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서양의 번안불교 시대
학창시절에 뒤마(Alexandre Dumas, 1802~1870)의 걸작 ‘몬테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을 누구나 한 번은 읽어보았을 겁니다. 주인공은 에드몽 단테스라는 사람입니다. 친구들의 음모와 배신으로 죄를 뒤집어쓴 그는 마르세유 앞바다의 외로운 섬 이프섬의 감옥에 투옥됩니다. 선장이 되려는 꿈과 아름다운 약혼녀는 당연히 빼앗기고 말지요. 이곳에서 단테스는 14년 동안 억울한 수감 생활을 하게 되지만, 함께 투옥된 어느 노인에게서 몬테크리스토 섬에 묻혀있던 엄청난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지도를 얻게 됩니다. 마침내 탈옥에 성공한 단테스는 보물을 찾고, 몬테크스리스토 백작으로 행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자신을 감옥에 보낸 친구들에게 처절한 복수극을 펼치게 되지요. 당시 이프섬의 감옥에서 그가 먹던 식사에는 ‘치즈’가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치즈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치즈를 몰랐던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이것은 치즈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을 겁니다. 기이하기까지 했을 프랑스의 이채로운 풍습,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이질적인 사법제도 등등. 그래서 최초의 번역 소설들은 직역 소설이 아니라 대부분 번안 소설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김내성(金來成, 1909-1957)에 의해 ‘진주탑(眞珠塔)’으로 번안되어 1947년 출간됩니다. 등장인물도 모조리 우리나라 사람들로 변했고, 장소도 생활 풍습도 모두 우리 것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치즈’도 ‘된장’으로 바뀌는 식이지요. 프랑스 문물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할 수 있지요. 동아시아에 인도에서 유래한 불교가 수입될 때도 마찬가지 사정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산스크리트어를 한문으로 번역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인도의 풍습과 중국의 풍습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지요. 번안 불교의 시대는 불가피했던 겁니다. 3세기에서 5세기 사이 중국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학자들이 격의불교(格義佛敎) 시대라고 말하는 시기가 바로 그 때입니다. 불교의 핵심 개념인 공(空)이라는 한자로 번역되는 순야타(Śūnyatā)를 노자와 장자의 철학용어였던 무(無)로 번역하던 시절이지요. 이런 ‘번안’의 시대는 어느 곳에서나 어느 시간에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번안 불교는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만 있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서양의 문명에 염증을 내던 서양 지성인들은 20세기 들어와 불교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불교에 관심을 가진 서양 학자들은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가진 지적 배경으로 불교를 이해하고 번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20세기는 서양의 번안 불교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행·불행한 사람은 서로의 세계가 달라
서양의 번안 불교는 크게 세 時期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20세기 초반의 체르바스키(Fyodor Ippolitovich Stcherbatsky, 1866~1942)가 그 대표자일 겁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그의 책 ‘열반의 개념(The Conception of Buddhist Nirvana)’입니다. 레닌그라드에서 1927년에 영어로 쓰인 책인데요, 불교를 칸트나 헤겔로 대표되는 독일 관념론으로 번안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예를 들어 열반을 칸트의 ‘물자체’로 이해하는 식이지요. 두 번째는 20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칼루파하나(David Kalupahana)의 시도가 중요합니다. 스리랑카 출신 학자로서 하와이대학 명예교수로 활동한 그는 불교를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의 근본적 경험론으로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20세기 후반기에서부터 지금까지 경향이 있는데, 注目할 만한 것은 달라이라마의 왕성한 대외 활동으로 티베트불교 붐과 일정 정도 영향이 있다는 점입니다.
1995년에 출간된 헌팅턴(C. W. Hun tington)의 저작 ‘공의 공함(The Empti ness of Emptiness)’이 아마 이 세 번째 경향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책은 티베트 스님과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것은 헌팅턴이 나가르주나를 이해할 때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의 철학적 통찰력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독일 관념론과 실용주의가 퇴조한 것은 물론 불교가 이런 지적 배경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최근에 비트겐슈타인이 불교를 이해하는 토대로 서양 지성인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의 청년기 사유를 대표하는 ‘논리철학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를 넘겨보면, 우리는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하거나 악한 의지가 세계를 바꾼다면, 그것은 단지 세계의 한계들을 바꿀 수 있을 뿐이지, 사실들을 바꿀 수는 없다. (…) 행복한 자의 세계는 불행한 자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이다.”
비트겐슈타인의 思惟는 客觀的이고 論理的이고 科學的인 態道가 强한 西洋 哲學 傳統에서는 무척 異質的인 사유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자의 세계’와 ‘불행한 자의 세계’는 다르다는 사유 방식은 동아시아 사유 전통과 더 가깝기 때문이지요. 儒學에서는 성인(聖人)이 되려고 하고, 道敎에서는 진인(眞人)이나 지인(至人)이 되려고 하고, 佛敎에서는 '부처'가 되려고 하니까요. 사실 불교의 가르침이 뭐 별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평범한 사람이 겪는 고통의 상태, 깨달은 사람이 고통에서부터 자유로워지는 상태,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 깨달은 사람이 되는 過程을 다루는 思惟 傳統이니까요.
부처는 부처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人格의 變化라고 할 수 있고요, 혹은 境地의 變化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부처가 되는 것, 혹은 불행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말입니다. 서양 철학보다는 서양 종교학의 전통에서는 흔히 이런 변화를 다루는 학문을 救援論이나 解脫論이라고 번역되는 소테리올로지(soteriology)라고 부릅니다. 救援을 뜻하는 희랍어 소테리아(sōtēria)에서 유래한 것이지요. 東洋에서는 보통 수양론(修養論)이라고 부르는 것이 소테리올로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범한 상태에서 비범한 상태로 變化하기 위해 수양하는 치열한 노력을 높은 山을 등정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登山路 初入에 서서 저 멀리 頂上을 보고 있는 사람과 한걸음 한걸음 올라서 頂上에 이른 사람은 다른 사람입니다. 當然히 그들에게 펼쳐지는 風光도 전혀 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행복한 자의 세계는 불행한 자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문제를 하나 낼 테니 풀어보실래요. “頂上에 오른 사람은 頂上에 오르지 않는다”는 말이 이해되시나요. 화두와 같은 문제라고 당황하지 마시고 잘 생각해보세요. 當然한 말 아닌가요. 頂上에 오른다는 것은 지금 頂上에 있지 않다는 것, 最少한 頂上보다 낮은 어떤 곳에서 頂上을 向해 오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니까요. “정상에 오른 사람은 정상에 오르지 않는다”는 말이 이해되시는 분이라면, 그는 벌써 ‘無門關’의 아홉 번째 關門을 그곳을 지키고 있는 청양(淸讓, 814~?) 스님을 무시하고 그냥 通過해버린 겁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복기를 해볼까요. 어느 스님이 ‘법화경(法華經)’의 ‘화성유품(化城喩品)’에 등장하는 부처 중 하나인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에 대해 물어보게 됩니다. 대통지승佛은 “이미 그렇게나 도량에서 좌선했는데, 무엇 때문에 佛道를 이룰 수 없었던 것일까요?” ‘化城喩品’에 보면 대통지승佛에게 불법이 현전하지 않았다는 구절이 나왔기에 던지는 質問이지요. 분명히 부처는 부처인데 불도를 이룰 수 없다니, 기이했던 겁니다.
청양 스님은 당혹감을 가진 스님의 궁금증을 한 방에 解消해줍니다. “그것은 그가 부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爲伊不成佛).” 얼핏 들으면 當然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大通智勝佛이 불도를 이룰 수 없었던 것은 그가 부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대통지승佛이 글자 그대로 부처라는 事實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잘못 이해하면 대통지승佛이 가짜 부처라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요. 그래서 청양 스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가 더 이상 부처가 될 必要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일까요? 그건 이미 대통지승佛은 부처였기 때문입니다.
부처가 되었는데, 그가 다시 부처가 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요.
1겁(劫, kalpa)은 아주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마다 한번 씩 돌산을 쓸어서 그 돌산이 사라지는 시간을 가리킨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주 오랜 기간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10劫이나 되는 시간 동안 大通智勝佛은 도량에서 參禪했던 겁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압니다. 그것은 부처가 되려는 參禪이 아니었다는 사실을요.
이미 그는 부처이기 때문이지요.
강신주 contingent@naver.com
(출처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