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나 집시처럼 떠돌다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길을 걸어왔는지
바람이 깎아놓은 먼지조각처럼
길 위에 망연히 서 있었네
내 가슴의 푸른 샘물 한 줌으로
그대 메마른 입술 축여주고 싶었지만
아, 나는 집시처럼 떠돌다
어느 먼 옛날 가슴을 잃어버렸다네
가슴속 푸른 샘물도
내 눈물의 길을 따라
바다로 가버렸다네
나는 이제 너무 낡은 기타 하나만을 가졌네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한다네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기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면
가응 가응, 나의 기타는
추억의 고양이 소리를 낸다네
떨리는 그 소리의 가여운 밀물로
그대 몸의 먼지들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이 먼지 나는 길 위에서
그대는 한 잎의 푸른 음악으로
다시 돋아날 수도 있으련만
나 집시처럼 떠돌다 이제서야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길을 홀로 걸어왔는지
지금 내 앞에 망연히 서있네
서러운 악보처럼 펄럭이고 있네
박정대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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