~빈 앎에서 나온 느낌인 자유함, 가벼움, 편안함, 평화로움, 자비함은
앞에서 말한 느낌과는 다르게 變하지가 않는다. 그 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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